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불 작가, 신작 '새벽의 노래' 앞에 포즈를 취하다
 이불 작가, 신작 '새벽의 노래' 앞에 포즈를 취하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이 내년 3월 1일까지 서울관 제5전시실에서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 2014:이불'전을 선보인다. 통 큰 작가 이불이 현대차의 통 큰 후원과 만나 하나의 대형미술사건이 터지듯 전시가 열리게 되었다.

정형민 관장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 작가선정과정은 국립현대미술관에 38명의 학예사(과천관 20명+서울관 18명)가 있는데 우선 이들이 작가를 추천하고 나면 그 추천된 중견작가 중에서 내·외부 심사위원회로 구성된 위원회를 거쳐 최종 선정되었단다. 이번에 '현대차 시리즈 2014' 첫 작가로 이불 작가가 선정되었다.

이불(1964~)은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국내파로 내면의 분노와 에너지를 몸으로 표현하는 설치미술가, 행위예술가다. 백남준 이후 한국작가 중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다. 1990년대 남근 중심의 시각문화를 비판하고 여성신체의 억압구조를 드러내면서 21세기형 새로운 비너스 '몬스터' '사이보그' 연작을 발표했다.

2013년 10월부터 9개월간 '뮤담 현대미술관'에서 전시

2013년 10월 5일부터 2014년 6월 9일까지 9개월 간 이불 전을 열린 룩셈부르크 공화국 뮤담 현대미술관 전시장면. 전시가 9개월이라는 건 그만큼 비중이 큰 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전시는 지금 유럽순회 중으로 현재 영국 버킹엄에서 전시 중이고, 다음은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에서도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Lee Bul Installation view, Mudam Luxembourg, Luxembourg October 5 2013-June 9 2014 ⓒ Eric Chenal, Courtesy Mudam Luxembourg
 2013년 10월 5일부터 2014년 6월 9일까지 9개월 간 이불 전을 열린 룩셈부르크 공화국 뮤담 현대미술관 전시장면. 전시가 9개월이라는 건 그만큼 비중이 큰 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전시는 지금 유럽순회 중으로 현재 영국 버킹엄에서 전시 중이고, 다음은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에서도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Lee Bul Installation view, Mudam Luxembourg, Luxembourg October 5 2013-June 9 2014 ⓒ Eric Chenal, Courtesy Mudam Luxembourg
ⓒ Eric Chenal

관련사진보기


1997년 뉴욕 모마(MoMA),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선 한국관 대표로 초청돼 특별상을 받았다. 2007년 프랑스 카르티에현대미술관, 2012년 일본 모리미술관, 2013년 작년에는 룩셈부르크공화국 뮤담 현대미술관에서는 9개월간 전시를 가졌다.

이번 전시도 2000년대부터 작업해온 '나의 거대서사(Mon grand récit)' 시리즈의 연장이다. '거대서사'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공중에 떠 있는 위성비행선, 거대한 대지에 태양열 같은 것으로 전시장을 꽉 채우는 그의 배짱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거대서사'에 대해선 모 월간지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 F. Lyotard)가 모더니즘시대에서는 거대서사가 불가능하다(Non Grand Récit)는 말을 변형한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일상성'을 강조하는 시대흐름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보인다.

그는 왜 이렇게 자꾸 거꾸로 가고, 또 세상을 뒤집어 보는가. 그건 간단하다. 그가 한국전쟁의 연장선상에서 그 가족에게도 큰 비극과 상처를 준 냉전분단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만 그걸 이념이 아니라 예술적 시각언어로 표현하고 살 뿐이다.

이불 I '스턴바우(Sternbau) 29' 복합매체(Crystal, glass and acrylic beads on nickel-chrome wire, stainless-steel and aluminum armature) 180×91×74cm 2010. 2010년 강남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전시된 이불 작가 작품
 이불 I '스턴바우(Sternbau) 29' 복합매체(Crystal, glass and acrylic beads on nickel-chrome wire, stainless-steel and aluminum armature) 180×91×74cm 2010. 2010년 강남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전시된 이불 작가 작품
ⓒ PKM gallery

관련사진보기


2010년 강남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드로잉'전에서 이불 작가를 만났을 때 보물 같이 간직한 아이디어가 혹시 도용될까 노심초사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림의 기초공사가 되는 드로잉은 작가에게는 천금 같이 소중한 설계도다. 그런데 묵혀뒀던 그의 구상이 이번에 일부라도 이렇게 실현되었으니 참 다행이다.

몸까지 짜릿하게 하는 '엑스터시' 미학

이불 I 'The Creators Project_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 복합매체(Wood acrylic mirror two-way mirror LED lighting alkyd paint) 290×600×600cm 2012. "'비아 네가티바'는 부정을 통해 신을 규정하려는 신학적 방법론에서 차용한 용어로 관습적인 사고를 뛰어넘어 신성한 존재 또는 유토피아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도전과 실험을 말함. ⓒ 2014 Vice Media INC 국립현대미술관 다큐멘터리비디오
 이불 I 'The Creators Project_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 복합매체(Wood acrylic mirror two-way mirror LED lighting alkyd paint) 290×600×600cm 2012. "'비아 네가티바'는 부정을 통해 신을 규정하려는 신학적 방법론에서 차용한 용어로 관습적인 사고를 뛰어넘어 신성한 존재 또는 유토피아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도전과 실험을 말함. ⓒ 2014 Vice Media INC 국립현대미술관 다큐멘터리비디오
ⓒ 국립현대미술관

관련사진보기


이불 작가는 일관성 있게 작품을 통해 '근대성을 성취하려는 열망'과 인간의 꿈과 이상을 실현해보려는 '유토피아에 대한 강한 염원'을 보여 왔다. 그런 측면을 외국 전시 평에서는 '이상적 민주주의(Utopian Democracy)의 구현'이라고 해석한다.

