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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행복이나 불행을 결정하는 것 같아요. 남이 가진 것을 못 가져서 불행하고 남이 못 가진 것을 얻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상대적 박탈감이 불행을 만드는 거죠.

오늘 밥을 먹든 굶든 주체적으로 충족되는 만족감과 행복하다는 자기 인식이 더 중요한데 말이에요. 계속 누군가를 따라서만 살 순 없잖아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누리고 살기, 적어도 저는 그렇게 살려고 해요."
- <5만 원의 기적, 레알뉴타운>에서

청년들의 이유있는 꿈

<5만원의 기적 레알뉴타운>
 <5만원의 기적 레알뉴타운>
ⓒ 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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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 남부시장 레알뉴타운에서 '청춘식당'을 운영하는 김현상씨(29, 남)의 말이다. 그는 대학에서 중국어와 NGO를 전공, 졸업 후 대전의 카이스트 연구소에서 행정 일을 했다. 그런데 반년 만에 남들에게 선망받았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뒀다.

그곳의 일이 재미없었고, 그리하여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 적게 벌며 폼나게 살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단다. 그 첫 번째가 대부분의 젊은이가 몰려드는 대도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전주로 갔다.

전주에 가서 처음으로 한 것은 '마을 만들기' 컨설턴트. 그런데 정부와 마을을 잇는 다리 역할 외에 주민들이 살 만한 마을을 만드는 데 주체적으로 앞장설 수 없는 현실을 보고 다시 흥미를 잃고 말았단다.

이런 그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레알뉴타운 청년장사꾼' 모집 공고. 모집에 선발돼 레알뉴타운에 식당을 차린 그는 자신만의 특별한 음식들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고,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들을 만나는 것이 행복하기만 하다. 그는 이제 어엿한 청년장사꾼이다.

"다른 사람들 사는대로 살지 않겠노라'며 모인 청년들의 장사 공동체, 레알 뉴타운. 함께 손을 쓰고 품을 들여 둥지를 단장하고 간판을 내건 레알뉴타운 청년 장사꾼들의 별난 인생 스토리와 돈 없는 청년 창업 노하를 담은 <5만 원의 기적, 레알뉴타운>은 길을 찾는 많은 청춘들에게 또 다른 미래를 보게 할 것이다."
-<5만 원의 기적, 레알뉴타운> 추천사(김병수, 사회적 기업 이음 대표)

레알뉴타운이 형성된 전주 남부시장은 조선 후기 전국 15대 시장으로 꼽힌다. 한때 호남 최대의 물류 집산 시장으로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 시장도 우리나라 지방 곳곳에 휘몰아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바람이 닥쳤다. 손님들이 줄어 점점 쇠락했고, 상인 연령 또한 90%가 60대였다.

이런 남부시장에 2년 전 '잔잔하나 울림이 큰 바람'이 불었다. 남부시장 번영회와 전주시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도모해 한옥마을 살리기, 동문 프로젝트 등으로 전주를 생생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사회적 기업인 이음과 함께 레알뉴타운에 입주할 청춘사업가들을 공모한 것이다.

'월 5만 원의 임대료, 임대료 1년간 무상지원, 리모델링 비와 문화마케팅 비 지원. 창업컨설팅 지원!'

저마다의 꿈을 가진 청춘들이 포부와 사업계획서를 들고 도전장을 냈다. 경쟁률은 4:1. 이어 사업 설명회가 열렸고, 그중 선정된 12명이 가게를 꾸몄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던 것들을 할 수 있는 저마다 성격에 맞는 개성 있는 가게를 열었다. 이렇게 레알뉴타운은 조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고물 주워 인테리어 하자. 뚝딱뚝딱 우당탕,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됐다. 모두 마스크를 써라. 오늘은 청소다! 모두 운동화를 신어라. 오늘은 쓰레기 주우러 간다! 고물상도 돌고 동네에 내놓은 가구도 수거해오자. 폐품 폐목 주워 뚝딱뚝딱 손보면 완성. 돈 적게 들이고 간지 나게. 이런 게 요즘 잘 나가는 업 사이클링 인테리어야. 세 가게가 한 조가 되어 남의 가게 인테리어 해주자. 다 하면 내 가게 인테리어도 같이 하자. 우리는 장사공동체니까. 어르신들도 다 이렇게 품앗이하며 살았으니까. 함께라면 못할 게 없으니까.
-<5만원의 기적, 레알뉴타운>에서

레알뉴타운 청년장사꾼들의 공통 슬로건.
 레알뉴타운 청년장사꾼들의 공통 슬로건.
ⓒ 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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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뉴타운 바람이 불었다. 그 영향으로 뉴타운 하면 번듯한 새 건물에 깔끔하고 멋있는 인테리어를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이들이 입주한 건물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옛 시절, 남부시장의 물류창고로 쓰이던 허름한 건물이다. 몇 년 전 불길이 스쳤으며, 거미줄이 무성하고 바퀴벌레가 기어 다녀 가급적 피하고 싶은 그런 건물이었다.

이런 건물에 청춘들이 입주해 폼나고 개성 만점의 가게들을 만들어 냈고, 2년째 꿈을 키우고 있다. 레알뉴타운의 현재 점포 수는 32개(청년장사꾼은 39명. 2014년 9월 기준). 같은 업종은 없다. 독창적이며 반짝이는 아이템들과 특별한 인테리어가 입소문을 퍼뜨려 찾는 발길들이 많다고 한다.

고령화, 전통시장 침체의 해법

레알뉴타운의 청년공동사업가들이 내건 슬로건은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자'다. 책 <5만원의 기적, 레알뉴타운>은 첫 번째 주인공인 김현상씨를 비롯해 대기업 직원이었던 임영규씨, 대학 중퇴 후 각종 일용직을 전전했다는 백승열씨, 미국에서 멕시코 요리를 했던 요리사 김형철씨, 국회의원실 정책실을 비롯해 디자이너, 자유기고가였던 강명지씨, 수학학원을 운영했던 김명자씨 등 레알뉴타운 청년사업가들의 삶과 일, 꿈과 열정과 그들이 꾸리는 그들만의 특별한 가게 아이템 등을 소개한다.

진짜 삶에 대한 가치관에 공감하고, 독창적인 아이템에 감동하고, 발칙한 상상력과 개성이 돋보이는 가게 인테리어에 놀라며 책을 읽었다. 전주 남부시장 레알뉴타운의 사례는 청년실업 문제와 농촌이나 지방의 고령화 현상, 전통시장 침체 문제를 아이디어 하나로 해결한 좋은 사례다. 아직은 소수 사례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사례를 모델로 또 다른 레알뉴타운들이 지역 곳곳에 조성된다면 우리 사회의 이 문제들이 좀 더 많이 해결되지 않을까?

재능과 젊음을 종잣돈으로 해서 뭉친 레알뉴타운 청년들의 진짜 삶을 사는 이야기가 삶의 미로에 빠진 수많은 '2030 청년'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도전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와 도전으로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레알뉴타운 청년장사꾼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5만 원의 기적, 레알뉴타운>(강희은/ 소란(케이앤피북스)/ 2014-10-07 /1만 2000원)



5만 원의 기적, 레알뉴타운 - 시골 장터에서 장사의 새판을 벌인 청년장사꾼들의 창업 분투기

강희은 지음, 소란(케이앤피북스)(2014)


태그:#레알뉴타운, #전주 남부시장, #청년장사꾼 공동체, #전주 한옥마을, #전통시장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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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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