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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의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핵발전은 깨끗하고 경제적이라고 믿고 있는가. 핵발전이 없다면 우리 경제가 멈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알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비정상적인' 핵발전 광고에 낚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강력하고 지속적인 핵발전 프로파간다의 희생양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원자력 프로파간다
 원자력 프로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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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 홍보의 '비정상성'은 우리나라만의 현실이 아니다. 일본 제2의 광고대행사에서 18년 동안 영업을 맡아 일한 저자 혼마 류는 책 <원자력 프로파간다>에서 일본 정부와 전력회사가 핵발전의 보급을 위해 어떤 식으로 거대 매체를 이용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본 국민을 속여왔는지를 검증한다. 그 자신의 말처럼 저자는 '광고를 이용한 프로파간다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일종의 내부자다. 그의 증언과 주장이 강한 신뢰성과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책에는 '위험하고 사악한, 그러나 가장 성공했던 광고 전략'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일본 핵발전 홍보의 역사는 우리나라 핵발전 홍보의 오늘을 살피고 내일을 가늠하게 하는 핵심 단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공통점이 많다. 광고비 조성 방식이 특히 그렇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최대의 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을 포함해 원전을 보유한 9개 전력회사는 1970년대부터 핵발전 홍보를 시작해 2011년 3월 11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모두 2조4천억 엔이라는 거액의 광고비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때 쓰인 광고비는 전부 전기요금에서 나온 것이었다.

원자력 광고의 힘의 원천은 그 기초자금이 전부 전기요금에서 '총괄원가방식'으로 공출된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광고 예산은 그 기업의 제품 매출에서 나오는 이익에서 잡게 되지만 원자력 광고 예산은 전기요금이 상승하면 같이 올라가기 때문에 사실상 상한선이 없습니다. (20~21쪽)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산하 조직인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라는 데가 있다. 전기요금에 부과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PD저널> 6월 3일자 기사(원자력 홍보하는 '꿈의 기업'을 보는 씁쓸함)에 따르면,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2002년 1월부터 2010년까지 핵발전 홍보비로 집행한 금액은 총 1009억 8700만 원이다. 주로 드라마 간접광고(PPL), 원자력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 등 방송을 통한 홍보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력산업기반기금은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을 계기로 정부가 설치한 기금이다. 전기요금에 3.7퍼센트의 요율을 부과해 징수하는 일종의 준조세 성격을 갖는다. 2005년~2008년까지 4년 동안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언론광고비로 집행한 돈은 76억여 원에 이르렀다. 한 해 평균 약 20억 원에 가까운 돈이다. 핵발전에 반대하는 많은 이가 자신도 모르게 낸 돈으로 핵발전 홍보를 해온 셈이다.

저자는 일본 정부와 전력회사가 핵발전 광고에 2조4천억 엔이라는 거금을 쓴 목적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국민 세뇌'와 '미디어의 무력화'가 그것이다. 핵발전은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내보내는 한편으로, 거액의 광고비를 지출해 그 광고를 게재한 매체가 광고비 욕심을 내 반(反) 원자력 보도나 뉴스를 내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식이다.

저자가 '전후 최대 규모의 프로파간다'로 평가한 일본의 핵발전 홍보는 (부정적인 의미의-기자) 규모와 질 면에서 여타 광고들을 압도한다. 저자에 의하면 모든 광고의 기본 준수 사항이자 철칙은 '허위사실(거짓말)'을 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을 정당화하는 광고'가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내용을 약 40년에 걸쳐 퍼뜨린, 광고 윤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끔찍한 것이었다고 비판한다.

원자력 광고의 허위는 허다합니다만 그중에서도 최악은 ▲ 원자력발전소는 절대로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 ▲ 만에 하나 사고가 일어난다 해도 방사능은 절대로 밖으로 누출되지 않는다 ▲ 원자력발전은 안전하며 안심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비춰볼 때 전혀 근거 없는 '안전신화'를 계속 이야기해왔다는 점입니다. (18쪽)

거액을 들인 핵발전 홍보의 효과는 컸다. 3·11 이전 핵발전의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50퍼센트가 넘는 일본인들이 핵발전 추진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현상을 유지하자는 의견까지를 포함하면 약 80퍼센트에 이르는 높은 비율로 일본 정부의 핵발전 정책을 뒷받침했다고 한다. 저자는 여기에 '서브리미널(subliminal)'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서브리미널 효과는 영상 안에 아주 짧은 순간 아무런 관계가 없는 화면을 삽입하여 강한 인상을 남기는 수법이다. 가령 어떤 영화를 봤을 때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청량음료가 무심코 마시고 싶어지면 이는 영황에 아주 짧은 순간 그 음료수 사진이 삽입되어 서브리미널 효과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자력인 안전하다"... 무서운 세뇌

저자는 여러 매체의 광고가 매일같이 "원자력은 필요합니다, 원자력은 안전합니다"라고 소곤거리는 상황을 거대한 서브리미널 효과에 빗댄다. 핵발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일반 국민에게 '아,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도록 작용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전력회사가 핵발전을 홍보하기 위해 동원한 수법은 치밀하면서도 교활하다. 저자에 따르면 그들은 미디어가 자체적으로 반핵 메시지를 내보내는 보도를 규제하게 만드는 거대 광고주로 군림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지원을 하는 고급 스폰서가 되어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매체가 반핵 관련 보도를 스스로 억제하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1991년 일본 과학기술청이 국가 예산을 들여 일본원자력문화진흥재단에 발주한 <원자력 PA 방책 제안>이라는 보고서는, 일본 사회가 핵발전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쓸 수 있는 홍보 전략을 세세하게 나눠 제안하고 있다.

