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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보건의료 규제완화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해외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이다.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벗어던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 대표적인 정책이 '메디텔'이다. 지난해 5월 말, 메디텔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이래로, 개정안이 시행되기도 전에 다른 개정안이 나오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치가 시행되고, 문제가 생기기도 전에 또 규제가 풀리고 있는 것이다.

민영화를 민영화로 돌려막으려는 박근혜 정부

복합의료시설 WE호텔 전경. 제주도 서귀포시 회수동에 지난 2월 9일 개관한 복합의료시설 WE호텔.
 복합의료시설 WE호텔 전경. 제주도 서귀포시 회수동에 지난 2월 9일 개관한 복합의료시설 WE호텔.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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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비리로 비리를 덮는다"는 말이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현 정부는 '민영화를 민영화로' 덮으려 하고 있다. 정부가 스스로 검토하고 국민들의 합의를 거친 내용을 채 실현하기도 전에 뒤집는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법안의 처리 과정은 다음과 같다. 해당부처에서 입법예고를 해서 의견을 청취하고, 규제영향분석서, 자체심사의견, 행정기관·이해관계인 등의 제출의견 요지를 첨부하여 규제개혁위원회에 규제심사를 요청한 후, 규제심사내용을 포함해 법제처에 심사를 의뢰하게 된다. 법안, 시행령, 시행규칙에 따라 거치게 되는 회의체계에 차이가 있어 법률안의 경우 국회를 거쳐야 하지만 대통령령은 국무회의, 부처 령인 시행규칙은 법제처 결재 이후 바로 통과된다.

메디텔 관련 규제완화의 역사
 메디텔 관련 규제완화의 역사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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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텔 관련 법안의 처리 과정을 한번 보자. 위의 표에서 보듯 처음 입법 예고된 메디텔 관련 법안은 구체적인 내용 없이 매우 추상적이었다. 그런데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2013년 9월 27일)를 거친 뒤 그 기준이 대폭 완화됐다. 시설기준이 30실에서 20실로 낮아졌고, 의료기관 반경 1km 이내에 두어야 한다는 조항은 조례를 통해 완화 또는 강화할 수 있었는데 완화만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사업주체기준이다. 원래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도 없는 메디텔의 남발을 막기 위해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으로 사업 주체를 정했으나, 시행도 하기 전에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메디텔 개설자는 의료기관 개설자와 외국인환자 유치업자(관광업자 등)로 나뉘는데, 초안에는 의료기관 개설자의 경우 서울·지방 관계없이 연환자(실제로는 한 명일지라도 그 사람이 여러차례 진료를 보게 되면 각 과마다 각각의 건수가 잡히게 되는 통계 개념) 3천명이 기준이었다. 그러나 기준 완화 이후 서울은 그대로, 지방은 1천명으로 줄었다. 유치업자의 경우도 원래 실환자(실제 인원) 1천명에서 5백명으로 완화되었다.

2013년 5월, 메디텔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왔을 때, 시민사회와 의료계는 들끓었다. 외국인환자를 위한 의료관광호텔이라는 외피를 썼지만 사실은 내국인 환자 대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도권 대형병원 집중이 악화되어 특히 성형, 건강검진, 장기 입원 환자 등 지역에서 관리될 수 있는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릴 것이 뻔하다. 이렇게 되면 지방 보건의료시스템이 붕괴하고, 병원이 특실·식대·부가서비스 등 돈 되는 서비스에 집중할 것을 우려해 의료인 단체에서도 반발하고 나섰던 것.

그나마 같은해 9월 27일 규제영향보고서에서는 국민들과 시민단체,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다소 반영되었다. 수도권 대형병원 집중과 영리를 위한 의료제공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 의료기관과 메디텔을 분리했고 외국인 투숙객이 일정 비율(50%)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정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나온 입법안은 이마저도 뒤집었다. 완화시켰던 기준은 유지하고, 강화시켰던 기준은 후퇴했다. 의료기관 1km 이내 규정은 아예 삭제되었고 외국인 투숙객 기준 50%는 객실에 묵을 수 있는 총 인원의 40%로 규정했다.

