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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의 발언에 새누리당과 <조선일보>가 발끈했다. 그가 말한 주요 대목은 두 가지. 하나는 '(세월호 침몰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연애했을 것이란 항간의 풍문은 거짓말'이란 것과 '대통령도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설훈 의원의 발언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그도, 다른 사람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훈 의원의 발언에 먼저 새누리당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냥 넘어갔더라면 헤프닝으로 치부됐을 정도의 말인데 대변인이 나서서 '윤리위원회 회부' 운운했고, 이튿날에는 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이 나서서 '사과'를 요구했다. <산케이신문>의 '7시간 미스터리'를 조사함으로써 국제 언론기구의 조명을 받더니, 설 의원 발언 역시 쟁점화에 성공하는 모양새다.

김무성, 표현의 자유까지 탄압하는가

지난 7월 16일 여야 4자회담 당시 김무성 대표가 '특검을 야당에 양보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며 박영선 대표가 발언한 내용을 보도한 <조선일보> 8월 14일자
▲ "특검 야당에 양보" 지난 7월 16일 여야 4자회담 당시 김무성 대표가 '특검을 야당에 양보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며 박영선 대표가 발언한 내용을 보도한 <조선일보> 8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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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은 김무성 대표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한 대목이다. 굳이 관련이 있다면 청와대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이 나서야 할 이슈인데, 집권여당 대표가 직접 나서서 야당 의원 발언에 사과를 요구한 모양새가 어색하다. 집권 첫 해인 지난해 야당 의원의 공격적 발언이 나오면 곧이어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이 등장해 조목조목 반박하곤 했었다.

돌아보면 '박근혜 7시간 미스터리' 관련해서 정치인 중 가장 드라마틱하게 입장을 바꾼 인물이 바로 김무성 대표다. '대통령의 7시간'이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지난달 16일 김무성, 이완구, 안철수, 박영선 등 여야 지도부 4자회담을 가졌다. 박영선 대표의 전언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김무성 대표는 '법체계를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야당이 양보하면 특검 추천권을 야당에 주겠다'고 했다. 이 말을 믿고 박 대표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 기소권을 포기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침묵하고 있다.

'특검 야당 양보' 발언으로 세월호 정국을 김 대표가 주도하는 듯 보였다. 그 상황에서 김 대표의 딸과 관련된 수원대 교수 특혜채용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 참고로 이 건은 지난 6월 25일 참여연대 등에서 김 대표를 수뢰후부정처사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건이며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시점 조사가 시작됐다.

대통령 7시간 논란이 인 것은 비서실장인 김기춘의 잘못이라고 비판한 김무성 대표. <중앙선데이> 9월 7일자 중
▲ "7시간 논란, 김기춘 탓" 대통령 7시간 논란이 인 것은 비서실장인 김기춘의 잘못이라고 비판한 김무성 대표. <중앙선데이> 9월 7일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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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초반에 당당하게 자신의 발언을 해 나가던 김 대표는 어느 순간부터 '특별법 협상은 원내대표의 몫'이라는 말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앙선데이> 등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7시간'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데 '김기춘 실장의 잘못된 대응으로 쟁점화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일 설훈 의원의 발언이 있자 이튿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설 의원 같은 그런 발언을 하면 안 된다"며 "어떻게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나"라고 말하면서 설 의원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대표가 국회 상임위원장의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인가.

'대통령 연애' 발언, '막말'이라고 비판한 <조선>

12일 설훈 의원의 발언과 이에 분노한 새누리당 반응을 나름 균형있게 작성한 <중앙일보> 13일자 4면 기사
▲ 비교적 균형잡힌 기사 12일 설훈 의원의 발언과 이에 분노한 새누리당 반응을 나름 균형있게 작성한 <중앙일보> 13일자 4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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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훈 의원 발언과 관련해서 <조선일보>도 등판했다. 정치면 기사로, 그것도 설훈 의원 해명발언까지 기사화한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과 달리 <조선>은 13일(토) 사설과 기자칼럼을 통해서 '대통령 연애 안 했다' 발언한 설 의원을 집중 공격했다.

