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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며 신도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교황의 옷에는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 배지가 달려 있다.
▲ 손 흔들어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며 신도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교황의 옷에는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 배지가 달려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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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수단(성직자들이 평소 입는 옷) 위에 노란 리본은 유독 눈에 띄었다. 4박 5일의 짧은 방한 일정, 30분 단위로 일정을 소화한 세계 가톨릭의 수장은 한국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노란 리본을 가슴에서 떼지 않았다. 교황은 '시복미사' 집전과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을 목적으로 방한했지만, 방한 일정의 중심에는 '세월호'가 있었다.

기자 : "교황님은 (16일 광화문 시복미사 전 카퍼레이드 당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을 때 즉흥적으로 가셨다고 (교황청 대변인이) 그랬는데, 이틀 연속 노란색 리본을 달고 다가가셨습니다. 희생자 유가족을 상징하는 리본인데 왜 이 리본을 다셨는지 물어보셨어요?"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 : "안 물어봤는데요. 제 생각에는 세월호 참사는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고, 사실 이것(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인 김영오씨를 만난 것)을 보고 너무 과대해석하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중략)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교황님은) 세 번 구체적으로 관심을 보여주셨는데요. 무엇보다 분명하게 교황님이 어떠한 마음을 가졌는지 대전 경기장(8월 15일)에서와 오늘 카퍼레이드 했을 때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또 순교 성지에서도 보여주셨고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 8월 16일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와의 질의응답 당시

"교황님은 분명한 관심을 보여주셨다... 더 이상 할 말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왜, 무슨 이유로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녔는지 말하지 않았다. 위 기자회견은 지난 16일 124명 시복식 행사 이후에 나온 내용이다. 이날 80만 명(교황방한준비위원회 집계)이 참여한 대규모 미사가 순조롭게 마무리됐고, 순교자 124명이 복자(福者)로 선포되는, 한국 가톨릭계의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날 회견의 질의응답의 관심은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에 쏠려 있었다.

처음 질문에 나선 한 기자가 "김영오씨를 만난 것이 사전에 이야기가 된 것인지, 전에도 카퍼레이드하다가 내리신 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김영오씨가 전달한 노란 편지를 교황이 읽었는지"를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님께서는 항상 모든 분들의 어떤 고통에 관심을 두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유족들을 포옹해 주셨고 또 차에서 내리셔서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러 가셨다"라고 답했다.

이에 또 다른 기자가 "답변이 충분치 않았다"면서 재차 질문을 던졌다. 이 기자는 "사전에 교황님께서 생각을 하시고 그런 파격 행보를 보이신 것인지, 아니면 한동안 TV 영상에서 통역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셨던 장면이 있는데 통역 이야기를 듣고 가신 것인지"를 물었다. 롬바르디 신부는 "통상적으로 그런 만남은 사전에 준비된 것이 아니다"라면서 "교황께서는 정말 즉흥적인 분이다"라고 답했다. 즉흥적으로 내려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것인 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다.

이날 브리핑에서 마지막 질문에 나선 한 기자는 다시 한 번 세월호 관련 질문을 내놨는데, 질문이 날카로웠다. 앞서 인용한 질문이 바로 그것인데 기자는 교황이 그렇게 즉흥적인 사람이라면서 이틀 연속 세월호 희생자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이유를 물었다. 이 질문을 받은 교황청 대변인은 결국 "세월호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교황청의 인식을 소개하면서 "교황이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답했다.

[선물①·②-8월 15일] 세월호 유가족 만난 교황... 그리고 노란 리본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충청투데이 정재훈기자>
▲ 교황 가슴에 '노란리본'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충청투데이 정재훈기자>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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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세월호 행보'는 지난 15일부터 시작됐다. 그는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기 직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교황방한위원회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이 만남을 두고 "교황이 방한 뒤 첫 번째 공개 미사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따로 만난 것은 이례적이고, 상징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세월호 생존학생 두 명과 유가족 여덟 명 등 10명을 만난 자리에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과 같이 미사를 집전해 달라"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교황은 "그렇게 하겠다"라고 답했다. 가족들은 이 자리에서 교황에게 노란 리본과 편지 등을 전달했다.

잠시 후, 미사 집전을 위해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등장한 교황의 왼쪽 가슴에는 어느새 노란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교황은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의 삼종기도를 통해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라고 기도했다. 유족들의 바람 하나하나에 응답한 것이다.

이날 만남에 앞서 십자가를 메고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진도 팽목항을 돌아 대전까지 온 단원고 학생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가 교황에게 전달을 요청한 십자가에 대해서도 교황은 로마 교황청으로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들어온 교황은 세월호 유족들에게 또 다른 배려를 보여준다. 미사장에 나와 차량으로 행사장을 돌던 중 세월호 희생자 가족 36명이 있는 곳에서 차를 멈추고, 내린 뒤 다가가 격려해 줬다.