객실이 항상 100% 차는 것도 아니고 객실 전체에 묵을 수 있는 총 수로 계산하면 실제 내국인이 차지할 수 있는 비율은 훨씬 올라간다. 또한 의료기관과 메디텔을 분리하는 기준을 추가하면서 다른 건물이나 다른 층만이 아니라 격벽을 두고 출입구를 다르게 하면 분리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상이 지난해 5월 31일 메디텔 법안이 나온 후 같은해 11월 27일까지의 상황이다. 원래 입법예고 했던 내용에서 국민의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칠 만한 변동이 있으면 재입법 예고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11월 29일 바로 고시를 해버렸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올 3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메디텔 정책이 실제 시행되기도 전인 지난해 12월 13일, 박근혜 정부는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후, 의료기관과 메디텔의 분리원칙을 깨고 메디텔 내 의원 개설을 허용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정책이 지난 8월에 나왔다. 가히 의료민영화의 '끝판왕'이라 할 만한 6차투자활성화 대책에서는 의료기관 자법인이 메디텔을 개설하고자 할 때엔 유지실적도 의료기관 기준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물론, 종합병원 내 메디텔 내 의원 개설까지 허용해주었다.

말 많은 메디텔은 결국 국내 환자용?

생각해 보자. 이쯤되면 메디텔은 국내 환자용 숙박 시설이 되어 우려했던 대로 수도권 대형병원 집중을 가속화시키고 대형병원의 성형, 건강검진, 장기 입원 등에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규제개혁위원회도 이를 인정해 규제영향보고서에 '의료기관 분리원칙'을 명확히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시됐다.

또한 당초 메디텔은 외국인 환자를 위해 출발했기 때문에 수행 주체는 일정한 실적이 있는 기관이 되어야 하며, 투숙객 역시 외국인 중심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반영한 기준마저 입법안에서 완화했고, 그것도 모자라 6차투자활성화 대책에서는 거의 무효화됐다. 다음은 규제영향보고서에서 명시한 내용이다.

규제영향보고서의 규제 필요성과 반영 내역
 규제영향보고서의 규제 필요성과 반영 내역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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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보면 일정한 흐름이 보인다. 의료관광, 해외환자유치, 외화벌이를 핑계로 규제를 완화하고 새로운 정책을 도입한다. 제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국내 환자와 국내 제도를 대상으로 한 내용을 추가한다. 실제 해외환자 유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한 내용인데도 말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는 더 큰 민영화 정책을 은근슬쩍 추진한다.

메디텔 관련 법안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정부 스스로 발표한 분석보고서와 기준도 뒤집는다. 사실 메디텔에 투숙하는 의료관광 외국인 환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외국인환자 중 상급병원을 이용하는 비율은 2009년 45.9%에서 2010년 43.3%, 2011년 38.4%, 2012년 37.8%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수치로 따져보면 상급병원에 허용해준 병상(2100병상)중 21병상 정도만을 채우고 있는 셈이다. 현재 병상으로 충분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정책은 대형병원 메디텔에 집중되어 있다.

유치 실적, 세울 수 있는 자금력, 이후 투숙객 확보를 보더라도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만 가능한데다가 대형종합병원 메디텔에는 의원 개설도 허용했다. 자법인의 메디텔 허용은 완벽하게 자본이 많은 대형병원만을 위한 정책이다.

정부는 더 이상 외화벌이, 선진 의료관광의 메카 같은 허황된 수사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은 100% 국내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형병원과 자본이 풍부한 수도권 병원 중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은경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가공된 것이므로 표 및 그림을 포함한 전문의 보고서를 보시려면 새사연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그:#메디텔, #의료민영화, #규제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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