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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에서 서서 바라본 하늘은 작았다.

골목길에서 바라본 하늘은 골목의 어둠보다 작다.
▲ 가을하늘 골목길에서 바라본 하늘은 골목의 어둠보다 작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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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 하늘을 포위한 듯했고, 넓은 하늘을 바라보려면 까치발을 서야 했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줄 알았는데,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골목길에선 공평하지 않았다. 선 자리에서 넓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좁은 창으로 혹은 좁은 골목에서 프레임에 갇힌 하늘을 보는 사람도 있다. 하늘은 공평하나 서 있는 자리는 공평하지 못함이다.

저 장독은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사람들이 떠난 집마다 유독 장독이 많이 남아 있다. 아마도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둘 곳이 없어 버리고 갔을 것이다. 재개발을 마칠 때까지 잠시 머물 집이니 전세 혹은 월세를 얻어 나갔을 터다. 넓은 집은 고사하고 장독을 놓을 만한 집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하늘길은 골목길보다도 더 좁을까?
▲ 가을하늘 하늘길은 골목길보다도 더 좁을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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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가을하늘아래에서 마음껏 햇살을 쬐는 장독대
▲ 가을하늘 청명한 가을하늘아래에서 마음껏 햇살을 쬐는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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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살기 좋은 곳 1위로 꼽히기도 하는 송파구. 강남 3구에 속하는 송파구는 허름한 집이라도 전·월세가 만만치 않다. 거여동 재개발 지구에 살던 이들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골목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 마치 강물처럼 보인다. 골목 끝에 서면 바다일까? 골목의 끝에 서니 바다 같은 하늘이 아니라,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가려진 하늘만 보였다. 하늘을 바라보려면 고개를 아프도록 젖혀야 했다.

가을햇살에 그림자 선명하다.
▲ 그림자 가을햇살에 그림자 선명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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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진 천막 사리로 하늘이 강처럼 흐른다.
▲ 가을햇살 찍어진 천막 사리로 하늘이 강처럼 흐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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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인적이 끊긴 곳에서는 초록생명들이 무성하다.
▲ 가을햇살 저마다 인적이 끊긴 곳에서는 초록생명들이 무성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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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제법 강하다. 비 내리면 빗소리가 북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요란했을 터이고, 우박이 떨어지면 구멍도 났을 것이다. 오랫동안 버티던 것들도 이젠 햇살이 만지기만 하면 바스러질 것처럼 형태만 남았다. 그래도 저 정도면 보슬비 정도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고운 가슴에 눈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이 노랫말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나는 어렸을 적 비를 피하던 거여동 재개발 지구의 어느 처마밑을 떠올렸다.

가을햇살에 환하게 빛나는 담쟁이덩굴.
▲ 담쟁이덩굴 가을햇살에 환하게 빛나는 담쟁이덩굴.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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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강이 되어 흐르는 듯했다. 사람들이 누워 쉬던 방도 구멍 난 지붕을 통해 햇살을 쉬게 하고, 하늘도 쉬게 한다. 그렇게 하늘을 품고 가을 햇살을 들이면서 폐가는 점점 폐허가 될 것이다. 그런 집들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거여동 재개발 지구는 쇠락할 것이다.

좁은 공간, 좁은 골목길. 나지막한 지붕은 훌륭한 저장공간이기도 하다. 처마 위에 화분이며 커다란 대야 같은 것을 올려놓고, 그 작은 화분에 푸성귀들을 심어 거뒀다. 그렇게 알뜰살뜰 살았건만, 그렇게 삶의 터전을 일궜건만. 그들 중 대다수는 보상금 몇 푼 받고 떠나거나, 들어가 살 수도 없는 아파트 딱지를 받아 이문을 조금 남기고 집을 팔아버렸다.

그곳을 일군 사람 중 재개발된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극히 드물 것이다. 대한민국의 재개발 정책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떠나면 그들만 이별하는 것이 아니다. 어두컴컴하던 방을 환하게 비춘 전깃줄들도 하나둘 끊어져 버렸다. 세상 소식을 알려주던 유선 방송의 선과 전화선도 모두 끊어졌다.

사람이 이별하는 곳에는 또 다른 이별이 있는 것이다. 그런들 저런들 햇살은 환하게 빛난다. 희미하게 보면 다 아름다운 것들이다.

가을햇살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선명하다.
▲ 자전거 가을햇살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선명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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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거여동재개발지구, #가을하늘, #골목, #장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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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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