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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려놓았을 때, 이렇게 따뜻한 책도 있구나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가 바로 그런 책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책을 다 읽고 내려놓고도 마음에 그 온기가 남아 따스하다. 한 구석에 책을 비껴놓고 서평을 쓰면서도 그 포근함이 삭지를 않는다.

살붙이를 졸지의 사고로 잃고 아직도 거리로 나가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이나, 그들의 아픔을 함께 힘들어하는 국민들이 사는 나라, 대한민국이란 그런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살아서 그런지, 마음을 살포시 안아주는 언어들이 주옥같다. 책의 갈피마다 아롱진 사진들이 손을 내미는 손명찬 시인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나으려면... 먼저 아파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 표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 표지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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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명찬 시인은 이 책을 시가 아니라고 애써 말한다. 그러나 시 아닌 시가 더 시처럼 가슴을 울린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픔을 안다. 배곯아 본 사람이 배고픈 게 무언지 안다. 손명찬 시인은 앓아 본 사람이다. 앓았기에 남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질 수 있다.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마음을 앓다 기어이 한 올 한 올 수를 놓았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언어의 수를...

저자는 시인이 아니라 '마음치료사'가 되어 우리들 곁으로 책 한 권을 불쑥 들이민다. 스스로 '마음경영 컨설턴트'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으로 마음을 경영하겠다고 한다. 손명찬 시인은 유명인이다. <좋은 생각>의 경영인으로 참여하고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아프기 전에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람이었지만, 아픔이라는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 되어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는 그 격이 다르다.

상처를 어떻게 하면 치료할까. 성처를 치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건 먼저 아파야만 한다. 손명찬은 아픈 사람이었다. 아파 본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야멸차게 우리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겠다고 용기를 내는 것이다. 마음을 치유하는 에세이들과 사진들, 이 책은 그렇게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책은 총 다섯 쪽지로 이뤄졌다. 마음, 치유, 관계, 사랑 그리고 인생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때로는 시를, 때로는 산문을 이어가면서 우리네 아픈 마음을 추슬러보려고 무던히 노력을 한다. 아니 그의 마음을 추스르려다 보니 우리의 마음 또한 추슬러진다.

작가는 "어느 날 폭탄 맞듯 '쾅'하고 터졌다"며 교통사고의 아픔을 표현한다. 어느 누군들 사고를 기다렸다 맞으랴마는 작가에게 그날은 육체 뿐 아니라 정신 또한 한 방 맞은 날이었다. 자신을 '여행자'(곧 '찾는 자')라며 여행자가 길 위에서 그렇게 대책 없이 맞은 것임을 자인한다.

아프면 아플수록 잘 들린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입원과 재활을 거쳐 간신히 회복될 무렵" 다음에는 "마음이 주저앉았다"고 말한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을 그렇게 마음 아파한다.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사계절을 겨울로 살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제 마음의 재활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상처로 꿈틀거리던 중에 그간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픈 사람의 힘겨운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면 된다'라는 막연한 긍정 대신 '누가 그게 된답니까'하는 하소연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294~295쪽 중에서)

한하운 시인이 한센병자가 되어 그들과 같이 뒹굴며 아파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며,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꼬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전라도길 - 소록도 가는 길에> 중에서)이라 읊었던 시인처럼, 작가는 "아파요? 나도 아파요"라고 말한다. 근데 이 말이 참 마음을 잡아당긴다.

작가는 "한 점, 얼룩 없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며,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라고 묻는다. 당연히 안녕하지 못하다. 어디 안녕한 사람이 있으랴. 지금 같은 서러움의 시대에. 그러나 자꾸 괄호 안에 정답을 넣으려고 하지 말고 괄호를 빈 채로 놔두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럴 듯하다. 자꾸 정답을 써넣으려고 하다 보니 아픈 게 아니겠는가.

작가는 "고통에서 나온 사랑도 사랑, 사랑에서 나온 고통도 사랑"이라고 한다. 날로 먹은 일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는 법이다. 사랑이 그냥 될 리가 없다. 아프다고 할 때 사랑 또한 여문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진부한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아픈 마음은 그냥 아무는 게 아니다.

"보이는 대로, 가려는 대로 앞이 척척 열리는 게 내 힘인 줄 알았다. 부정과 무의미의 말들이 슬금슬금 비켜 주는 게 내 지혜인 줄 알았다. 힘겨울 만한 일들, 모르는 일들이 무섭지 않고, 거리낌 없는 게 내 재주인 줄 알았다. 앞, 옆, 위, 어디를 봐도, 무엇을 어떻게 해도 자신 있었다. 그런데 뒤가 있었다." (본문 127쪽 중에서)

이렇게 작가는 자기 곁의 사람들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눈을 떴다. 육체나 마음이 건강할 때는 자기 잘난 맛에 산다. 그건 누구나 그렇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든 뒤가 있다. 부모님, 신과 사랑, 소중한 이들이 있었다. 작가는 아프니까 그들이 보였다. 결국 내 것도 아닌 것을 뽐내며 앞만 바라보고 산다. 이제는 뒤에 누가 있다는 걸 알고 살자고 가르쳐 준다.

'만남의 꼭짓점들을 이은 게 길'이다. 그 길을 간다. 우리는, 작가는 이 길 위에서 만나는 수많은 관계에 대하여 말한다. 마주치면 반갑다고 꼭 껴안는 것도 우리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이가 보는 지구는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다.

"가뿐하게, 우주의 씨앗처럼 살고 싶다"는 시인에게서 열정이 느껴진다. 생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병이 아프면 아플수록, 마음이 서늘하면 서늘할수록, 일이 안 풀리면 안 풀릴수록, 아주 작은 관계에도 감사하면 어떨까? 마음앓이를 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들춰보라고 권하고 싶다. 추석맞이로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손명찬 지음 / 밤삼킨별 사진 / 도서출판비채 펴냄 / 2014.08. / 1만 3500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

손명찬 지음, 김효정(밤삼킨별) 사진.손글씨, 비채(2014)


태그:#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 #손명찬, #밤삼킨별, #마음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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