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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천에 놓인 징검다리는 볼 때마다 건너고 싶어 가슴이 설렌다.
 공릉천에 놓인 징검다리는 볼 때마다 건너고 싶어 가슴이 설렌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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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한여름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뜨거운 날, 송강누리길을 걸었다. 태양은 과일에 마지막 단맛을 스미게 할 작정인지 뜨겁게 타올랐다. 덕분에 걷느라고 땀을 제법 많이 흘렸다. 하지만 걷고 나니 왜 그리 기분이 좋은지,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지난 11일, 고양힐링누리길 7코스 '송강누리길'을 걸었다. 송강누리길은 테마동물원 쥬쥬에서 출발해 월산대군 사당과 송강 문학관을 거쳐 필리핀참전비까지 가는 길로 전체 길이는 6.6km, 소요 예상시간은 1시간 40분이다. 이 길은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거의 없어 가볍게 산책하듯이 걷기 딱 좋은 길이다.

햇볕 뜨거운 날, 송강누리길을 걸었다.
 햇볕 뜨거운 날, 송강누리길을 걸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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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누리길을 가장 걷기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과실나무의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어린 자녀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들로 북적이는 테마동물원 쥬쥬 앞은 평일이라 한산했다. 이곳에서 송강누리길이 시작된다. 햇볕을 피하려고 모자를 썼다.

공릉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 탱자나무를 만났다. 파란 탱자가 노란빛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탱글탱글한 탱자에서 가을이 느껴진다.

탱자나무 열매가 '탱자탱자' 하면서 익어가고 있었다.
 탱자나무 열매가 '탱자탱자' 하면서 익어가고 있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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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옆에는 사과과수원도 있다. 추석이 지났지만 사과는 아직 단맛이 깊게 배지 않았다. 푸른빛을 머금은 사과는 조금씩 아주 더디게 익어가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를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기 때문이다.

가을 풍경은 과수원에서 마을로 이어진다. 길이 공릉천에서 벗어나 황금빛 들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근 이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벼들은 황금빛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대추는 아직 푸른빛이 더 많았다. 익으려면 햇볕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대추는 아직 푸른빛이 더 많았다. 익으려면 햇볕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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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대추나무를 만났다. 키 작은 대추나무 몇 그루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대추들이 잔뜩 매달렸다. 대추 역시 파랗다. 몇몇은 붉은 기운이 얼룩처럼 번지고 있었다. 며칠만 지나면 대추가 먹기 좋은 빛깔로 익어가리라.

교외선 열차 건널목을 지나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철길을 본다. 2004년에 교외선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으니 벌써 10년 전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늘 걸음을 멈추게 된다. 젊은 시절, 심하게 흔들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는 시간이 이토록 빨리 흐를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늘 시간이 더디 흐른다는 생각만 했다.

어느 집 담벼락과 대문 앞에서는 참깨를 말리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어느 집 담벼락과 대문 앞에서는 참깨를 말리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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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대군 사당 앞 회화나무는 여전했다. 큰 나무는 가지가 드러났지만, 작은 나무는 잎이 무성했다. 월산대군 사당 앞에서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월산대군을 생각한다. 월산대군은 성종의 형이다. 월산대군은 동생인 자을산군이 왕이 되자 자연을 벗 삼으면서 풍류를 즐기면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자칫 정치에 뜻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가는 언제 역모로 몰려 죽임을 당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이 되지 못한 왕자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것이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았으나, 그 또한 쉽지 않았나 보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으니 말이다. 월산대군 사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월산대군 묘가 있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을이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을이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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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39번 도로가 중간에 놓여 있다. 예전에는 월산대군 사당과 묘 사이에 월산대군을 기리는 사찰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사찰은 사라지고 없다. 사찰의 규모를 축소해서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월산대군 사당은 이곳을 찾을 때마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언제 사당 안을 들여다 볼 기회가 올까?

월산대군 사당을 기웃거리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느 집 담벼락과 대문 앞에서 참깨를 말리고 있었다. 그 풍경은 보면 볼수록 정겹다. 도시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데, 도농복합도시인 고양시에서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송강문학관이 있는 송강마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송강문학관에 들러볼까 했더니 이런, 내부 수리중이라고 한다. 송강마을은 송강 정철이 시묘살이를 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공릉천 징검다리에서 북한산이 보인다. 북한산은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속살을 걸어도 좋다.
 공릉천 징검다리에서 북한산이 보인다. 북한산은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속살을 걸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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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 시비 앞을 지나면 길은 다시 공릉천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에는 메타세쿼이아가 한 줄로 심어져 있다. 나무 가까이 걸으면 메타세쿼이아가 멋져 보이지 않지만, 징검다리를 건너 공릉천 반대편으로 가면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의 멋진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징검다리를 건넜더니 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공릉천을 흐르는 물에 색소폰 소리가 새겨진 것처럼 잔물결이 인다. 주변을 둘러봤더니 늙수그레한 남자가 색소폰을 열심히 불고 있었다. 색소폰을 갓 배웠는지 같은 소절을 불고 또 분다.

이 날의 짧은 도보여행은 필리핀참전비 앞에서 끝났다. 이곳에서 고양힐링누리길 8코스 고양동누리길이 시작된다.

[송강누리길] 6.6km, 소요 예상시간 1시간 40분
테마동물원 쥬쥬 - 공릉천 - 월산대군 사당 - 송강 문학관 - 공릉천 - 필리핀참전비


태그:#고양힐링누리길, #송강누리길, #월산대군, #필리핀참전비, #송강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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