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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지난 17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언론들은 앞 다퉈 '송파 세모녀법'이 통과되었고, 빈곤층을 지원할 법률이 생겼다고 떠들썩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사회시민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이 '개악'이며 '또 다른 송파 세모녀를 지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의 최대 쟁점은 최저생계비와 부양의무자에 관한 것이었다. 이 두 가지가 쟁점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빈곤의 기준선, 즉 누구를 지원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양의무자기준은 가장 넓은 빈곤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15년 만에 가장 큰 개정을 앞두고 있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이 두 가지 부분을 보완하는 데 실패했다.

낮은 수급자 선정기준, 개별급여의 도입의 의미 없어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은 소득인정액과 부양의무자기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이고, 부양의무자기준에 결격이 없을 시 기초생활수급자로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다. 기존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60만 3천 원, 보장받을 수 있는 최대 현금급여는 48만8천 원이었다. 60만 3천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할 시에는 수급자격을 박탈당하고, 만약 그 이하의 소득이 있을 경우에도 최대 현금급여에서 소득만큼을 제외하고 급여를 보장받게 설계되어 있다.

정부는 이를 두고 "All or nothing(전부 혹은 전무)"이라며 최저생계비를 조금만 넘어도 급여 박탈이 일어나는 상황과 이 때문에 탈수급을 기피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개별급여'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동의할 이 전제의 결론은 다소 이상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비수급빈곤층에게 가장 절실한 급여인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의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이 높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교육급여를 제외한 '개별급여'는 기존 차상위계층도 포괄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설정되었다.


발생하게 될 사각지대, 하락하는 보장수준의 영역 역시 자명하다. 주거급여만 예를 들어 보더라도 '기준임대료' 신설로 서울 1, 2, 3인가구와 경기인천 및 광역시의 1인가구를 제외한 모든 가구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 주거급여 액수가 줄어든다.

공공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비교적 저렴한 월세를 부담하는 가구의 경우 '실제 월세' 만큼으로 급여가 줄어들며, 직접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공사로 지원이 바로 간다. '자기부담금'이 신설되어 소득이 생계급여 이상 있는 가구의 경우 이마저도 '깎아서'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국토교통부는 다음과 같이 주거급여를 홍보했다.

- 서울에 사는 4인가구의 가장 A씨는 수급을 받고 있음. 월급이 165만 원으로 오를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4인가구 최저생계비 163만 원을 상향하게 되어 모든 급여를 박탈당함.
- 이번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에 따르면 일부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됨. 주거급여 기준은 174만원, 교육급여 기준은 202만원이 되어 보장받을 수 있음.

그러나 A씨가 보장받을 수 있는 개별급여는 다음과 같다.

- 주거급여를 보장받으나 '자기부담금'이 신설되어 A씨의 경우 한 달 6만 원의 주거급여를 받게 됨. 이는 그나마 '서울'에 사는 가구이기에 6만 원이라도 받는 것임. 경기인천에 산다면 2만 원, 나머지 지역에 산다면 한푼도 받지 못하게 됨.
- 교육급여는 50%로 상향되지만 교육급여의 현금급여는 초중생의 경우 일 년에 3만9천원, 고등학생은 13만 원 정도로 매우 낮음. 의료급여 기준선은 현행과 다르지 않아 보장받지 못함.


정부는 개별급여 도입을 통해 수급자가 대대적으로 늘 것처럼 홍보하지만 빈곤개선 효과는 없는 대책에 불과하다. 비수급빈곤층의 가장 긴급한 욕구로 드러나는 의료급여는 아예 현행 최저생계비와 기준이 동일하다. 더구나 한 달 2만 원의 주거급여를 받기 위해 본인과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 제공동의서를 모조리 제출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송파 세모녀는 한 달 동안 150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월세 50만 원을 지불하던 전형적인 '주거빈곤층'이었지만 3인가구 기준 141만 원이 선정기준이 될 주거급여의 혜택은 받지 못한다. 나머지 급여도 마찬가지다. 송파 세모녀가 수급자가 될 수 없는 걸림돌인 '추정소득(실제 소득이 아니라 있을 것이라 추정하는 소득)'에 대한 부과금지 개정도 없다. 이런 법이 '송파 세모녀 법'이라는 이름을 걸고 통과했다.

