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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고 고요한 조선시대 양반가옥, 추사고택(충남 예산군)에는 사계절 모두 저마다 다른 정취가 있다. 가을이 깊어지는 11월 초, 고택 마당의 나뭇잎들이 물들어 떨어지기 시작하고,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팔작지붕의 선이 유난히 곱다. 유배를 마친 추사가 고향집 솟을대문으로 금방이라도 들어설 것만 같다.

4일 오후, 고택 안채에서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댓돌 위에 형형색색의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대청마루에서는 문화재청 공모 2014 생생문화재사업 '추사따라 걷는 길' 수업이 한창이다.

출입을 금해 고즈넉하던 고택 내부가 무지갯빛 색깔을 입힌 듯 화사하다.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금오초등학교 5학년 2반 학생들이 김용일 강사의 질문에 밝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무엇이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어린이들이 추사고택 안채 대청마루에 편한 자세로 엎드리거나 앉아 각자의 ‘세한도’를 그리고 있다.
 어린이들이 추사고택 안채 대청마루에 편한 자세로 엎드리거나 앉아 각자의 ‘세한도’를 그리고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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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가 탄생한 역사적 배경과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강사의 입담도 그렇거니와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집중도가 놀랍다.

한양에서 제주도로, 제주도에서 청나라로, 다시 제주도로, 차도 없고 통신수단도 빠르지 않았던 시대 긴 시간을 거쳐 탄생한 세한도 스토리는 오늘날과 견줘 실감나는 해설이 입혀진다.

세부프로그램 제목도 신선하다.

'조선의 SNS'.

추사의 제자 이상적이 스승이 그려준 세한도를 들고 청나라까지 가서 추사의 지인들로부터 감상평을 받은 뒤, 이를 다시 제주에 있는 스승에게 보여 추사가 남은 유배기간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힘을 줬다는 부분에 착안해 지은 제목이라고 한다.

잠시 뒤 아이들에게 붓펜과 종이 한 장씩이 주어지고 "추사 선생이 유배 중에 자신의 처지와 고민을 담았던 것처럼 지금 현재 자신의 고민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9명씩 세모둠으로 나눠 진행된 미션에서 가장 많은 아이들이 고민이라고 표현한 것은 '수학도'. 수학이 너무 어렵고, 풀어도 틀리고, 점수가 너무 나오지 않아 고민이라며 물음표가 가득한 수학문제지나 지우개가 벌을 서고 있는 기발한 표현을 한 그림들이 나왔다.

'추사따라 걷는 길' 수업모습.
 '추사따라 걷는 길' 수업모습.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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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키가 작아서 고민이라는 '작아도', 말을 줄이거나 은어를 써서 세종대왕이 슬퍼할 것 같아 고민이라는 '한글도', 도저히 초등학생의 사고와 표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차원적인 '감옥도'(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갇혀 살고 있는데 어른들은 왜 그런 울타리가 없는지, 하지만 모두에게 있는 울타리가 3·8선이라는 내용)까지.

아이들은 진지하게 자신들의 고민과 처지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세한도처럼 친구들의 댓글을 받아 그림에 붙이면서 힘을 얻고, 세한도와 당시 추사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이 보다 앞서 오전에는 추사기념관을 둘러본 뒤, 추사의 일생을 9개 사건으로 나누고 자신의 사진을 붙여 추사의 일생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추사파노라마'가 진행됐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총 기획을 맡은 (사)내포향토자산관리센터 이창희 선임연구원은 "추사고택을 그냥 훑어보고 가는 게 아니라 추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시간이 되는데 중점을 뒀다. 특히 추사의 '법고창신'(옛것을 충분히 익혀 체득하고 내것을 찾는다)의 정신을 자연스럽게 깨닫는 시간이 됐으면 했다"면서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높지만, 올해 사업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통해 내년에는 더 살아있는 생생문화재사업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3월 29일 워크숍을 시작으로 8개월여 동안 '묵향 가득한 고가에서 법고창신을 배우다'라는 주제 아래 진행된 총 24회차(캠프 6회, 체험 18회)프로그램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58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령층은 초등학생이 가장 많고, 중학생과 성인도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추사고택, #추사 김정희, #생생문화재,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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