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와 내가 모시고 사는 눈치, 꽁치, 망치
▲ 가족사진 어머니와 내가 모시고 사는 눈치, 꽁치, 망치
ⓒ 최창엽

관련사진보기


"길고양이 키우고 있어요."
"말 잘 안 듣지 않아요? 크면 도망간다던데?"

길고양이를 키운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반응한다. 나는 세 마리의 길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다. '집사'는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흔히 '길냥이'라고 부르는 길고양이를 어쩌다 보니 '냥줍(길에 버려진 고양이를 줍다)'하게 됐다.

이름은 꽁치, 망치, 눈치다. 전부 다 길고양이가 많은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살 때 가족이 된 아이들이다. 어머니와 내가 번갈아 발견하고 데려오다 보니 이제는 대가족이다. 모두 내 앞에서 발라당 누워서 잠이 들고, 집에 들어오면 하나같이 달려나와 마중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길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은 곧 품종 구별이 가능한 '순종 강아지'였다. 유기동물에도 관심은 있었지만 그 '유기동물' 또한 버려진 '애완용 강아지'에 국한됐다.

골목에서 흔히 보던 고양이는 단순히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터뜨리는 '짐승'일 뿐이었다. 개와 달리 인간에게 불친절하고, 개와 달리 건물을 넘나들고, 특히 귀신같이 꿰뚫어 보는 눈빛은 도저히 정이 들 수 없는 '흉물'이었다.

지금 아이들을 '흉물'이 아닌 '예쁜이들'로 볼 수 있게 된 계기가 있다. 고양이와 맺었던 첫 번째 인연이, 지금은 떠나보낸 그 아이가 종종 떠오른다.

첫 인연이 눈 앞에서 죽었다

때는 2008년, 대학교에 갓 입학하여 용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던 가게의 테라스였다. 눈곱과 콧물이 얼굴을 뒤덮어 눈도 제대로 못 뜨던 새끼고양이를 발견했다. 스무 살에 처음 마주한 그 길냥이는 성인의 주먹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 모두 데려가서 좋을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병약했다. 집안 사정으로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떠나보낸 강아지들 얼굴이 떠올라서였는지, 돈을 손에 조금이나마 쥔 스무 살의 패기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아이를 바로 데려왔다. "몸만 나으면 바로 좋은 곳으로 입양을 보내야지"라고 생각해서 '고양이'라고 이름 지었다. 좁은 자취방에서 나는 이름이 고양이인 고양이와 동거를 시작했다.

고양이에 대해 하나도 모르던 나는 '냥이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등 고양이 관련 카페에 서둘러 가입해 공부를 시작했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고양이 전용 화장실을 사 놓으면 알아서 용변을 본다는 사실을 이 때 처음 알았다. 이 아이처럼 검은 털에 하얀 색이 부분적으로 나 있으면 '턱시도'라고 불린다는 점도,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개와 비교하자면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점은 강아지와 다를 바 없이, 정을 주는 사람에게 애착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카페가 알려주지 않았다. 이 아이와 생활하면서 몸소 느꼈다. 늘 내 옆에 붙어서 잤고, 새벽에 배고플 때는 내 코를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밖에서 돌아오면 앵앵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비로소 든 생각, 나는 왜 고양이를 흉물이라 생각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갑자기 죽었다. 주변인들의 걱정대로였다. 몸무게가 300그램에 불과했던 이 아이는 병원을 꼬박꼬박 가야 했다. 2~3일에 한 번 꼴로 동물병원을 찾았고, 갈 때마다 평균 5만 원씩 들었다.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내 돈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나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문제는 병원에서 늘 주던 작은 캡슐의 약이었다. 더 체구가 작았을 때도 잘 삼키더니 어느 날 운이 좋지 않았다. 약이 목에 달라붙었고, 눈앞에서 질식했다. 이미 죽은 아이를 데리고 근처 동물병원을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수의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식한 내가 죽인 것이다. 그때의 죄책감 때문에 세 마리의 고양이가 우리 집의 식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가족이 된 아이들

너무 작고 약해서, 이웃 어른이 던진 물건에 맞아 다리를 절게 되서, 까불고 다니다 길을 잃어서 등 각자의 사정으로 우리 집에 입주하게 된 아이들이다. 꽁치, 망치, 눈치. 모두 노란 털의 흔히 볼 수 있는 길냥이다. 하지만 나와 가족이 되기 전 아이들이 겪었던 일이 이들의 성격을 확실히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소심한 성격의 꽁치.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데려왔다.
▲ 꽁치 소심한 성격의 꽁치.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데려왔다.
ⓒ 최창엽

관련사진보기


[소심한 꽁치] 2009년에 처음 만난 꽁치는 누가 봐도 조신한 여자아이처럼 왜소했다. 이 아이는 수컷이지만 자신이 덩치가 작고 힘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다소 소심한 성격이다. 자신이 밖에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우리 집에 오자마자 '그르릉'거리며 바로 적응을 했다. 집사 노릇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꽁치에게 심장병이라도 있어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지금은 이 그르릉 소리가 기분이 좋을 때 몸 안에서 나는 소리임을 안다.

다른 고양이들과 연을 맺기 전부터 가족이 됐기에 꽁치와 나의 사이는 각별하다. 꽁치는 언제나 내가 있는 방으로 따라오며 자신을 예뻐해 주기를 바란다. 발라당 누울 때 배에 얼굴을 파묻으면 그르릉 소리를 내며 좋아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1년 후, 꽁치에게는 비극이 찾아온다.

