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순천 계월마을. 과수를 많이 재배하는 송치재 인근의 산골마을이다.
 순천 계월마을. 과수를 많이 재배하는 송치재 인근의 산골마을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계월마을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한다. 문유산과 바랑산, 병풍산이 감싸고 있는 산골마을이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마을의 지세가 둥근 달을 닮아서 '월등(月燈)'이다. 달그림자가 계수나무에 걸린다고 '계월(桂月)'이다.

계월리는 상동, 외동, 이문(중촌) 등 3개 자연마을로 이뤄졌다. 100여 가구에 200여 명이 산다. 밤에 달이 뜨면 달그림자가 마을 앞 산등성이 나무에 걸린다. 그 풍광이 아주 매혹적이다.

마을에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마을사람들은 암수가 서로 몸을 합친 모양새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마을의 돌담도 멋스럽다. 옛 모습 그대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반듯하지 않아 더 정감이 간다. 이 돌담에 몸을 기댄 능소화도 요염하다.

계월마을의 느티나무 두 그루. 마을주민들이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다. 쉼터로도 제격이다.
 계월마을의 느티나무 두 그루. 마을주민들이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다. 쉼터로도 제격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계월마을 돌담길. 아담한 골목길이 옛 정취를 그대로 머금고 있다.
 계월마을 돌담길. 아담한 골목길이 옛 정취를 그대로 머금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산자락에는 복숭아와 자두, 감, 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복숭아는 지금 한창 수확하고 있다. 가을에 딸 감과 밤은 토실토실 살을 찌우고 있다. 수확을 끝낸 매실나무도 지천이다. 과수로 먹고사는 마을이다.

계곡도 예쁘다. 문유산 군장마을 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고 깨끗하다. 수량도 풍부하다. 계곡 바위마다 다슬기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럼에도 찾는 발길이 많지 않다. 길거리에서 복숭아를 파는 주민도 없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다.

마을이 이렇게 아름다운데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을을 돌아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누가 보더라도 마을이 여행지가 아니다. 변변한 문화재나 유적지 하나 없다. 그렇다고 술집이나 식당, 찻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편의점은커녕 제대로 된 슈퍼 하나 찾기도 힘들다.

느림의 미학을 아는 마을이다.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다. 산골마을의 정취와 문화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기에 제격이다.

계월마을 계곡. 물이 맑고 풍부해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좋은 곳이다.
 계월마을 계곡. 물이 맑고 풍부해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좋은 곳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윤재봉 씨가 복숭아를 따고 있다. 윤씨는 계월마을에서 복숭아와 자두, 매실을 재배하고 있다.
 윤재봉 씨가 복숭아를 따고 있다. 윤씨는 계월마을에서 복숭아와 자두, 매실을 재배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윤재봉(41)씨는 이 마을에서 과수를 재배하는 농사꾼이다. 복숭아와 매실, 자두를 재배하고 있다. 다수확을 위해 애쓰기 보다 자연에 맡겨서 농사를 짓는다.

"게을러 빠졌어. 재봉이는. 술만 먹고 다니고. 그러느라고 풀도 안 베. 농약도 안 허고. 그렁께 수확도 쪼끔밖에 못허제. 오죽하믄 지 아버지가 풀을 베겄어? 아버지가 장님인디."

지난 14일, 마을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의 얘기다.

"어쩌겄소? 천성이 그런디."

윤 씨의 말대답이다. 그러면서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계월마을의 복숭아. 깊은 산골에서 재배해 맛과 향이 으뜸이다.
 계월마을의 복숭아. 깊은 산골에서 재배해 맛과 향이 으뜸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윤재봉 씨가 딴 복숭아. 가공을 위해 세척을 기다리고 있다.
 윤재봉 씨가 딴 복숭아. 가공을 위해 세척을 기다리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그는 과수 농사꾼이다. 경력도 꽤 된다. 재배면적은 복숭아 1만㎡, 매실 1만6500㎡에 이른다. 자두도 수천㎡를 심었다. 그럼에도 자타가 인정하는 게으름뱅이다. 하지만 연구는 많이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면서도 맛있는 과일을 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한다.

