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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게 두렵다고들 말한다. 이미 일어난 사건의 충격이 무뎌지기도 전에 새롭게 터지는 사고들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서다. 이제 우리는 '살인'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살인은 어쩌다가 한 번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주위를 보면 거리가 먼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TV나 인터넷을 통해 보이는 우리사회는 화가 나면 누군가를 죽이거나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 마치 '해결'되는 사회처럼 비춰진다.

죽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과연 그럴까. 누군가가 죽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는다. 길거리에서 앳된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너 그러면 죽여버린다"하고 말하는 걸 듣고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아이나 그걸 들은 아이, 주위에 있던 아이들 모두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화가 나면 죽이면 되는 사회가 이 아이들에게 현실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무서웠다. 살인, 자살, 죽음이라는 단어에 면역이 된 아이들이 자라나 갈등과 분쟁과 다툼 앞에 섰을 때, 이들은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자살'과 '살인'이 이들에게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라면 미래사회는 얼마나 더 끔찍하고 잔혹한 모습일까.

20대의 젊은 청년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입대한다. 그런데 그 군대에서 연이어 사건·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총기사건, 구타, 자살 등 무자비하고 잔인한 단어들이 연일 눈과 귀에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 들어온다. 매스컴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틈에서 모두가 한 마디씩 한다.

"죽었대요."
"죽였대요."
"죽인거죠?"
"자살했다던데요?"

28사단 소속 2명의 병사가 동반자살을 했다는 사고 소식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난 12일, 경기도 광주 3군사령부 사격장에서 윤모(21)일병이 자살했다. 윤 일병은 지급받은 실탄을 사용해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창창한 나이에 꿈도 많았을 그가 어째서 그런 무서운 일을 저질렀을까. 우리 사회는 독특한 병영 문화나 군부대 안에서의 위계질서, 그에 따르는 복종과 폭력, 폭언 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군대라는 집단의 성격을 핑계로 마치 그런 것들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만들었다. "예전보다는 낫다"는 전역자의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군부대 관계자들 역시나 군대에서는 어느 정도의 폭력과 폭언이 필요하다고 말하거나 믿었다. 하지 못하면 될 때까지 시키고, 복종하도록 만들고, 선임이 시키는 것은 후임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도록 했다. 선임은 모든 것이 옳다. 옳아야 하고, 설령 틀리더라도 틀릴 수 없다. 군대 안에 위계질서는 위급상황이나 전시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군인들이 나라에 더 충성할 수 있도록 돕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러한 폐쇄적 구조의 군대문화가 20대의 젊은 청년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혹자는 이번 군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사고를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하지만 베르테르 효과는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 등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현재의 상황과는 맞지 않다.

현재 군대 안에서 마치 전염병처럼 돌고 있는 사건과 사고는 무서운 학습효과다. 모방범죄나 동조자살이 아니라 특정한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더욱 숙달되는 현상이다. 자살과 살인을 학습 효과에 의해 하고 있다.

구조적 문제 스스로 해결하려는 학습 효과

이것은 아주 무서운 사회적 현상이다. 앞서 언급한 베르테르 효과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군대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과 그것을 묵인하는 체제 속에서 병사들은 스스로를 힘없고 나약하다고 믿는다. 병사들은 일련의 사건과 사고 속에서 배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처벌받기 위해서는 그를 죽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자살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점을 배운다. 선임병사에게 자살할 것이라고 말을 하고, 메모장에 수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병사의 이름을 적고, 소원수리함에 답답함을 토로해도 번번이 실패했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병사들은 더욱 그렇다.

이는 그들이 '관심병사'이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 아니다. 개인적 나약함에서 비롯된 잘못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공동체 생활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강제로 입대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입대를 하기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여겼다. 대신 '관심병사'로 지정하고 등급을 나눠 관리했다. 군대도 그들이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군대는 그들의 '개인적 병력'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버티고 있는데 유독 문제가 있는 애들만 이렇게 사건을 일으킨다는 식의 언론보도도 지양해야 한다. 지금 군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절대로 '개인'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사고가 터지면 대부분 가해자에게 선천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겼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도 그렇다. 그래서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능한 군대 집단, 정부의 안일함이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병사들은 "우리의 고통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스스로 해결하기로 작정한다.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소리치고 도움을 요청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면 그때부터 그들의 잘못을 추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심리학자나 교육학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자신이 스스로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들은 이런 병에 걸리게 되었을까. 대한민국의 자녀들은 어쩌다가 자신의 감정조차 이야기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일까.

우리는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 개인과 누군가를 비교하며 부족하다거나 지능이 떨어진다고 해서는 안 된다. 더디다고 윽박지르거나 틀렸다고 해서도 안 된다. 버티지 못한 사람들을 무능하다고 해서도 안 된다.

더 이상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 절대로 죽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군대에서 이례적으로 모든 훈련을 정지하고 인권교육을 실시한 것은 참 잘한 부분이다. 인권교육의 효과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동시에 현재의 병사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잘못은 처벌받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반드시 치른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군대와 사회를 분리시켜서도 안 되고 군대 안에서 잘못된 일이 위계질서와 복종과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무마되어서도 안 된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않는 사회

군대 안에서 그런 식의 부당함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병사들이 사회에 나오면 군대와 사회를 동일시한다. 군대 안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던 방식을 사회에서도 똑같이 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이는 군대 안에서 피해를 당한 병사뿐만이 아니라 가해를 한 병사도 마찬가지다

요즘의 교실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오는 "죽여버린다"와 "죽어버리겠어"는 이제 아무에게도 겁을 주지 못한다. 그런 말들에 이미 면역이 되어버린 친구들은 "우울하다", "힘들다", "답답하다"를 그렇게 표현한다. 그보다 더 직접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국민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국민들은 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일이 더 많았다고 말이다.

군대의 문제가 다른 공동체 속에서도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법적 기준과 도덕적 가치가 소속 공동체나 집단에 관계없이 동일해야 한다. 그리고 군대 문화의 특성상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군대만의 문제로 보고 해결책을 모색해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수많은 갈등과 사회적 사건들 속에서 언론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단어들을 통해 이를 보도한다.이런 보도 때문에 실제 어린 아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언론은 이를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말해야 한다. 아이들이 감정을 잃어서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을 기다려주지 않아서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병사들이 수없이 고충을 말하면서도 묵살 당했던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마다 거부당했던 사연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병사 개인의 무능함으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잘못이다. 이제는 그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은 자살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소리를 내지르는 이웃과 가족이 없어야 한다.


태그:#군부대, #자살, #살인, #28사단,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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