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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9월 1일 오후 3시 44분]

26일 오후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김봉현 음악평론가
 26일 오후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김봉현 음악평론가
ⓒ 김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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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힙합 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힙합 가수들이 각종 음악차트에서 1위를 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김봉현은 힙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고 힙합의 본질을 소개하는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백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래퍼로 불리는 에미넴의 작품세계와 일대기를 다룬 <더 에미넴 북>, 힙합이라는 음악을 체계적으로 듣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힙합, 우리시대의 클래식 (힙합 30년 명반 50)>, 한국 힙합의 역사와 현황을 평가하고 정리한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등을 출간한 음악평론가다. 또 힙합 가수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 방송 <김봉현의 힙합초대석>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음악평론가 김봉현을 서울 마포구 상수동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바라본 한국 힙합과 힙합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물어봤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힙합이 국민가요로? 애초에 불가능한 일" 

- 한국 힙합 잘 돼가는 것 같나?
"예전에는 미국 힙합과 비교할 때 떨어지는 음반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미국 힙합을 굳이 듣지 않고 한국 힙합만을 듣고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다. 또 논란이 많이 일고 있지만 어쨌든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도 생겼고, 잘 되는 힙합 공연도 많아졌다. 래퍼들이 심심치 않게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기도 하고. 그러나 씬 내부를 들여다보면 온도가 또 다르다. 씬에서 묵묵히 자기 음악하는 뮤지션에 대한 대우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 음원보단 공연 수입이 더 낫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 말해주지 않나. 그렇게 히트를 했는데 국내 음원 수익이 불과 몇 천만 원 정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이 받는 수익은 뻔하다. 국내 음원사가 수익을 아이튠즈(iTunes)처럼 뮤지션에게 배분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플랫폼'이 민망할 정도로 수익을 많이 가져간다, 주인공은 뮤지션인데도. 그래서 시나위의 신대철씨는 '바른 음원 유통'이라는 것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대안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는 있다."

- 힙합의 대중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 '힙합의 대중화'라는 명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왜 대중화를 해야 하는 건지 말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남들도 좋아하고 즐긴다면 분명 흐뭇한 일이다. 하지만 힙합의 대중화라는 미명 아래, 힙합이라는 장르가 지닌 고유한 멋과 매력이 거세되거나 변질된 음악이 만들어지고, 또 그것들이 힙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반대다.

대표적으로 '발라드 랩'이 그렇다. 발라드 랩은 발라드라는 음악에 랩을 물리적으로 붙여놓았을 뿐 힙합이라는 음악이 지닌 멋과 매력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물론 발라드 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런 음악이 마치 진짜 힙합이고 정통한 힙합처럼 인식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힙합의 대중화를 의심의 여지 없는 의무처럼 내세우며 이상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다른 음악과 구별되는 힙합 고유의 멋과 매력을 간직한 채로 변화와 섞임을 추구하면서 한국 힙합 씬이 지속 가능한 최소한의 생태계를 만드는 데에 주력하는 편이 더 낫지 않나? 물론 힙합의 고유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힙합이 국민가요가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 올해 출간한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에 '도덕과 윤리로만 재단하면 힙합을 제대로 볼 수 없다'라는 구절이 있던데, 어떤 의미인가.
"일단 힙합은 음악이자 예술이지 않나. 꼭 힙합이 아니라도 예술을 도덕과 윤리로만 바라보는 건 말이 안 된다. 또 단순 비교는 조금 무리일 수도 있지만 각종 범죄와 충격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는 예술로 인정받는데, 래퍼가 자기 노래에서 욕을 하면 과격하거나 무례한 존재로 인식된다. 공평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힙합은 그 본질과 속성 상 어느 음악보다 자기 고유의 색깔과 개성이 강하고, 그런 만큼 힙합을 잘 모르거나 힙합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오해와 편견을 가지기 쉬운 음악이자 문화다.

