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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앞에는 프랑스 화가 밀레(1814-1875)의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다. 나는 이 그림이 왠지 좋다. 이 그림에는 노동 후의 쉼이 있고 하루 일을 마치고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에 신에게  감사하는 기도가 있고 부부간의 행복이 깃들어 있다.

나는 은퇴 후에 소일거리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고향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지어가고 있는데 이번에 긴 여름 장마 때문에 오래도록 가보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오후에야 논에 나갔다. 지하철로 평동역에 내려서 자전거를 타고 논에 가는데 대지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이 부드럽다. 도시의 시멘트 공간의 답답함 속에서 너른 공단의 광장과 자연 속에 들어서니 마음이 편해졌다.

논에 오니 벼이삭들이 활짝 피어 나를 반겨 준다. 사람으로 치면 이팔청춘이다. 벼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바쁘고 장마 때문에 오지를 못하니 잘 자라는지 걱정이었다. 이 녀석들은 내가 오지 않았어도 스스로 잘 자라 주었다. 그러나 벼만 잘 자라는 게 아니라 논두렁에 피나 잡초들도 잘 자라서 벼이삭을 덮고 있었다.

그런 것을 보고 그냥 갈 수가 없다. 낫을 가지고 논두렁의 잡초를 베었다. 날씨가 더워 땀도 나고 허리도 아프다. 그래도 욕심을 내어 키 큰 잡초들을 베어 버리니 그제야 논두렁에 있는 벼이삭들이 햇볕에 노출이 되었다. 약 70m 되는 논두렁을 허리를 펴지 않고 다 벤 후에 쉬려고 밖에 나왔다. 땀도 많이 나고 팔다리도 피곤하다. 평상에 앉아서 쉬는데 한줄기 바람이 스쳐간다. 아, 너무 좋다.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행복이란 놈이 바로 곁에 있었다.

논두렁의 잡초를 베고 나는 이 평상에서 쉼을 가졌다. 그 때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고 나는 너무 행복했다.
▲ 내가 쉬었던 철로 밑의 평상 논두렁의 잡초를 베고 나는 이 평상에서 쉼을 가졌다. 그 때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고 나는 너무 행복했다.
ⓒ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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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퇴직 후에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져서 많이 쉰다. 집에서도 멍하니 쉬기도 하고 산에가서 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쉼의 행복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마음 속에 잡념과 망상만 들어와서 더욱 괴로울 뿐이었다.

진정한 행복이란 땀흘려 노동한 후에 잠깐 쉴 때 찾아 오는 것이었다.


태그:#쉼, #행복,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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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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