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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1일 오전 9시 40분 사고당시의 괴연지 둑 모습
▲ 영천 괴연지 지난 8월 21일 오전 9시 40분 사고당시의 괴연지 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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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1일, 경북 영천 괴연저수지의 둑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10m 가량의 둑 일부가 무너지면서 500여 명의 주민이 긴급 대피했다. 이 사고로 20여 채의 주택이 침수되고, 10만여 제곱미터의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인근 인도와 아스팔트 도로 역시 급류에 의해 파손됐다.

현재 영천경찰서는 둑 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업무과실 여부에 대해 수사 중이다. 영천서는 9월 초까지 관련 주민들의 조사를 마치고 지난 19일부터 해당 공무원을 상대로 조사에 착수했다.

영천시 저수지 둑 붕괴, 자연재해인가 인재인가

영천시는 "저수지 둑 붕괴는 자연재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영천시의 안일한 대처가 부른 '인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마을 주민들은 "수차례 저수지 보강 요청을 했지만 영천시가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지난 9월 19일 정해경 영천시 지역개발국장은 "소방방재청과 농어촌공사 등 관련기관에서도 자연재해라고 판정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소방방재청 등 관련 기관에 문의한 결과, 이 같은 판정 공문을 내린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어촌공사 영천지사는 "지난 8월 21일, 자연재해로 '판정'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인다는 '의견서'를 보냈을 뿐"이라고 밝혔다. 소방방재청도 "판정할 권한 자체가 없으며, 의견서를 보낸 적도 없다"고 밝혔다.

방수로의 두께를 가늠할수있다(좌)=휴대폰의 높이는 14cm이다. 우측 열쇠고리가 놓인 부분은 방수로 상판 균열을 표시하고 있다.
▲ 방수로 잔해 방수로의 두께를 가늠할수있다(좌)=휴대폰의 높이는 14cm이다. 우측 열쇠고리가 놓인 부분은 방수로 상판 균열을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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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외각(저수지 안쪽) 방수로 보호공이 2~3mm의 틈으로 심한 균열을 보이고 있다.
▲ 방수로보호공 최 외각(저수지 안쪽) 방수로 보호공이 2~3mm의 틈으로 심한 균열을 보이고 있다.
ⓒ 장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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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연지는 지난 1945년에 축조되어 지난 2009년 개·보수 공사를 거쳤다. 영천시는 이번 괴연지 사고가 "과다한 강우량과 턱없이 부족한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 근거는 해당지역 강우량과 시우량(시간당 강우량)이다. 영천시 관계자는 "(많은 비에 의한) 여수토 방수로의 월류 때문"이라는 답변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주장은 다르다. 사고일인 지난 8월 21일 최초 신고자인 임태화(50)씨와 임재광(75)씨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13년, 둑에서 물이 샌다고 마을 주민들이 세 번이나 시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번번이 묵살 당했다", "저수지가 위험하다고 마을 주민들이 수차례 시에 보수공사를 요구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종수 영천시 부시장은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으로 1000여 개가 넘는 노후 저수지 개·보수를 제 때에 진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라고 해명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고위직 간부는 "저수지 보수요청 민원은 많다"며 "결국 돈이 필요한데 저수지 유지·보수예산이 1년에 고작 17억 원뿐이어서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라고 푸념했다.

현재 영천시 관내 저수지는 모두 1023개로 경상북도 내 5544개 중 18%를 차지한다. 이중 축조된 지 50년 이상인 저수지는 모두 920여 개로 전체의 약 90%에 달한다. 지난 4월, 영천시가 실시한 저수지 안전등급조사에서 E등급(불량, 사용금지, 즉각 개·보수) 35곳, D등급(미흡, 긴급 보강필요) 66곳, C등급(보통, 보강필요)이 229곳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에서 괴연 저수지는 비교적 양호하다는 B등급으로 분류됐다.

비 많이 내렸다는 영천시, 기상청 공식 통계와 달라

영천시 지역개발국장은 사고 당일, <농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5일간 290㎜ 이상의 비가 내려 수위가 많이 높아진 데다 21일 새벽 시간당 3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콘크리트 물넘이와 제당(둑) 사이의 흙이 유실되고 강한 수압을 견디지 못해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기상청에 따르면, 사고일 전 5일간(8월 17~21일) 영천지역에 내린 비는 모두 250mm다. 17일(22.5mm), 18일(128mm), 19일(9.5mm), 20일(25mm), 21일(65.5mm)이다. 이중 사고일인 21일 새벽 3시~6시까지(4시간) 내린 강우량은 모두 64.5mm로 이는 시우량(시간당 강우량)으로 환산해도 12.125mm에 불과하다. 시간대 별로는 21일 오전 3시는 6.0mm, 4시는 15mm, 5시는 24.5mm, 6시는 19mm다.

기상청 공식 통계는 영천시가 주장하는 '5일간 290mm, 시간당 30mm'과 다른 셈이다.

파란색 가로의 네모 안은 8월21일(위)과 18일(아래)의 시간당강우량(시우량)표시 우측의 세로 네모는 그날의 총 강우량을 말한다.
▲ 기상청자료 파란색 가로의 네모 안은 8월21일(위)과 18일(아래)의 시간당강우량(시우량)표시 우측의 세로 네모는 그날의 총 강우량을 말한다.
ⓒ 기상청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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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지역은 8월 초부터 18일 이전까지 비가 오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다. 따라서 이미 땅속은 18일 이전부터 수분 포화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후에 내린 비는 대부분 지반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내린다. 흙 유실에 의한 사고라는 해명이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영천시는 기상청 자료가 아니라 영천시 자체관측자료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영천시가 발표한 사고지역 인근 관측소(대창면 직천)의 자료도 영천시 주장과는 달랐다. 직천관측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17일~21일 사이 내린 비는 모두 233.66mm다. 또 사고일인 21일 비가 가장 많이 내린 오전 3시부터 6시의 평균 시우량도 19.5mm에 불과했다.