'PA'는 'Public Acceptance'의 약칭으로 '사회적 수용'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이 보고서는 '반복된 홍보'의 필요성과 중요성, 미디어 측과의 긴밀한 접촉, 방송국 피디나 뉴스 진행자 단체 만들기 등을 제안했다고 한다. 3·11 직전까지 이 보고서에 쓰인 방책들이 두루 쓰였다고 하니 예의 보고서는 일본 핵발전 홍보의 결정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발전 이익집단이 핵발전 홍보를 위해 동원한 부도덕한 수법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핵발전 이익집단의 압력이 비판적인 보도를 한 사람뿐만 아니라 매체에 광고가 철수될 거라는 공포를 심어 같은 조직 내 다른 부서에서 불만이 나오게 만드는 식의 지극히 교활한 방식이었다고 꼬집는다.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를 보자.

다하라 소이치로는 오늘날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당시 <TV도쿄> 직원이었던 다하라씨는 1974년에 발표한 <원자력 전쟁>이라는 책을 통해 당시 매체 사이에 금기시되고 있던 핵발전 문제를 신랄하게 추궁했다고 한다. 그 결과 거대 광고대행사와 도쿄전력의 압력을 우려한 회사로부터 직장을 나가라는 강요를 받은 다하라씨는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히로미사TV>의 피디 오카하라 다케시는 1992년 일본의 플루토늄 이용 동향을 추적한 한 프로그램에서 저선량 피폭(의료장비 등에서 나오는 적은 양의 방사선을 쐬는 것)의 영향을 언급한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은 복수의 영상제에서 수상할 정도로 우수성을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는 매출이 감소할 것을 우려한 사내 영업부서로부터 압력을 받는다. 결국 회사가 펼친 '자체적 규제'의 희생양이 된 오카하라는 보도국 국장과 차장, 제작프로듀서 등 상급자 셋과 함께 영업국으로 배치되는 좌천성 인사이동을 당한다. 저자는 핵발전 이익집단의 압력과 그로 인해 반핵론자들이 받게 된 박해의 이야기들이 미디어 업계 전체에 순식간에 퍼지면서 동조 압력이 되어 미디어의 비판정신을 빼앗았다고 지적한다.

미디어는 권력을 감시하는 강한 힘을 갖는다. 권력의 '제4부'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거대 광고주라는 '권력'으로 군림하는 핵발전 이익집단의 접대와 유·무형의 압력에 넘어간 일본의 미디어들은 핵발전의 어두운 이면이 갖는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이들에 맞서 싸우지 않고 주변 분위기에 동조하면서 진실은 갈수록 멀어져갔다.

후쿠시마 지켜보고도... 정신 못차린 한국

바로 이웃인 우리나라는 어떨까. 곁에서 3·11의 참상을 목도했으면서도 여전히 원자력은 필요하며 안전하다는 신화를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는 자칭 세계 3위의 원자력대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그들은 저자가 '합의의 날조'(미국 언어학자 놈 촘스키의 용어)라고 지적한, 국민을 속이는 커다란 역할을 맡은 핵발전 광고의 힘을 여전히 크게 믿고 있는 듯하다.

증거가 없지 않다. 핵발전 홍보 예산의 '비정상적인' 배분 상황과 내용의 편파성이 그것이다. <한겨레> 2013년 11월 26일자 기사(내년 전력산업 홍보 예산 원자력 69%…신재생은 1%)는 올해 전력산업 홍보 예산 중 70퍼센트가량이 핵발전 홍보에 몰려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핵발전 홍보를 전담하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올해 홍보 계획을 보면, 핵발전에 대한 신뢰 제고에 13억 5600만 원, 이해 확산에 8억 5100만 원이 잡혀 있다고 한다. 홍보 내용이 객관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는 배경이다.

핵발전은 깨끗하지 않다. 핵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자연과 인간에 치명적이다. 핵발전은 경제적이지도 않다. 핵발전의 경제성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인 발전단가는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있다. 사고 위험 비용과 핵폐기물 처리 비용, 핵발전소 해체 비용 등을 현실화하면 가장 비싸다는 태양광발전보다 몇 배나 높게 나온다는 게 공신력 있는 기관의 전문 연구자들이 내놓는 한결같은 분석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핵발전 산업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비정상적인' 핵발전 홍보의 힘 덕분이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저자는 3·11 사고 직후 간 나오토 수상을 비롯한 많은 각료들이 일본 정부가 국민들에게 수도인 도쿄에서 피난하라는 명령을 내리기 직전 상황까지 몰렸다고 말했음을 환기한다. 당시 일본이 멸망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하면서 말이다. 그 어떤 사고가 국가의 멸망을 가져올 수 있을까. '비정상적인' 핵발전 프로파간다를 냉철하게 따지면서 핵발전 이후의 세상을 준비해야 하는 강력한 이유다.

<원자력 프로파간다>(혼마 류 지음, 지비원 옮김 / 퍼블리싱 컴퍼니 클 / 2014. 8. 30. / 540쪽 / 18,0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원자력 프로파간다 - 위험하고 사악한, 그러나 가장 성공했던 광고 전략

혼마 류 지음, 지비원 옮김, 클(2014)


태그:#<원자력 프로파간다>, #혼마 류 지음,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원자력 홍보, #'합의의 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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