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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박하다!'

처음 팟캐스트를 접한 후 떠올랐던 생각이다. 그때 들었던 팟캐스트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느낌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라디오 같기도 하고 인터넷 방송 같기도 했다. 깔끔하고 쿨 한 느낌. 내가 팟캐스트에 쌈박함을 느낀 이유는 간단하다. 듣고 싶은 방송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다운받고, 내가 듣고 싶은 시간에 듣는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한국말 듣는 것 자체가 감동

호주에서 만난 비협조적인 캥거루
 호주에서 만난 비협조적인 캥거루
ⓒ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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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를 알게 된 건 2년 전이었다. 2012년, 나는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있었다. 그때 나의 목표는 호주 문화를 온전히 접하는 것. 스마트폰도 노트북도 쓰지 않았다. 한국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멀어지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남으면 산책하거나 읽히지도 않는 영어 소설을 붙들고 씨름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호주 문화에도 꽤 익숙해지고 긴장감이 풀리니 한국 생각이 났다. 향수병이 온 걸까. 알고 지내던 형이 한국 소식을 전해주었다. MB 때문에 난리가 났고, <나는 가수다>가 재미있으니 꼭 보라는 말이었다. 무심코 던진 형의 말은, 이미 균열이 나기 시작한 내 초심을 한방에 무너트렸다. '싱크홀처럼'. 쿵.

"그래. 이 짓도 이제 더는 못하겠다. 한국인처럼 살자. 한국으로 돌아갈 텐데 이렇게 우리나라에 대해 무관심하게 지내는 것도 이상하지. 한국 소식도 간간이 접하고 살아야겠다. 연말에 대선도 있으니까."

팟캐스트 어플
 팟캐스트 어플
ⓒ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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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사용하던 휴대폰이 고장 났다. 나는 주저 없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샀다. 처음 아이폰을 손에 쥐던 날,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설명서는 던져두고 어플을 하나하나 실행시켜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에 띈 팟캐스트(potcast) 어플. 보라색 배경에 마이크. 생소한 '팟캐스트'라는 단어. 호기심이 일었다. 그것이 첫 시작이었다.

처음 들었던 팟캐스트는 공중파 라디오를 업로드 해 주는 방송이었다. 호주 땅에서 우리나라 소식을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약간의 감동처럼 느껴졌다. 속도는 느리면서도 비싼 호주의 악질 데이터요금제 때문에 팟캐스트를 다운받기 위해서는 와이파이가 되는 곳으로 가야 했다. 나는 주로 도서관이나 맥도날드의 와이파이를 이용했는데, 구석에 앉아 들뜬 마음으로 팟캐스트가 다운되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기 팟캐스트 목록을 훑어보던 중 <나는 꼼수다>를 접하게 되었다.

'남자 네 명이 시끄럽게 떠드는 방송이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

처음 <나는 꼼수다(아래 나꼼수)>를 듣고 느낀 감정이다.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당최 알 수 없는 이야기들과 웃음소리가 오갔다. 거부감이 들었지만, 끌 수 없었다. 그전에는 접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나는 나꼼수의 팬이 되었다.

나는 꼼수다
 나는 꼼수다
ⓒ 나는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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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랬듯 나 또한 경악했다. 나꼼수를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때문이다. BBK, 내곡동, 선관위 디도스, 자원외교 등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소설이 아니었다.

전 국민을 공부시키고자 했던 MB의 깊은 마음이 나에게 닿았던 것일까. 냉혹한 현실 앞에서 나는, 당하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나꼼수를 필두로 <그것은 알기싫다>와 <주진우의 현대사>, <나는 꼽사리다> 등 다양한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다. 정치는 물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던 나에게 팟캐스트는, 남루한 시대를 바라보는 '창'이었다.

2014년, 팟캐스트가 생활의 일부가 되다 

2012년에 MB가 가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새 시대를 기다린 사람들의 마음을 보기 좋게 비웃 듯,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졌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대화록 유출, 간첩조작사건, 철도와 의료 민영화, 세월호 사건까지. MB 시대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했고 공부해야 했다. 나꼼수의 김어준은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현 정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과 같은 세태, 정국에서는 의문하기를 멈추면 노예가 돼요. 그럴 순 없잖아요?" 

그렇다. 의문하기를 멈출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마음껏 의문하기에는 많아도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한 가지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에 대해 미처 다 알기도 전에 다음 사건이 터지고, 또 다음 사건이 터졌다.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의 양이었다. 연일 터지는 굵직한 사건에, 판단은 둘째 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진도를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팟캐스트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바쁜 일상 때문에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건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배경과 핵심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알고 싶은 내용을 다운받고 원하는 시간에 들을 수 있으니 부담이 없었다. 물론 팟캐스트를 듣는 것만으로 모든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어떤 관점으로 이 사건을 봐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여러 팟캐스트의 진행자들이 가진 다양한 관점을 비교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이제 팟캐스트는 나에게 일상이 되었다. 하나둘씩 듣기 시작했던 팟캐스트가 이제는 듣고 있는 방송만 30가지에 이른다. 정치,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과학 등 분야도 다양해 졌다. 여태까지 들었던 방송을 합하면 60~70여 개의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던 것 같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더 컸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떤 방송이 업로드 되어있을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팟캐스트 어플을 실행시킨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팟캐스트를 듣는다. 아침밥을 먹을 때는 쌀 시장 개방의 문제점에 대해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는 세월호 특별법의 여러 쟁점들에 대해 들었다. 팟캐스트가 없었다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의 팟캐스트 재생목록.
 나의 팟캐스트 재생목록.
ⓒ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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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혼란스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MB시절을 좋은 시절로 추억할 만큼 말이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남은 임기 중에는 크게 변하는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매듭짓지 못한 일들은 끝없이 불어나고 새로운 사건은 또 우리를 '멘붕'에 빠트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팟캐스트를 끊을 수 없다. 속지 않고 당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팟캐스트는 바쁜 생활 속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팟캐스트를 끊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팟캐스트는 유쾌한 연대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비참한 현실을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것.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여 연대하는 것이 팟캐스트의 참 매력이자, 내가 팟캐스트를 끊지 못하는 진짜 이유다.

어떤가? 당신도 이 유쾌한 연대에 동참할 마음이 있는가?



태그:#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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