사고 이후 괴연지 현장을 살피기 위해 지난 17일 괴연동을 방문했다. 주민들 의견도 분분했다. "인명피해도 없는데 굳이 공무원을 다치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민이 있는 반면, "재발방지를 위해 잘잘못은 분명히 따져야한다"는 주민도 있다.

주민 A씨는 "나는 오히려 (붕괴로 인한) 피해를 축소 신고했다"며 "일부 주민들이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 인재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다른 피해 주민 B씨는 "보상금 몇 푼이 문제는 아니다"라며 "공무원의 책임의식이 더 큰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재해로 판명하더라도 영천시는 합리적이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번 둑 붕괴 조사과정에서 설계도가 쓰이지 않은 점도 드러났다. 기자는 방수로 붕괴원인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8월 25일 해당부서에 2009년 당시 방수로 확장공사설계도를 요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8월 26일, 설계도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그날 ​기자가 정식으로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하자 10일 뒤인 9월 5일, '공개' 결정이 났다. 하지만 영천시는 여전히 설계도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결국 영천시장에 전화를 하는 등 실랑이 끝에 설계도면을 받을 수 있었다. 정보공개청구 16일 만의 일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창고에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서 설계도가 없는 줄 알았는데 뒤늦게 찾았다"고 해명했다. 사고 조사 때 설계도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5년 전 자료이기 때문에 이번 사고 조사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고 답변했다.

무너진 둑, 정말 설계도대로 보강됐을까

영천시는 방수로가 왜 두 동강이 났는지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영천시는 지난 2009년 11월 기존의 방수로를 개·보수했다. 당시 3760만 원을 들여 중력식 옹벽(높이 2m, 길이 4m)과 방수로(길이 24.2m), 방수로 보호공(24m)을 새로 정비했다.

그러나 사고 직후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방수로에서 부실시공으로 의심되는 부분들이 발견됐다. 우선 설계도에 따르면, 괴연지에는 16mm 철근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16mm보다 작은 규격으로 보이는 철근이 여기저기 확인됐다. 사고 현장을 본 한 건설 전문가는 "13mm 규격의 철근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 내는 16mm, 네모안은 13mm로 보이는 철근이다. 설계도에는 모두 16mm로 만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 방수로 철근 원 내는 16mm, 네모안은 13mm로 보이는 철근이다. 설계도에는 모두 16mm로 만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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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파란색 네모안은 방수로보호공의 철근결속을 표시하고 있다. 우측 붉은색 원은 현장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4mⅩ1.28mⅩ2m?중력식 옹벽 설계도이다
▲ 설계도 일부 좌측 파란색 네모안은 방수로보호공의 철근결속을 표시하고 있다. 우측 붉은색 원은 현장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4mⅩ1.28mⅩ2m?중력식 옹벽 설계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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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는 둑의 안전핀 역할을하는 4mⅩ1.28mⅩ2m 크기의 중력식 옹벽은 보이지 않았다. 영천시는 사진 가운데 구조물이 옹벽이라고 설명했고, 한 건설 관계자는 축벽이라고 맞섰다.
▲ 붕괴된 방수로 현장에는 둑의 안전핀 역할을하는 4mⅩ1.28mⅩ2m 크기의 중력식 옹벽은 보이지 않았다. 영천시는 사진 가운데 구조물이 옹벽이라고 설명했고, 한 건설 관계자는 축벽이라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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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영천시는 지난 2009년 개·보수 과정에서 높이 2m, 길이 4m의 중력식 옹벽을 지었다. 그러나 둑의 안전핀인 이 옹벽은 사고 잔해 속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영천시는 위 사진 한가운데 늘어진 구조물(원내)이 도면상 '중력 옹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자와 현장에 함께했던 건설 관계자는 "저 구조물은 일자형으로 방수로의 측벽으로 보이며 도면상의 옹벽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방수로의 안전을 담보할 보호공은 2~3mm 크기로 4~5m가량 긴 균열을 보이고 있었다. 방수로 상판도 여기저기 틈새가 벌어져 있었다. 한 주민은 "(수차례 보강 요청에도) 영천시는 통제표시간판 하나 설치하지 않았다"며 "붕괴 위험에도 둑 위를 통해 수시로 굴삭기 등 중장비가 지나다녔다"고 주장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박종운 당시 영천시의원은 "괴연지가 위험해 그라우팅(방수공사) 및 보수가 시급하다"며 괴연지 보수를 선거공약으로 내놓았다. 선거운동 당시 박 의원은 "괴연지는 누수로 인해 붕괴직전에 놓여 있어 위험한 수준"이라며 선거에서 재선되면 "최우선적으로 괴연지 보수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한 바 있다.

영천시는 형식적인 사고수습을 하지 말고 방수로의 설계도부터 정밀조사 하여 혹 부실시공은 없었는지, 누수지점의 크기와 위치는 어디였는지, 둑의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등 명확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주민들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 항상 내리는 강우량을 핑계 삼아 '아니면 말고 식' 일방적 사건처리가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아직까지 영천시는 강우량과 시우량을 제외한 의혹 제기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피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영천투데이>(http://yctoday.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영천괴연저수지, #영천괴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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