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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사회
 부품사회
ⓒ 레인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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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대란의 시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규격화된 '부품'이 되어 가고,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기업이 원하는 '사양'에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인다. <부품사회>의 저자인 피터 카펠리 교수는 바로 이러한 '부품사회'가 구직과 구인난이란 악순환을 불러온다고 역설하며 일자리 문제를 조명한다.

8월 말이면 '코스모스 졸업'이라 불리는 후기 졸업생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자리를 찾느라 몇십 통의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느라 바쁜 시즌이 될 것이다. 내가 들어가고 싶은 기업의 고용주가 요구하는 스펙에 맞추기 위해 영어, 자격증에 투자한 돈이 얼마인가?

그러나 고용주는 영어와 자격증은 기본이며 별도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 없는 지원자, 입사하자마자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력을 이미 갖춘 지원자를 원한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졸업생을 더 많이 배출하고 회사에 필요한 맞춤 기술을 더 많이 가르치도록 교육 자원을 확대해 달라고 요구한다.

교육 투자를 놓고 오랜 기간 경제학자와 사회학자가 서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교육 투자가 자격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원자에게 필요한 요소라고 주장하는 반면 사회학자들은 교육 투자가 인내심 같은 지원자의 자질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빈 자리는 왜 채워지지 않는 걸까?

많은 사람들, 특히 경영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회사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과 세탁기의 부품을 교체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데에서부터 출발한다. 부품 교환과 직원 채용의 차이는 '필요성'이다. 기계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품을 교체해야 하지만 회사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빈자리에 직원을 고용해야 할 필요는 없다.

자리를 채우지 못했다고 해서 고용주들이 회사 운영을 멈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때로는 다른 직원이 빈자리를 맡아 일을 처리하기도 하고, 종종 업무를 처리하지 못해 프로젝트 진행이나 사업 확장을 연기하는 상황도 발생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노동시장에서 고학력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이런 학위 경쟁이 이제는 실무 경험을 쌓으려는 경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실무 경험이란 이미 그 일을 했던 사람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간판이나 마찬가지로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인턴제도'다.

인턴제도가 빈 자리를 채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럽은 도제 양성 프로그램을 제도화해 작업 기반 기술에 대한 책임을 정부와 고용주가 공동의 몫으로 받아들인다.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은 다른 나라 같으면 학교에서 제공할 수 있는 기초 학습조차도 고용주가 처음부터 책임을 지고 가르친다.

우리나라는 원가관리의 압박 때문에 고용주가 많은 돈을 들이며 교육 훈련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직원이 이직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용주가 직원 훈련에 적극적인 의사를 밝히지도 않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기술 격차에 관한 오해와 진실

경제조사기관인 컨퍼런스 보드는 <준비 안 된 미국 노동자>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주들의 절반 정도는 자기가 고용한 직원들이 업무를 수행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믿고 있다. 또한 맨파워의 조사 결과도 직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미국 고용주 중 52%가 '인재 부족'을 공통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오해1 : 지원자의 업무 기술 부족
vs. 영업 담당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자리이긴 하지만 영업 기술은 업무를 해 나가면서 배울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술자나 전문 기능공은 둘 다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지만 이 기술 또한 실무를 통해 많은 부분을 익힐 수 있다.

오해2 : 너무 높은 급여를 원하는 구직자들
vs. 위 질문과 기술 부족과는 관계가 없다. 고용주가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노동시장의 수준에 맞춰 충분한 급여를 줄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 가격보다 적은 금액을 받고도 일할 의향이 있는 지원자를 찾아 헤매는 고용주도 있다. 고용주들이 충분한 급여를 제공하지 않아 생긴 문제를 지원자의 기술 부족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오해3 : 갓 졸업한 지원자를 뽑는 것은 손해
vs. 논리대로라면 기술 부족은 곧 지원자의 기술 부족을 뜻한다. 그러나 맨파워 조사에서 지원자의 기술 부족을 지적한 고용주는 15%에 불과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학교에서 배운 지식 외에도 특정 업계나 비즈니스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맨파워에서 지원자에 대한 고용주의 불만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거의 2배가 넘는 고용주들이 지원자의 지식 부족보다는 경험 부족이 가장 큰 문젯거리라고 답변했다.

다시 말해, 그 일을 이전에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업무 처리에 대한 암묵적 지식의 부족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용주가 경력자를 지원자격으로 내세우고 이로 인해 취업의 문이라는 현관이 급격히 좁아지고 결국엔 업무 현장의 위축이라는 심장마비에 걸리고 만다.

채용시장의 암울한 현실

괜찮은 사람들이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전적으로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을 듯하다. 지원자들은 여전히 넘쳐나고, 고용주들은 깐깐하게 직원을 고를 여유가 있으며, 많지 않은 일자리에 도전하는 지원자는 필요 이상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

교육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긴 하지만 사실 고용주 입장에선 지원자의 학업 성취도에 대해선 별 불만이 없다. 더구나 학생들은 일자리가 있는 곳을 따라 전공을 선택하고 공부하는 성향을 띤다. 그러니 모 대학의 총장 인터뷰 헤드라인이 "취업률 100% 목표 스타대학 만들기"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우리사회가 언제부터 대학이 취업문으로 통하였는지...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일자리 수요와 공급의 연결 고리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 바로 채용 과정이다. 고용주들이 인재 발굴의 실패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온갖 자격증과 전문 지식 요건을 직무 기술서에 포함시키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자리에 알맞은 사람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존재하지도 않는 '유니콘 찾기'와 다름 없다고 마인드뱅크 컨설팅 그룹의 설립자 겸 사장인 닐 그룬스타라는 말한다.

고용주와 지원자 모두가 행복한 세상

자, 이 책이 담고 있는 근본 질문으로 돌아가자. 채워야 할 빈자리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왜 실력과 재능을 갖춘 괜찮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일까? 바로 위에서 언급한 '유니콘'을 찾기 때문이고 직무 내용도 완벽하게 명시하지 않으면서 '안성맞춤'인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를 교육 시스템에 떠넘기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 시스템이 회사의 필요에 따라 맞춤식 과정을 더 많이 제공하고 더 질 높은 교육을 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기업이 대학과 손잡고 있다. 성균관대-삼성, 중앙대-두산, 인하대-한진, 울산대-현대, 천안연암대-LG 우리나라 5대 그룹이 실속과 명분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학교와 회사를 하나로 묶는 협업 시스템이라는 본질을 바라본다면 우리사회가 좀 더 지원자 중심의 행복한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능력을 갖춘 사람이 없다는 고용주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니면 낮은 임금을 받고도 일할 완벽한 지원자를 찾기가 힘들어서 괜히 해 대는 넋두리 인지는 <부품사회>를 읽고 있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부품사회 - 왜 일자리가 사라지고 실업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을까

피터 카펠리 지음, 김인수 옮김, 레인메이커(2013)


태그:#부품사회화, #자본주의,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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