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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박사.
 우석훈 박사.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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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기자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와 약속시간까지 20여 분이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서울 광화문 광장의 천막과 노란리본,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서 발길을 재촉했다. 삼청동으로 방향을 돌렸다. 우석훈 박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평일 오후였지만 자동차와 사람으로 붐볐다. 얼마전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 삼청동을 소개한 이후 평일에도 찾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그와의 인연도 얼추 10년이 돼 간다. 기억에 남는 건 지난 2006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두고 그와 나눈 이야기들이다. 그는 스스로 '비(B)급' 경제학자라고 소개한다. 어디에선 아예 '씨(C)급'이라고도 한다. 국내 경제학계에선 드문 생태경제학을 전공했고, 프랑스에서 학위를 땄다. 이 때문에 그의 시각은 항상 새롭다. 아니 튀는 쪽에 가깝다. FTA뿐 아니라 많은 경제이슈에서 그의 목소리는 잔잔한 울림이 있다.(관련기사: "한강의 기적이 될지, 한강의 괴물이 될지")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말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2시간여 동안 그는 말을 쏟아냈다. 굳이 기자가 묻지 않더라도 말이다. 기자는 우 박사가 그렇게 많은 배를 타봤던 사실을 처음 알았다. 크루즈선부터 오징어잡이 배, 경찰 순시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최근 한달여동안 '세월호'에 빠져 있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얼마 전 <내릴 수 없는 배>(웅진지식하우스)라는 책도 내놨다. 그와 만나 다른 것들을 들어봤다. 여기 아래 그의 이야기다. 따로 기자의 질문은 쓰지 않았다.

누가 그들을 배에 태웠나

1. 책을 어떻게 쓰게 됐냐구요? 박근혜 대통령 사과 회견을 텔레비전으로 본 다음이에요. 아니, 너무 이상하더라구요. 배에서 벌어진 사고인데, 앞으로 배를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지금도 그렇잖아요? 뭐, 검찰, 정부 대책이라고 아무리 봐도 없어요. 아,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을 했지요.

2. 원래 책 제목은 '내릴 수 없는 배'가 아니었어요. 그냥 숫자로 '4.16'이었어요. 부제가 '내릴 수 없는 배' 였어요. 근데 대통령이 그날을 기념일로 한다고 하길래,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지더라구요. 그래서 출판사 편집자한테 '제목 바꾸자'고 했어요. 자연스레 부제가 주제로...

3. 전 애들이 '그 배에 태워졌다'고 생각해요. (담배 한 개비를 물며) 내가 그래도 경제학자라는데,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이 배를 왜 탔냐는 거예요. 싸지도 않고, 오래 걸리고...(여행) 비용을 줄이려고 배에서 하룻밤을 자는 걸 생각했을 텐데, 그것도 아니에요. 저가항공과 패키지 등을 이용하면 전체 비용으로 보더라도 싸게 갈 수 있었어요.

4. 그런데 왜 탔을까. 쉽게 생각하면 유착, 리베이트 뭐, 이런 것을 떠올릴 수 있겠죠. 지금 대체로 나오는 청해진해운, 해운조합, 해경 등의 유착과 비리. 이러면, 그냥 비리 문제로 끝나는데. 제가 이번에 책을 쓰면서 자료를 받은 게 있어요. 교육청 공문이에요. 2011년쯤부터 교육당국에서 노골적으로 비행기가 아니라 카페리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라고 해요.

5. 이것이 당시 정치경제 상황이 맞물려 있다고 봐요. 고유가 속에 배, 비행기 등 여러 산업들이 힘들어졌고, 저가항공 운항, KTX 노선 확대 등으로 대형 항공사나 선박사업도 어려워졌어요. 거기에 정부의 크루즈산업 육성책 등이 맞물려 있는 거예요. 선박산업을 살려서, 4대강까지 뱃길이 이어지면 금상첨화인 거고. 정부쪽에선 누군가를 페리에 태워야 했던 거죠.

떡 본 김에 제사지내려는 사람들

6.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그때부터 끊겼던 카페리 수학여행 노선이 시작됐고...우리도 모르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고등학생들이 동원된 거죠. 카페리에 대한 이상한(?) 환상을 심어 가지고.특정 정치적, 경제적 목적에 맞춰서 우리 애들이 태워진 거죠.(그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7. (창밖으로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그런데요.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백날 '뱃길따라 수학여행' 공문 보냈어도 그거 안 가면 그만이거든요. 부유한 부모들이 많이 사는 동네나 까다로운 학부모들이 있는 학교는 그냥 비행기 태워요. 정작 애들에게 큰 돈을 내기 어렵거나, 학교 일에 참여하기 어려운 여건을 가진 곳일수록 그냥 가는 거죠. 이게 슬픈 현실이죠.