그래서 힙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힙합 음악이 발생한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도덕과 윤리의 관점을 내려놓고 힙합을 바라본다면 힙합의 세계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흥미롭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랩 배틀'을 대할 때 '싸우는 건 나쁘다'라고 접근하는 대신, 음악적으로 자웅을 가리는 과정에서 상대방보다 더 잘하기 위해 더 좋은 가사, 더 좋은 랩이 나오게 되는 것이며, 결국 모두의 수준이 향상되는 긍정적 효과가 나온다는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래퍼들의 싸움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음악적 경쟁'인 셈이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더 훌륭한 예술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 힙합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흔히 래퍼들을 가리켜 '자랑한다, 허세 부린다'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자수성가'라는 맥락이 있다. '가난하고 위험한 곳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노력해 결국 부와 명예를 얻은' 흑인 래퍼들의 서사가 랩에 담겨 있는 것이다. 힙합 특유의 이 자수성가 어법은 듣는 이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준다. 꼭 겸손이 능사는 아니다. 래퍼들은 자기가 이룬 것을 스스로 당당하게 드러냈고, 그 태도가 많은 이를 힙합에 빠지게 했다."

힙합은 불량하지 않다, 부모들은 걱정 마시라

- 힙합은 '무례(disrespect)'한 태도 때문에 사람들을 종종 눈살 찌푸리게 하는 반면, 상대방을 향한 '존중(respect)' 태도 역시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존경보다는 무례가 더 부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힙합이 존중(respect)과 무례(disrespect)라는 두 가지 성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이 둘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어떤 래퍼가 누군가를 '디스'했다고 치자. 이유는 자신의 확고한 기준을 상대방이 위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신의 확고한 기준을 잘 지켜내고 있는 사람을 그 래퍼는 어떻게 대하겠는가? 적극적으로 '리스펙트'하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무례(disrespect)를 하는 래퍼들은 존중(respect)하는 대상도 뚜렷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보통 누군가를 존중(respect)하는 것보다는 공격하는 것이 더 화제가 되고 관심을 끄는 세상이지 않나. 미디어가 그걸 더 부각하기도 하고."

-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식이 힙합을 좋아하거나 래퍼가 되겠다고 하면 부모는 십중팔구 걱정을 한다. 물론 힙합이 공격적이고 거친 면모를 지니고 있는 건 맞지만 그와 동시에 힙합의 여러 면모가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앞서 말한 래퍼들의 자수성가 어법이 일단 그렇다. 래퍼들이 자기자랑을 하고 좋은 차, 좋은 집에 대해 말하는 것은 결국 '더 나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내 삶을 더 나은 쪽으로 점점 바꾸고 있다는 일종의 항변인 셈이다.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래퍼들의 이러한 메시지를 좋아하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또 랩은 미국에서는 이미 교육과 연결되고 있다. 대학교 전공수업에서 랩 가사의 문학성을 논하고, 어떤 대학에서는 아예 랩 앨범 타이틀을 강좌명으로 하기도 했다. 미국의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수학공식도 랩으로 만들어서 가르친다. 그 편이 더 효과가 좋았다는 실제 통계도 있고. 내 강의를 들으러온 직장인들 역시 랩과 힙합이 지닌 고유의 어법과 에너지가 자신의 일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즉, 힙합은 단순히 시시껄렁하고 불량한 음악이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가 좋아해도 충분히 괜찮고 긍정적인 음악이다(웃음)."

- 힙합, 랩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조언 또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한 분야를 깊고 제대로 이해해야 할 의무는 없다. 누군가는 유행에 동조해서 랩을 잠시 좋아했다가 이내 관심을 끌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힙합은 인생에서 1순위가 아니라 6순위 정도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힙합을 잠깐의 열정이나 유행으로만 지나쳐 보내기 싫은 사람이라면, 힙합은 음악이자 문화이고 동시에 삶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이해가 있어야 힙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그래야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에 낸 책에 서명을 할 때 늘 '힙합: 음악, 문화, 삶의 방식'이라고 적어 드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10월에 청소년 책을 한 권 낸다. 힙합 고유의 요소들을 쉽게 풀어내는 동시에 청소년에게 도움이 될 만한 힙합의 여러 부분을 정리한 책이다. 또 당장 내일모레(9월 3일)에는 한국마사회에서 강연을 한다. 과장급 임원을 대상으로, 일상과 긍정적으로 맞닿아 있는 힙합의 여러 부분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몇몇 강의와 연재, 시와 랩에 관한 공연 등을 예정하고 있다. 자세한 건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을 참조해 주시라."


태그:#변원준, #김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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