부양의무자기준, 정말 많이 완화되었나?

둘째 부양의무자기준이다. 이번 부양의무자기준 완화를 두고 정부는 '대폭 완화'로 선전하고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정부는 4인가구를 기준으로 '212만 원에서 404만 원으로' 완화되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다소 복잡한 이야기지만) 이는 '부양능력 없음'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것이다.

'부양능력 (완전히) 있음', 즉 수급탈락을 가르는 기준 선이 기존 346만 원(수급자 가구가 근로능력 없을 시 492만 원)에서 507만 원으로 상향된 것에 불과하다. 507만 원의 소득이 꽤 많은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4인 가족과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 가족 2인, 총 6인의 생계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가구 특성과 지역,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단히 완화되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부양의무자기준 완화를 통해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유입되는 인구는 12만 명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수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117만 명의 10% 남짓에 불과하며, 최근 3년간 급격히 줄어든 기초생활수급자 숫자인 20만 명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는 13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역대 최저 수준이다. 20만 명을 내쫓고 12만 명을 다시 들이는 제도 개선이 '사각지대 해소'인가?

이번 개정을 통해 교육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 될 것이다. 일부 급여에서만이라도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비수급 빈곤층에게 가장 간절한 급여가 의료급여와 생계급여라는 것을 고려할 때 한계가 있다. 시급히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적용 급여를 넓혀야 한다.

낮은 보장수준과 높은 문턱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2011년 영등포 쪽방촌. 영등포 고가도로와 영등포역 일대 경인로 안쪽으로 개발이 멈춰있다. 2년이 지난 2013년 8월 현재도 변한 것이없다. 단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고가 도로 아래 임시거주시설이 들어섰고 순차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뿐, 생활이나 상황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영등포 쪽방촌. 영등포 고가도로와 영등포역 일대 경인로 안쪽으로 개발이 멈춰있다. 2년이 지난 2013년 8월 현재도 변한 것이없다. 단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고가 도로 아래 임시거주시설이 들어섰고 순차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뿐, 생활이나 상황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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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만큼 개선되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개정안 비판의 핵심은 아니다. 기대도 채우지 못한 개선을 핑계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간을 흔든 것이 이번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번 개정을 통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각 급여는 여러 부처가 관리하게 됐다. 주거급여는 국토교통부, 교육급여는 교육부가 주무부처가 되고,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던 자활사업의 대부분은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

이는 '빈곤정책'이 아닌 각 부처의 예산과 재량에 따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준이 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수급자 입장에서는 제도운영이 복잡하고 어려워진다는 것 자체가 권리침해 요인이 된다. 기존 기초생활보장제도도 까다롭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최저생계비라는 단 하나의 기준이 있었다면 달라지는 제도는 각 급여의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이 각각이라 더 어려워진다.

기존에도 이의신청은 매우 제한적이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기초법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 수급신청 후 30일 내에 결과를 통보하도록 되어있던 조항이 60일로 늘어났다. 돈이 없어 수급신청을 해도 60일 동안 손가락만 빨아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주거급여는 2개월 이상 월세 체납 시 '집주인의 신고'로 '급여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입자를 위한 빈곤정책인지 집주인 소득보장정책인지 알 수 없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의 인수위원회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방향을 밝히면서 수급자가 너무 많은 복지를 '독점'하고 있다고 염려했다. 그들의 의도대로 이제 수급자의 낮은 수급비는 갈가리 찢겨 수급자 숫자를 늘리는데 사용될지도 모르겠다.

지난 10월 29일, 국밥값 10만 원을 남기고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이 자살했다. 이달 17일, 72세 수급남성은 스스로 몸을 찔러 세상을 떠났다. 기존 수급자의 보장수준도 높이지 않고 비수급빈곤층도 새롭게 지원하지 않는 이번 개정안은 이후 어떤 칼이 되어 빈곤층을 겨눌까.

아직도 송파 세모녀는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문턱에 닿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입니다.



태그:#세모녀법,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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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경쟁을 강요하고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에서 발생합니다. 빈곤사회연대는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서 한시적 원조나 시혜가 아닌 인간답게 살 권리, 빈곤해지지 않을 권리를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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