이날 사설 '야당에 대한 마지막 기대는 흔들리지 않게 해야'에서 <조선>은 "새정치연합 의원(설훈)이 여당을 자극하는 말을 쏟아내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한 후 "작은 소동이라고 해도 야당이 결국엔 합리적인 길로 갈 것이라는 믿음을 흔드는 태도"라며 "이런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설훈 의원 발언을 '막말'로 맹렬히 비판한 <조선일보> 9월 13일자 4면에 게재된 기자칼럼. 보통의 기자칼럼과 달리 '시론' 수준의 분량으로 게재됐다.
▲ "막말로 난장판 만든 설훈" 설훈 의원 발언을 '막말'로 맹렬히 비판한 <조선일보> 9월 13일자 4면에 게재된 기자칼럼. 보통의 기자칼럼과 달리 '시론' 수준의 분량으로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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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뿐 아니다. '국회 정상화 논의 모임, 막말로 난장판 만든 설훈'이란 제목의  <기자칼럼>을 통해서는 노골적으로 설 의원을 비판하고 있다. 칼럼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부분은 12일 설 의원이 한 발언을 중심으로 한 사실에 기반한 기술이다. 다만 이날 회의를 지켜본 관계자의 "설 의원이 국회 정상화를 논의하려는 게 아니라 회의를 깨려고 작심한 듯 보였다"는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설 의원의 과거행적을 기술한 대목이다. 설 의원의 '발언 파문'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대목이다. <조선>은 설 의원이 지난 해 10월에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언급하며 "대선 불복이 아니라 더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발언했고,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엔 '이회창 후보의 20만달러 수수설' 발언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피선거권이 박탈된 전력도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 부분은 해당 칼럼을 쓴 기자의 주관적인 평가글이다. 기자는 "설 의원 유(類)의 발언은 대개 지지층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얄팍한 계산에 따른 경우가 많다"고 평가절하한 뒤 "상대를 향해 막말하고 조롱하면 같은 진영에선 박수가 쏟아지기 마련이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상대를 향해 내뱉지만 결국 돌고 돌아 내 뒤통수를 치는 게 막말이다"고 끝을 맺고 있다.

기자칼럼의 제목과 칼럼 본문에 수 차례 등장하는 설 의원의 '막말' 대목과 관련된 본질적 질문 하나. 도대체 설 의원의 발언 중 무슨 대목이 '막말'이라는 것인가. 칼럼의 그 어느 부분에서도 설 의원의 '이 대목'이 막말이라는 정의를 찾을 수 없다.

"설 의원 같은 그런 발언"... 왜 지금 터져 나왔나

정리해본다. 앞서 살펴본 김무성 대표와 <조선일보>의 비판에는 특징이 있다. 어느 대목이 '막말'인지 정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말로 규정한 뒤 강력히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설 의원 같은 그런 발언은 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듯 말했다. <조선>도 제목과 칼럼 단어는 '막말'이라고 규정하고 비판하나 무슨 발언이 막말인지는 딱히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와 비판한 언론이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비판 지점이 모호하면 비판하는 배경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배경을 의심하게 하는 또 다른 대목은 야당 의원의 입에서 '박 대통령 7시간' 발언이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동안에는 '막말'로 규정하지 않다가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새누리당과 <조선>이 나서는 형국인 것이다.

현재 정기국회 기간인 점에 눈길이 간다. 국회의원의 가장 큰 특권은 '면책특권'이다. 국회 기간 중 대정부질의 시 무슨 말을 해도 체포되지 않는 헌법상 권리다. 다수당은 아니나 과반에 조금 못 미치는 많은 의석을 야당은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대정부질의에서 '박근혜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질문을 총리와 장관을 향해 던질 지 궁금하던 차였다.

설 의원의 발언이 바로 이 무렵 터져 나왔다. 새누리당과 <조선>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발언은 하면 안 된다"고 '막말'이라며 사과를 요구하며 거세게 공격하고 나섰다. 정기국회 시즌인 점, 사과를 요구하며 나선 주체가 청와대가 아닌 여의도 정치를 책임지는 집권여당 대표라는 점, '막말'이라며 맹렬하게 비판하는 보수언론 등 삼박자를 종합해 보면 향후에 비슷한 도발이 나오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예방적 차원'의 공격이라는 인상이 짙다.

목적이 진정 그러하든, 그러하지 않든 결과적으로는 야당의 입을 봉쇄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듯 싶다. 이에 야당이 초반에 제대로 된 대응을 내놓지 못한다면 다른 보수언론에서 '그런 발언은 하면 안 된다'며 '막말'로 규정하는 사설, 칼럼으로 엄호사격을 가할 것이 예상된다.

야당의 대응이 궁금하다. 헌법상 권리를 활용한 '7시간 미스터리'에 관한 적절한 지적과 질문과 때로는 폭로가 나올 수 있을지. 아니면 초반 공세에 맥 없이 무너져서 민생과 경제에 집중된 질문만 던지고 말 것인지. 국회가 정상화된다는 뉴스와 함께 공이 울리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 알게 된다.


태그:#설훈, #7시간, #면책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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