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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왕길환 기자) "연락이 안 돼, 그들은 그들에게 말했다/ 정치인들은 바닷가에서 우리 가족들과 함께 서서/ 사진을 찍고, 찡그리고, 포옹했다. 우리는 단절감을/느꼈다: 엄마가 만든 김치찌개를 숟가락으로 맛볼 수 없고/ 동생과 찌르고 간지럽게 하는 실랑이도 벌일 수 없고/ 새해 모임에서 피아노를 칠 수도 없다/ 우리의 손가락들은 모두 부러져버렸다."

호주 시드니 북부의 명문 사립학교 핌블레이디스칼리지 9학년에 재학하는 박동영(영어명 로런) 양의 영시(英詩) 'The Lost Children of Korea'(한국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마지막 연이다.

박양은 뉴스전문채널 CNN을 통해 고국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하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이기기 위해 영시를 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대형 사건이고 많은 학생이 꽃다운 생명을 잃었는데도 호주인들이 몰라주고 가슴 아파하는 친구들도 없어 이를 알릴 생각에 작품을 '2014년 모스만 청년 문학상'에 응모했고, 중학생 시 부문 최우수상에 뽑혔다.

모스만시가 주최하는 이 문학상은 올해 22회째를 맞았으며 이번에 총 353명이 출품했다. 시상식은 지난달 말 모스만시 도서관에서 열렸다.

박양이 지은 영시는 단원고 학생들의 목적지 제주도를 화산섬의 이미지에 빗대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여행을 떠나자/ 그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화산호수가 있는 섬/ (신들의 경고, 신들의 환영)/ 안개 낀 어두운 길/ 재로 뒤덮인 땅/ 떠다니는 화산 분출물/ 너희는 안전할 거야, 그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그것은 휴화산이다"

이어 수학여행을 떠나는 설렘을 묘사한 뒤 배 이름 세월호에 담긴 뜻을 되새긴다.

"답답한 갈색 교복을 던져버리고/ 우리는 우리만의 새로운 교복을 만들었다: 빨간 운동화, 파란 청바지, 폴로셔츠/ 부모들은 부두에서 손을 흔든다/ (우리 덕분에 행복해 하면서도 우리가 떠나서 행복해 하고)/ 작은 타이태닉호/ 하얗게 표백된 선체에 선명하게 새겨진 이름-'세월'/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단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시간은 흘러갔다."

이윽고 배가 서서히 가라앉고 학생들이 느끼는 불안한 감정 등이 절절히 배어난다.

"물이 문과 창문을 침범할 때/ 우리는 선실에서 두려워하며 계속 놀았다: 소년들은 구명조끼를 던지며 침울하게 장난쳤다/ 곧 가벼운 농담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우리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숨이 막히고 이리저리 물에 떠밀렸다/ 물은 공기를 집어삼키고 시야를 가리고 몸은 무거워졌다/ 배 안에서 기다려라, 그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원들의 무책임과 기만을 지적하는 대목도 있다.

"선원들은 안전을 위해 대피했다/ 구조대가 올 거야/ 그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쥘 수 있는 무엇이든 움켜잡았다: 밧줄, 손잡이, 창문, 벽, 친구들/ 주황색 구명조끼/ 손이 미끄러지고/ 우리는 우리들의 목소리에 매달렸다: 모두의 목소리는 멈췄다. 절규를 위해/ 우리의 구명조끼는 망각의 바다에 부유했다."

학생회(SRC) 임원으로 활동하는 박양은 수상 소감에서 "세월호 뉴스를 접하고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충격을 받았고 너무나도 억울한 심경을 억누를 수 없었다"고 토로한 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세월호 사고를 설명했고, 또래 아이들이 단원고 학생들에게 전할 애도와 희망의 메시지를 받는 일도 주도했다. 시드니 소재 14개 고교에서 받은 메시지를 모은 책자는 지난 6월 13일 시드니총영사관에 전달됐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그:#세월호, #호주, #박동영, #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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