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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광호씨가 고공농성 중인 스타케미칼의 공장 굴뚝
▲ 스타케미칼 고공농성-1 차광호씨가 고공농성 중인 스타케미칼의 공장 굴뚝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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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는 문자나 전화가 온다.

"오늘 낮 최고기온이 38도라는데, 어찌 살아 있나?"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성화다. 내가 사는 구미라는 도시는 바로 그런 곳이다. 가까이 대구라는 도시와 엎치락뒤치락 여름 최고기온을 경쟁하는 폭염의 도시. 이런 살인적인 더위에 공장 굴뚝 위에서 생활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를 찾아가 보기로 한 날은 때마침 삼복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초복(18일)이었다. 에어컨 밑에서 일하다가 실외로 나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그런 날씨다. 태풍과 무더위 속에 50여 일이 넘게 고공농성 중인 그를 만나러 가면서 '대체 왜?'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이미 폐업한 공장에서 이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경북 칠곡군 구미국가산업단지 3단지에 위치한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차광호(45·남·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씨. 그는 지난 5월 27일 회사 측과 노동조합이 제안한 불합리한 퇴직 합의서에 반발하며, 자신이 20여 년간 일하던 공장의 굴뚝에 단신으로 올랐다. 굴뚝의 높이는 45미터. 세월호 참사와 지방선거에 가려져 일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의 고공농성은 7월 27일로 61일째를 맞이했다.

공장은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가 목숨을 담보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니. 일과를 마치고 찾아간 첫날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고, 공장 굴뚝이 위치한 후문 근처에는 사람의 왕래가 없다.

굴뚝 사진 몇 장 찍고, 하염없이 굴뚝 꼭대기만 쳐다보다 돌아왔다. 바로 밑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45미터짜리 굴뚝은 오금을 저리게 했다. "평지에서 바람이 없는 날에도 굴뚝 꼭대기는 강풍이 불어 흔들린다"는 그의 글('차광호의 굴뚝일기')이 떠올랐다.

공장 인수 3년 만에 폐업... "매각 차익 노린 '먹튀' 아니냐"

폐쇄된 후문에 붙어 있는 농성 현수막
▲ 스타케미칼 농성 현수막 폐쇄된 후문에 붙어 있는 농성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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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일찍, 다시 공장을 찾았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굴뚝 난간 너머로 아침운동을 하고 있는 차광호씨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진 찍는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준다. 잘 들릴 리 없지만, 목청껏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은 힘이 있는 게 느껴진다.

주먹을 불끈 쥔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서, 정문 쪽에 있는 농성천막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서 스타케미칼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이하 해복투) 중 한 명인 홍기탁씨를 만났다. 그를 통해 공장 가동 중단부터 차광호씨가 굴뚝 위에 오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회사 측의 최종 해고 통보일은 2013년 2월 17일이었다. 차광호씨가 굴뚝 위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는 이제 60여 일이 지났지만, 실제 해고자 복직 투쟁은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홍기탁씨의 말에 의하면 2010년 모회사인 스타플렉스가 스타케미칼의 전신인 한국합섬을 매입하는 과정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고 한다.

"당시 시가 800억 원 이상의 한국합섬을 399억 원의 헐값에 매입합니다. 그리고 불과 2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폐업청산 하겠다고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권고하죠."

물론 경영상의 악화로 공장 문을 닫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섬유업계의 경우, 그때는 많은 회사가 문을 닫거나 구조조정에 들어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폐업청산의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회사가 망하면 폐업신고 하고 직원들에게 한 달 치 월급만 주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희망퇴직을 권고하고, 희망퇴직자에게 6개월 분 월급을 지급한다는 거예요. 거의 대부분이 사직서를 썼죠. 그런데 지금까지 폐업신고는 안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한 점은 그렇게 퇴직한 근로자들을 퇴직 후 1년 3개월이 지난 시점(2014년 5월 26일)에 다시 불러들여 합의서를 작성하게 한 점이다. 합의서의 내용은, '회사의 매각 과정에 일체의 방해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기존에 퇴직했던 조합원들에게 52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고, 해고자들에게는 1000만 원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일하고 싶을 뿐... 분할매각 말고 완전매각 후 고용승계"

이른 아침 운동중에 필자를 발견하고 인사를 나눈 후 주먹을 불끈 쥐어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 굴뚝위의 차광호씨 이른 아침 운동중에 필자를 발견하고 인사를 나눈 후 주먹을 불끈 쥐어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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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굴뚝 위에 있는 최광호씨를 포함해 12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회사 측이 제안한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차피 문 닫게 된 공장, 회사에서 챙겨주는 위로금이라도 받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20년 청춘을 바친 공장입니다. 그런데 회사 측은 (공장을 인수할 때부터) 공장 운영이 목적이 아니라 분할매각을 해서 거액의 이윤을 남기는 게 목적이었던 겁니다. 일종의 '먹튀'지요. 공장부지 땅값만 400억 원이에요. 설비 떼다 팔고 고철이랑 전선 등을 매각하면 399억 원의 인수가격보다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 되파는 겁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근무를 시작해서 20여 년의 세월 동안 피땀 흘려 일한 일터가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된다는 것이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해복투의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바는 간단하다. '공장을 가동하라, 그게 어려우면 공장을 분할매각 하지 말고 온전히 인수시키고 고용을 승계하게 하라'.

두 번에 걸친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홍기탁씨의 한마디가 계속 귓가에 맴돈다.

"언제까지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돈놀이에 놀아나야 합니까? 저희는 그저 일이 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 스타케미칼 고공농성의 본질은, 일자리를 바라는 해고노동자들의 절박한 심정과 분할매각을 통해 거대한 이익을 노리는 회사 측의 야심이 맞부딪힌,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두 구조의 대립인 것이다.

굴뚝 위의 남자, 차광호씨와는 차마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경찰의 제지로 인해 밥과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올릴 수 없다고 한다. 겨우 햇볕을 가릴 만한 천막 한 장 아래에서 오늘도 더위와 외로움에 정면으로 맞서며, 기나긴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그에게 잘 지내시냐는 안부를 도저히 물을 수가 없었다.

그저 먼발치에서 응원의 손을 흔들어준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평지에 내려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언젠가 그와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이 시대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는다.

공장 굴뚝이 위치한 후문의 전경
▲ 스타케미칼 후문 전경 공장 굴뚝이 위치한 후문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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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스타케미칼, #차광호의 굴뚝 일기, #어용노조, #고공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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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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