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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볼거리와 3D 만화등 풍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 고성 공룡박물관 내부-2 다양한 볼거리와 3D 만화등 풍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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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이다. 내일 따위는 잊자. 순간에 충실하며 불타는 금요일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거다. 그렇게, 만취한 상태로 새벽녘 현관문을 기어 넘다보면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주말에 아이들과 놀러가기로 약속했는데... 이런! 나이 마흔의 주말은 바닥난 체력을 극복하는 정신력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쓰러지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고 만다.

유치원생 사내 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 있다. 뽀로로와 번개맨을 거치고 나면 사이즈나 파워 면에서 진일보된 투영체를 갈망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번 주말여행의 테마인 '공룡'이다.

어느 기간까지는 책과 동영상 등으로 녀석들의 욕구를 잠재울 수 있지만, 결국 두 손 들고 짐을 싸야 하는 순간은 오고야 만다. 그때란 바로, 아빠보다 더 많은 공룡 이름을 외워서 자꾸 질문을 해올 때다.

아침에 출근한 아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술에서 완전히 깬 사람처럼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오랜 경험의 산물이다. 설거지와 청소까지 깨끗하게 마무리해야 어제의 객기에 대한 피의 숙청을 피할 수 있다. 다행히 부처같은 아내의 자비를 얻어 무탈하게 넘어간다. 한 달간 노래를 부르며 공룡을 찾던 들뜬 아이들을 싣고 이제 출발이다. 아이들의 상기된 표정과 대조되는 나의 누렇게 뜬 얼굴.

불금 후유증, 그래도 고성으로 향했다

공룡박물관이 있는 경남 고성군은 남쪽 끄트머리에 있다. 같은 경상도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도 차로 세 시간쯤 걸린다. 한 시간 내내 떠들다 잠든 아이들. 그걸 받아주느라 역시 지쳐 잠든 아내가 있는 뒷좌석을 힐끔거리며, 눈알이 튀어 나올 것 같은 피곤함을 억누르고 운전에 집중한다. 아빠의 역할은 운전사 혹은 사진사 아니면 요리사. 그게 마흔의 삶이다.

공룡박물관 근처로 예약한 펜션을 찾아가는 길에 노란 융단이 펼쳐지지 않았다면, 피로감은 극에 달했을지 모른다.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숙소를 향하는 은행나무길을 지나다 보니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기분이 든다.

박물관 뒤쪽 공원에는 놀이터와 미로공원, 전망대등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단위 방문객들에게 안성맞춤이다.
▲ 공룡공원 놀이터 박물관 뒤쪽 공원에는 놀이터와 미로공원, 전망대등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단위 방문객들에게 안성맞춤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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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먹거리가 흔치 않던 그 시절, 동네 은행나무 밑에서 은행을 줍던 일. 장갑을 끼어도 손톱 밑에 밴 은행의 독특한 향취는 아무리 씻어내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가 생각나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상상 속 은행의 냄새가 숙취도 씻어 버린다.

바다를 향한 전망 좋은 펜션에 도착해서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고기를 굽는다. 마흔의 삶에 변동은 없다. 다행히 마음씨 넉넉하고 친절한 여사장님의 배려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첫 번째 입장객이라는 영광을 안겨주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으나, 안나푸르나 전용 등산복 차림의 어르신들에게 순서를 빼앗기고 말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휘어잡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박물관 앞 광장에 있는 세계 최대 높이(24m)의 공룡탑이다. 공룡을 형상화한 탑인데 멀리에서도 눈에 띄일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문제는 아이들이 공룡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그냥 지나쳐 가는 우뚝 솟은 공룡탑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통달한 듯 그저 무심할 따름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공룡박물관답게 다양한 화석과 공룡뼈들이 전시되어 있다
▲ 고성 공룡박물관 내부 우리나라 최고의 공룡박물관답게 다양한 화석과 공룡뼈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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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높이의 공룡유골은 국내 최고 규모를 자랑한다
▲ 고성 공룡박물관 내부-3 3층 높이의 공룡유골은 국내 최고 규모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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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박물관을 소개하는 글은 아니므로, 간단하게 장점 몇 가지만 언급하고 지나가기로 한다. 첫 번째는, 입장료 대비 꽉 들어찬 박물관의 내용물이다. 3층 높이 크기의 공룡뼈가 박물관의 전체를 관통하여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공룡 화석들도 있다.