8. 더 웃긴 건 지금 나오는 대책들이란 거예요. 이게 큰 사고가 터지면 앞으로 좀더 나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지는 거예요. 해경 해체, 국가재난처 만들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오히려 '부총리'급으로 올라가서...대통령이나 참모들은 앞으로 재난 등 사고 터지면 뒷짐지고 보고만 있겠다는 거예요. 세월호 참사를 핑계로 앞으로 책임 면제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거죠. 한마디로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고...(한숨을 내쉰다.)

9. 특별법은요...수사권과 기소권, 중요하지요. 사고를 제대로 조사하기 위해선 필요해요. 대신 그날 사고에만 맞춰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상황까지 봐야죠. 진상조사 하는데만 시간이 걸릴 거예요. 미국 9.11 조사도 1년 넘게 걸렸잖아요. 특별법 자체가 종합대책을 갖기는 어려워도, 정책적 후속 조치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보는 거죠. 하지만 이런 것들이 빠져 있어요.

10. 그래서 '배' 이야기를 하자는 거예요. 세월호같은 사고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안전한 배를 띄우는 거죠. 현재의 우리나라 연안여객을 완전공영제로 가는 거죠. 계산해보니까 약 1조원 정도면 가능해요.(그의 책 '내릴 수 없는 배' 157페이지 등을 참조하면 좀더 잘 이해할수 있다.)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세월호 참사로 아마 정부는 선박회사들에게 노후 선박대신 새 선박구입 등 각종 보조금을 지불할 거예요. 그 돈을 아예 선박회사 인수하는데 쓰자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기조, 판단의 문제라고 보는 거죠.

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석훈 박사.
 우석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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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물론, 당장 (선박회사들을) 인수 못하죠. 우선 청해진해운이 했던 인천-제주 노선부터 생각해보죠. 아마 이 구간 운항하는 배는 세월호만큼 오래된 배는 아니고, 불법적인 개조나 선박요원의 임시직 고용 등은 없어질 거예요. 결국 앞으로 이곳을 운항할 새 선박회사는 예전 청해진 해운보다 운항 조건이 빡빡하겠죠. 그러면 과연 어떤 회사가 들어오려 할까요?

12. 음... 그래서 자치단체가 나섰으면 해요. 인천뿐 아니라 경기도, 서울시까지요. 이미 캐나다, 일본, 덴마크 등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선사를 운용하고 있어요. 청해진해운 자본금이 대략 55억원 정도라고 하는데, 3개 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선박회사를 세우는 거예요. 배는 어차피 산업은행 등 중앙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봐요. 또 시민들이 참여를 해도 되구요. 그러면 안전한 배를 시민들이 참여해서 투명하게 운용하는 거죠. 

13. 인천공항은 수도권뿐 아니라 전 국민이 이용하잖아요. 인천항도 그렇구요. 지금 '안전한 배'는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박원순 서울시장하고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손을 잡으면 돼요. 안전한 배를 띄우자는데 경기도민이나 서울시민이 반대할리 없을 거구요. 세월호 100일, 너무 슬프게 보냈는데, 이런 식으로 가면 정말 안 될 것 같아요. 1주년이 됐을 땐 뭔가 최소한의 문제는 해결됐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앞으로 한국이라는 배는 더 위험해질 것이고, 정부 등에선 '이건 내 잘못 아니야'라는 식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내릴 수 없는 배'의 구조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배가 '내리지 않아도 되는 배'가 될 가능성이 당분간은 없어 보인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두 가지. 배에 타지 않거나, 내리면 된다. 그는 기자에게 말했다.

"한국이라는 배에서 이젠 내릴 수가 없어요. 우리가 어떻게든 고쳐서 살아야죠. 그래서 지금부터 중요한 거예요. 정치권이 움직이도록 시민들이 나서야구요. 한 1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불안해 하면서 '한국이 원래 그렇지 뭐' 이런 말을 하면서 살 순 없잖아요."


태그:#세월호 참사, #내릴수 없는 배,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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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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