'작품이 어려워 대중과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겠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전시가 이해되느냐 마느냐보다는 관객이 온몸으로 겪는 전시, 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답한다. 작가는 자신의 말처럼 관객의 몸까지 짜릿하고 오금이 저려오는 전시, 내림굿 같은 엑스터시를 맛보게 하는 전시가 되고 싶은가 보다.

'태양의 도시'가 주는 유토피아적 인상

이불 I '태양의 도시(Civitas Solis)' II 폴리카보네이트 아크릴 거울 LED조명 전선 330×3325×1850cm 2014
 이불 I '태양의 도시(Civitas Solis)' II 폴리카보네이트 아크릴 거울 LED조명 전선 330×3325×1850cm 2014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그러면 2개월간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작업한 초대형 두 작품을 감상해보자.

우선 '태양의 도시(Civitas Solis)'를 보자. 이 작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철학자이자 공상적 공산주의자인 톰마소 캄파넬라(T. Campanella)의 저서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원형도시의 설계와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차용한 것이다. 태양의 도시란 무한히 열린 세상으로 구체적으로는 한반도통일이나 세계평화를 상징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길이 33m, 폭 18m, 높이 7m 규모의 대형전시실을 꽉 채웠다. 사방이 거울로 되어 있고 거기서 반사되는 파편 같은 섬광으로 눈을 뜰 수 없다. 거울 같은 조각을 퍼즐처럼 맞춘 바닥은 미로형식이라 빠질 것 같이 위태롭다는 인상도 줘, 길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문명의 한 단면을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또한 오른쪽 끝 벽면에는 250개의 발광다이오드(LED)이 모여 있고 그 불빛이 점멸을 반복하면서 '태양의 도시'라는 글씨가 보인다. 전시장 전체가 마치 거대한 평원이나 바다처럼 물결친다. 사방거울에서 반사되는 거대한 불덩이가 주는 효과는 우리의 시공간을 확장시켜주고 이전에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감각인식까지 넓혀준다.

연가 '새벽의 노래'와 사랑에 빠져라

이불 I '새벽의 노래(Aubade) III' 알루미늄, 폴리카보네이트, 메탈라이즈드 필름, LED 조명, 전선, 스테인리스 스틸, 안개분무기(fog machine), 가변설치 2014
 이불 I '새벽의 노래(Aubade) III' 알루미늄, 폴리카보네이트, 메탈라이즈드 필름, LED 조명, 전선, 스테인리스 스틸, 안개분무기(fog machine), 가변설치 2014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번에는 '태양의 나라' 다음 방에 있는 작품 '새벽의 노래'을 보자. 이 새벽의 노래는 '오바드(Aubade)'라는 16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연가형식으로 연인들이 밤새 깊은 사랑을 나누다 새벽녘에 떠나야 하는 슬픔과 아쉬움을 담은 노래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그런 슬픔도 기쁨으로 바꾸는 전화위복의 묘미가 있다.

이 작품의 조형은 독일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B. Taut)의 20세기 초 '새로운 법령기념비' 건물과 '힌덴부르크 비행선' 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높이가 15m의 되는 전시공간을 적극 활용해 작품을 우주항공선처럼 공중에 걸어 장엄함을 더한다.

공중에 연막 같은 안개가 뿌려진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의 잠재한 생각들 예컨대 삶의 덧없음과 경이로움, 파괴와 창조, 희극과 비극, 현실과 이상, 절망과 환희, 추함과 아름다움, 우주의 신비와 남녀의 열렬한 에로스 등도 연상하게 된다.

'새벽의 노래(Aubade)'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국립현대미술관 다큐멘터리비디오. 작품이 초대형이다 보니 작가만 아니라 많은 조수들의 협업이 또한 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새벽의 노래(Aubade)'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국립현대미술관 다큐멘터리비디오. 작품이 초대형이다 보니 작가만 아니라 많은 조수들의 협업이 또한 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관련사진보기


백남준이 50대 들어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위성아트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며 스타작가로 재탄생했듯 이불 작가도 50대를 이제 막 맞이하면서 그의 역량을 최대한 집결시켜 그의 상상력을 펼치며 작가의 르네상스기를 맞고 있다.

이불도 기자간담회에서 밝혔지만 지금 '광주비엔날레 2014'에서는 25년 전 작품이 전시 중인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지러울 정도라는 소감을 밝혔는데 그만큼 작품에 변화와 발전이 많았다는 뜻이 된다. 또 앞으로 25년이 기대된다.

이불 작가는 이번 '현대차 시리즈 2014'로 만 50세를 맞는 원숙기에 제대로 임자를 만나 물적, 인적 지원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게 되었다. 전시기간도 5개월로 그동안 고생한 작가에게는 적지 않은 보상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전시와 연계행사로, 문화계 인사와 함께 진행되는 자유로운 대담형식의 작가와의 대화 '이불을 만나다(2014년 10월 15일)'와 이불 작가의 작품세계를 심층적으로 논의하는 학술대담 '이불을 말하다' 등이 진행된다[문의: 02-3701-9500,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www.mmca.go.kr] 하이라이트 전시해설 11시 14시 16시



태그:#이불, #현대차시리즈 2014, #새벽의 노래, #태양의 나라, #캄파넬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