공룡 모형도 무척이나 실감나게 만들어졌는데, 사립으로 운영되는 집 근방의 '자칭 공룡박물관'들에서 몇 차례 배신 당한 기억이 있다 보니, 실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3D로 관람하는 공룡을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도 어른들이 보기에 손색이 없고, 전체적인 박물관의 배치도 아이들 학습에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다.

두 번째는 박물관 뒤편에 위치한 공룡공원에 대한 만족도이다. 놀이터, 미로공원, 전망대 등을 갖추었는데, 점심 도시락만 준비한다면 한나절 아이들을 풀어놔도 질리지 않게 놀 수 있을 만큼, 놀이기구나 시설 등이 훌륭하다. 보는 이만 없었다면 미끄럼틀을 타고 공룡 입안에서 나와 보고 싶을 정도였다.

세 번째는 자연과 어우러진 박물관이라는 점이다. 공룡 발자국 화석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바닷가의 유적지가 걸어서 불과 5분 거리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1억 년 전 공룡들의 세계로 걸어들어 갈 수 있다. 주변 경관도 빼어나 공룡발자국과 함게 감탄을 자아낸다.

이상의 장점들만으로도 장시간 차를 운전해서 고성에 온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아이들과 교감하는 방식을 깨달은 것이다. 흔히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화하고,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을 한다. 말이 쉽지, 개구쟁이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울컥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평상심을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시간을 돌린다면, 나의 선택은?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내 자식들인데도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풍족한 삶, 여유있는 생활, 걱정이라고는 티끌만치도 모르고 자랄 아이들. 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내게 또 한 번의 삶이 주어져서 여섯 살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공룡발자국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아이들
▲ 상족암 앞의 공룡발자국 공룡발자국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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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그 시절, 공룡박물관같은 건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니었던가? 기껏해야 동네 입구에서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로 보낸 나의 유년시절들. 마흔의 나이에 지난 삶을 돌아보면 장자의 호접몽처럼 시간은 꿈결같이 지나가 버렸다. 여기서 눈 한 번 깜빡하면 그때는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게다.

내 앞에 주어진 상황을 두 번째 삶이라고 생각해보자. 저 아이들은 나의 어린 시절이고, 나는 아이들의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고 나니 아이들과 같이 뛰어 놀고, 장난치고 싶어졌다. 몸은 비록 사십대지만, 어릴 적에 못해 본 경험들을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그 시간을 다시 산다고 생각한다면 교감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여섯 살짜리 나는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공룡 발자국을 함께 밟고, 동굴 속에 숨어 있는 용을 찾아 탐험을 떠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늘 한 발짝 떨어져 사진만 찍어주던 아빠, 하지만 정작 함께 있는 사진은 거의 없던 아빠에서 진정한 아이들의 친구가 된 것이다.

누군가는 피터팬 증후군이 아니냐며 놀릴 수도 있겠다. 뭐, 나이 마흔에 그 정도 야유쯤은 무관심할 수 있다. 어차피, 한 번 살다가는 인생. 그 중에 놓치고 지나갔던 시간들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인생을 조금 더 충실하게 살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되었다면 그런 시선쯤 무시할 만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예쁜 찻집에 발걸음을 멈추고 찻집 마당의 그네의자에 앉아서 삼부자가 함께.
▲ 두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예쁜 찻집에 발걸음을 멈추고 찻집 마당의 그네의자에 앉아서 삼부자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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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앞으로 남은 생을 값지게 사는 방법으로 나는, 여섯 살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 아이들과 함께 자라나며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이것이 내가 공룡을 찾아 나선 이유다.


태그:#고성 공룡박물관, #세계최대 공룡탑, #상족암군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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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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