[선물③-8월 16일]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와의 만남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는 모습.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는 모습.
ⓒ 교황방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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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은 교황의 방한 목적 중 하나인 '124명에 대한 시복미사'가 거행됐다. 80만 명이 광화문에 운집했고, 종교단체의 미사임에도 불구하고 공중파 방송을 포함 거의 전방송에서는 이를 생중계했다. 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교황이 차를 세웠다. 통역사에게 몇 마디를 물은 뒤, 교황이 차에서 내렸다. 그곳은 세월호 유가족이 위치한 구역이었다. 교황은 당시 34일째 단식 중이던 김영오씨 앞에 서서 그의 손을 잡았다.

단식으로 인해 10kg 이상 체중이 빠진 김씨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 제정되도록 도와주시고…, 편지 하나 전해드리겠습니다, 잊어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세월호를"이라고 말했다. 앞서 교황청 대변인이 설명했듯이 이날 이례적인 만남에 대해 교황청이 내놓은 공식 입장은 '교황이 즉흥적'이기 때문에 차에서 내렸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미사 이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황과의 만남에 대해 "아주 응어리진 게 풀린 기분이다, 무거웠던 짐을 내려놨다는 기분이랄까"라고 말했다. 이어 "편지만 전달했다뿐이지, 전 세계 언론에 알렸다뿐이지…"라면서 특별법 관철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관련기사 : "'교황 편지'로 끝난 게 아니다... 한 놈이라도 목숨걸고 싸워야").

[선물④·⑤-8월 17일] 이호진씨 세례 직접 챙긴 교황... 그리고 편지

세월호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지난 17일 오전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모습.
 세월호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지난 17일 오전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모습.
ⓒ 이호진씨 딸 이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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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4일째인 지난 17일 교황의 첫 행보는 세월호 유가족이자 15일 교황을 만나서 세례를 청원했던 이호진씨에 대한 세례로 시작됐다. 이날 세례의 의미는 매우 특별해 보인다. 교황청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교황의 방한 중 사전계획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일이 두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호진씨에 대한 세례, 다른 하나가 서강대 예수회 방문이었다.

이호진씨가 전한 세례식의 뒷이야기를 통해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씨는 세례를 받은 뒤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했다. 이씨는 세례식에 참여한 신부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면서 "만약에 교황님이 (자신이 요청한) 세례를 거절할 경우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해 들었다"며 한 사람을 위한 세례를 거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의 상처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이어 이씨는 "또 하나 제가 무척 감동스럽게 받아들인 부분은, 교황님께서 세례를 주시겠다고 결정하신 뒤 저와 교황청과의 커뮤니케이션 부분에서 미처 소통되지 않아 제가 세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까봐 그 부분을 직접 챙기셨다"라며 교황의 세심한 배려를 소개하기도 했다.

교황이 세월호 가족에게 준 마지막 선물은 이호진씨 세례식이 거행된 이후 언론에 공개된 편지였다. 교황은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해 진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자필로 서명한 위로 편지와 묵주를 선물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을 전달한 것이다.

교황은 편지를 통해 "실종자 가족들에게 직접 찾아뵙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면서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라고 위로했다. 특히 교황은 편지에 10명의 실종자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고 이들이 부모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보살펴 달라고 기도했다.

'노란 리본' 달고 한국 떠난 교황

4박 5일 방한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축국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4박 5일 방한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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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 : "(전략) 저희가 한국에서 특별히 느낀 게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국가가 분단돼 이로 인한 고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략) 두 번째는 세월호 참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특히 교황께서 여기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표명하셨습니다. 세 번에 걸쳐 관심을 표명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런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비극을 겪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공감한다는 것이었죠."
- 8월 17일 저녁 마지막 브리핑 중

방한 기간 중 교황은 세월호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그는 차를 세웠고, 내렸고, 다가갔고, 손을 잡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왜 차를 세웠는지, 왜 내렸는지, 왜 다가갔는지, 왜 손을 잡았는지, 왜 고개를 끄덕였는지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행동으로 유가족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공감했다.

말을 아끼던 교황청 대변인은 마지막 브리핑에서 한국에서 느낀 '특별한 두 가지'를 언급했고, 그중 하나로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을 언급했다. 그들에 대한 교황의 상당히 많은, 특별한 관심도 이때만큼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4박 5일의 방한 일정을 마친 뒤, 한국을 떠나는 교황은 환하게 인사했다. 그의 하얀 수단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태그:#교황, #세월호, #노란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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