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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7일)은 우리 집 잔칫날이었다. 왜냐고? 아들내미가 받아쓰기에서 100점을 맞았기 때문이다. 금요일 오후 3시께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던 내게 전화가 왔다. 아들내미였다.

"아빠!"
"어, △△아. 어쩐 일이야."

"아빠 저 받아쓰기 백 점 맞았어요!"
"정말? 백 점 맞았어?"

"네, 백 점 맞았어요."
"진짜루? 오~케이! 아빠가 이따가 뭐 사서 갈까? 뭐 먹고 싶어?"

"음... 피자요, 치즈 피자요."
"그래, 이따가 아빠가 치즈 피자 사서 갈게. 축하해 △△아~"

집에 와서 씻고 다리 쭉 뻗어 앉으면 아이들은 내 옆으로 모여든다. 머리 기대고 무릎에 앉고... 아빠 다리와 자기네 다리를 비교해 보고 왜 아빠 다리에는 털이 있는지, 자기 발은 언제 아빠처럼 클건지 궁금해 한다. 난 이런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 아빠 발, 아들 발 집에 와서 씻고 다리 쭉 뻗어 앉으면 아이들은 내 옆으로 모여든다. 머리 기대고 무릎에 앉고... 아빠 다리와 자기네 다리를 비교해 보고 왜 아빠 다리에는 털이 있는지, 자기 발은 언제 아빠처럼 클건지 궁금해 한다. 난 이런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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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점이란다. 만날 30점에서 50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더니 드디어 백 점을 맞았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퇴근만 하면 아이 붙잡고 열심히 연습한 덕분이다. 놀고 싶다는 아이를 잡고 억지로 책상에 앉혀 국어 받아쓰기를 시켰다. 처음엔 무조건 싫다고 하거나 떼를 쓰고 도망 다녔는데 이제는 백 점 맞고 싶다고 스스로 얘기한다. 물론 10분을 넘기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욕심이 생기긴 하나보다. 퇴근 후 동네 피자 가게에 들러서 치즈 피자 한 판 사서 집으로 갔다.

"△△아, 아빠 왔다. 피자 사왔어."

△△이는 동생이랑 피자를 들고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포장을 뜯고 한 조각씩 먹는 아이들... 기분은 좋다. 다들 기분 좋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참 오랜만이다. 받아쓰기 10개 모두 맞았다는 것에 가족 모두가 기뻐하기는... 좀 우습기도 하다. 

시험 후 점수 공개 이어 학급 사이트에 재시험자 명단까지

아직 국어나 수학 점수는 아직 50점을 넘지 못하지만, 받아쓰기는 그래도 나름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난 한 반에서 과연 몇 명이나 받아쓰기를 백 점 맞는지 궁금했다.

"△△아, 너네 반에서 받아쓰기 백 점 맞은 애들은 몇 명이나 돼?"
"20명이요."

"그래? 그럼 나머지 아이들은 몇 점이야?"
"□□이랑 ○○이는 50점 맞았고요, 나머지는 90점이에요."

음... 그럼 서너 명 빼고 다 백 점이라는 얘기였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한 반에 25명 정도인데 받아쓰기는 보통 20명 정도가 백 점을 맞고, 서너 명 정도가 70점을 넘지 못해 재시험을 본단다. 그동안 △△이는 재시험 단골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백 점을 맞으니 자신감도 생기고 무척 기뻤나 보다. 무엇보다도 재시험을 보지 않으니 더 신났으리라. 근데 또 궁금한 게 생겼다. 어떻게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점수를 모두 알고 있지?

"△△아, 어떻게 친구들 점수를 다 알고 있어? 선생님이 불러줘?"
"네, △△이 100점!,○○이 50점! 이렇게 다 불러줘요."

'점수를 다 불러주니 아이들이 누구 누구가 몇 점인지를 다 아는 구나.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아이들의 점수를 다 불러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답한다.

"학교 사이트에 들어가면 받아쓰기 재시험 명단이 다 나와. 그래서 누가 몇 점 맞았는지 다 알 수 있어."

헐... 그럼 사이트에도 공개되고 반에서도 다 불러 주고. 게다가 교실 뒤편 게시판에도 과정 별로 점수 스티커가 붙어있고... 참 궁금하다. 무슨 생각으로, 학교 시책이 어떻기에 아이들의 점수를 다 공개하고 재시험자 명단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놓는 지 말이다.

천성적으로 머리 회전이 빠른 아이들 혹은 집과 학원에서 달달 볶아 점수가 괜찮은 아이들은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질 것이다. 거기에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도 자신의 아이들의 점수가 이렇게 공개되니 어쩌면 아이보다 부모가 더 흐뭇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아이를 공부 안으로 몰아넣겠지.

저학년부터 시작되는 공부 스트레스

한자쓰기랑 국어 받아쓰기를 끝내고 수학문제를 푸는 중.
▲ 저녁에 숙제하는 첫째 아들 한자쓰기랑 국어 받아쓰기를 끝내고 수학문제를 푸는 중.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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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업은 기본적인 한글과 단어, 문장의 구조, 수의 원리나 간단한 계산법 등을 배우고 점검하는 정도가 돼야 하지 않을까? 미술이나 음악, 운동 등 예체능 시간을 많이 할애해 학교 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배움에 관심을 가지며 학생들 스스로 좋아하는 분야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게 학교의 역할이 아닐까.

2학기가 시작되면서 아내는 아이에게 방과 후 수업으로 영어를 신청했는데, 선생님이 △△이의 영어 수준을 보더니 '안 되겠다'고 연락이 왔단다.

"저, 어머니! 죄송한데요. △△이가 아직 알파벳을 다 모르네요? 그럼 수업을 따라오기가 힘들어서요. 2학년 초에 다시 영어 수업이 있는데 그때 신청을 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정 영어 수업을 시키고 싶으시면 댁에서 알파벳을 좀 익히고 같이 수업에 참석해도 돼요"했단다. 참 씁쓸하다. 학교 수업이 학원에서 배운 것을 점검하는 정도에 그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초등학교 1학년에게 알파벳을 먼저 익히고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니...

조금 있으면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또 2학년이 되겠지.우리는 아이에게 어떤 상황이 닥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고, 걱정이 앞선다. 우리 어릴 때와는 너무 달라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주위에서 듣고 조언을 구해 나름대로 대처 방안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아이는 선생님 얼굴만 보면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도대체 무엇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아이가 학업에 지치지 않게, 더 이상은 '학교를 폭파하고 싶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게 하고 싶다. (관련기사 : 학교 폭파하고 싶다는 아이... 백 점 아니라도 괜찮아) 하지만, 막상 우려했던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더 지켜 봐야할 것 같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어디로 가는지.


태그:#학교 생활,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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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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