"몸은 게으른디. 생각은 늘 앞서 가더랑께. 그만큼 연구하겄제. 남들 놀 때."

조금 전에 핀잔을 줬던 그 아주머니가 이번에는 윤씨를 추켜세운다. 누구보다 그를 잘 알기 때문이다.

씨앗을 분리한 매실. 윤재봉 씨의 매실 가공은 씨앗 분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씨앗을 분리한 매실. 윤재봉 씨의 매실 가공은 씨앗 분리에서부터 시작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매실 정과. 씨앗을 뺀 매실을 항아리에서 숙성시켜 만들었다.
 매실 정과. 씨앗을 뺀 매실을 항아리에서 숙성시켜 만들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사실 윤씨는 과일만 따서 팔지 않는다. 생과일을 팔면서 가공을 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 선을 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는 그 양을 크게 늘렸다. 그는 과일을 말리고 숙성을 시켜서 식품으로 만든다. 이를 위해 법인도 만들었다. '에코힐링영농조합'으로 이름 붙였다.

매실은 씨를 빼서 항아리에 숙성시키거나 훈증을 거쳐 정과나 시럽, 피클로 만든다. 설탕을 한 숟가락도 넣지 않는다. 햇볕에 말려 건과를 만들고 술도 담근다. 맛에 따라 '오매'와 '황매'로 나눈다. 자두도 썰어 말려서 건과로 만든다. 숙성시켜 만든 정과도 있다. 복숭아는 건과로 만들고, 숙성과 발효를 거쳐 식초나 효소로 담근다.

모두 간식용으로 맞춤이다. 매실이나 자두 정과는 물과 함께 끓여 차로 마셔도 품위가 남다르다. 잘게 썰어 된장이나 고추장에 버무려서 반찬으로 먹어도 별미다. 복숭아 건과는 우유를 넣고 갈아 마시면 더 좋다.

매실과 복숭아 청시럽은 잼이나 조청 대신 써도 좋다. 생선이나 고기를 요리할 때 넣으면 고기의 맛을 살려준다. 지천에 널린 솔잎과 산더덕꽃, 여자, 칡꽃, 초피나무, 하늘말나리 등 수십 종의 특산식물도 가공한다. 이것을 이용해 전통방식 그대로 식초나 약술로 담기도 한다.

숙성용 항아리. 윤재봉 씨가 항아리에서 숙성되고 있는 과수를 저어주고 있다.
 숙성용 항아리. 윤재봉 씨가 항아리에서 숙성되고 있는 과수를 저어주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윤재봉 씨가 직접 가공한 복숭아와 자두, 매실 제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윤재봉 씨가 직접 가공한 복숭아와 자두, 매실 제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가공제품은 모두 <동의보감> 등을 근거로 했다. 유통기간이 길지 않는 생과의 단점도 보완했다. 1년 열두 달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가공에는 '게으른' 그가 재배한 과일이 으뜸이었다. 재배를 자연에 맡긴 덕분에 안심할 수 있어서다. 주문을 받으면 정성껏 담고 직접 손으로 음용법을 써서 보내주는 것도 애틋하다.

"지금까지는 제 것만 가공했어요. 앞으로는 마을사람들의 과일도 가져다 가공해야죠. 소득이 생과로만 팔 때보다 훨씬 더 높아요. 소비자 입장에서도 사철 복숭아와 자두, 매실을 맛볼 수 있어서 좋겠죠."

윤씨는 오늘도 밭에서, 공장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전히 얼굴엔 천진한 미소 가득 머금고 있다.

순천 계월마을의 한옥촌. 외지인들이 들어와 지은 집들이다.
 순천 계월마을의 한옥촌. 외지인들이 들어와 지은 집들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태그:#계월마을, #윤재봉, #힐링에코, #매실정과, #자두정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