제일 덩치가 큰 망치. 처음에는 먹을 것에 너무 집착해서 꽁치와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 망치 제일 덩치가 큰 망치. 처음에는 먹을 것에 너무 집착해서 꽁치와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 최창엽

관련사진보기


[마구 먹어대는 망치] 우리 집에 꽁치보다 덩치가 더 큰 망치가 등장했다. 이미 어른이 된 성묘였지만, 집 근처 자동차 밑에서 다리를 절며 울고 있던 망치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사람 손을 탔는지 사료로 유인해 쉽게 집으로 데려왔다. 망치는 치료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집에 적응했다.

자묘가 아닌 성묘를 데려오면 원래 있던 고양이와 기 싸움이 생긴다. 중성화수술이 안 되어 있으면 자꾸 밖으로 나가려한다는 점도 문제지만, 이 부분은 수술로 쉽게 해결이 됐다.

하지만 꽁치와의 기 싸움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알아서 먹고 싶은 만큼만 사료를 먹던 꽁치에게 망치의 생존형 과식은 꽁치를 굶주리게 만들었다. 길거리 생활을 오래 한 망치는 먹을 것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특히 처음 집에 온 2010년에는 그 정도가 더했다.

사람 손을 탄 경험이 있는 망치는 자신이 또 다시 버려지거나 맞게 될까봐 사람에게 지나치게 애교를 피웠다. 나에게 자꾸 의존하려는 망치의 모습이 소심한 꽁치를 힘들게 했다. 망치가 억지로 사료를 배에 채우는 버릇은 몇 년에 걸쳐 서서히 나아졌다. 그와 동시에 꽁치의 스트레스도 점차 가라앉았다.

마지막으로 데려온 눈치. 눈치 덕분에 꽁치와 망치 사이가 좋아졌다.
▲ 눈치 마지막으로 데려온 눈치. 눈치 덕분에 꽁치와 망치 사이가 좋아졌다.
ⓒ 최창엽

관련사진보기


[귀염둥이 눈치] 하지만 꽁치와 망치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좋아진 것은 새 식구 덕분이었다. 눈치는 먼저 온 꽁치나 망치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매우 건강했다. 비가 쏟아지던 2011년 어느 날, 퇴근하던 어머니의 귀를 따갑게 하는 새끼 고양이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눈치였다. 자그마한 체구였지만 매우 튼튼해서, 집에 데려와서 적응하자마자 아주 신나게 뛰어다녔다. 혼자 촐싹대다가 어미를 놓친 것이 분명했다.

이 건강한 새끼 고양이의 등장은 꽁치와 망치의 갈등을 푸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참 싸우다가도 어린 자식 얼굴을 보면 화가 누그러지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 것인지, 꽁치와 망치도 눈치가 놀자고 하면 가만히 장난을 받아주며 함께 놀았다.

고양이들과 잘 놀아주던 내가 연기자 일을 하게 되면서 꽁치와 망치가 나 대신 눈치의 육아(?)를 맡았다. 이 역시 셋의 사이가 좋아지게 된 계기이리라. 눈치는 이제 셋 중에 제일 덩치가 커져서 키워준 형들을 괴롭히는 막내가 됐다.

생명

이 아이들이 밖에서 겪은 상처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우리 가족의 구성원이 됐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나의 생각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죽을 뻔한 동물을 살리는 것만으로 보람을 느꼈다. 동시에 이 아이들 말고도 밖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무수한 유기동물들을 보며 무력감도 느꼈다.

길에서 잘 적응한 아이들은 그들의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해야한다. 동시에 '도시의 바퀴벌레' 취급당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나는 그 이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던 '길고양이 TNR 프로젝트(중성화 사업)'가 얼마나 중요한 개체 수 조절 작업인지 깨달았다. 아이들을 잠시 데려왔다 버리는 일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상황을 악화 시키는 일인지도 알게 됐다.

많은 동물보호단체에서 반려동물을 새로 구매하기보다 유기동물을 입양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캠페인을 해도 반려동물을 가지고 놀다 버리는 인형처럼 여기는 이들의 인식은 쉬이 바뀌지 않고 있다. 끝까지 키울 수 없다면 애초에 데려오지 않는 것이 낫다. 파양을 겪은 아이들은 첫 주인과의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간다.

만약 내가 꽁치, 망치, 눈치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얘들은 어떻게 됐을까. 인간과의 교감을 통해 사랑을 알았던 아이들이 그 인간에게 상처 받고 버려진 채 오늘도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주변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끝까지 책임져 달라고.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보듬는 가족이 되어달라고 말이다.

아이들은 천과 솜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아니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임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안아주면 맥박이 느껴지고, 사랑을 쏟으면 그만큼 사랑을 돌려주는 아이들이다.

반려동물을 새로 구매했다가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은 길거리를 떠돌다 죽거나 시설에 들어가 안락사를 당한다. 입양을 통해 '구원'받는 아이들은 선택받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혹시 새로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이 있다면, 시설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아이를 입양하는 것도 고려해주기 바란다.

이렇게 생각은 거창해지다가, 집에 들어올 때 현관으로 마중 나온 세 아이들을 보며 "나부터 잘 하자"고 다짐한다. 그때 떠나보낸 '고양이'를 떠올리면서, 이 아이들만큼은 내 품에서 끝까지 행복하게 남아 있기를 바란다. 이제 이 아이들에게는 집사인 '내'가 전부이기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창엽씨는 <학교 2013>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 등에 출연했으며 현재 KBS 2TV <순금의 땅>에 출연 중인 연기자입니다.



태그:#길냥이, #고양이, #냥줍, #집사, #입양
댓글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