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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계신 엄마가 호박, 호박잎, 오이, 가지, 감자, 양파를 하나씩 챙겨서 보내왔다. 요리를 하면서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호박넝쿨에서 첫 나온, 탱글탱글하게 보기 좋게 큼직한 올해 첫 열매를 맺어 자라난 아기호박 두덩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싱싱했다. 신문지에 쌓여 있을 땐 느끼지 못했는데 종이를 젖히니 그 빛깔, 어렸을 때 보았던 그 색깔이 은은하게 뽐을 내고 있었다. 마주치는 순간, 너무 예뻐서 순간 뿌듯하고 즐거웠다.

가지, 쭉쭉 잘 생긴 것도 있고 고불고불 생긴 대로 있는 것도 있다. 가지는 팬에 기름을 둘러 쭈욱 쭈욱 길게 설어 조금만 데치면 된다. 살짝 간을 하면 늘쩍지근한 그 가지의 식감이 좋다. 물렁물렁하면서도 부드러운 과즙이 입안에서 녹아진다. 그렇게 가지는 요리하기도 입안에 넣기도 편하다.

오이, 왜. 두툼하니 성한 것이 껍질째로 씹으면 시원하다. 물이 입 안에 차면 꿀컥 넘기는 재미가 있다. 통째로 아그작 아그작, 그 소리도 좋고 제대로 먹는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오이는 순식간에 커진다, 일주일 안에 그 성체가 하루하루 다르다. 먹음직스럽게 클 때까지 기다려가며 눈여겨 놓았다가 그 따는 맛도 쏠쏠하다. 그 오이를 쓱쓱 문질러 뚝뚝 반 토막을 내어 입으로 가져가면 입술에서 오이 맛을 부쳐 먹는다.

깻잎, 야들야들, 그 넓적함. 양파를 대여섯개 갈고 다진 마늘에 고춧가루, 간장을 모아 섞어 양념을 챙긴다. 한 잎 한 잎 빨간 양념을 묻힌다. 그야말로 정성이다. 한 장씩 잘 발라 포개고 또 포개면 어느덧 차곡 쌓여 제법 쌓여 있다. 하루 이틀 지나 잘 익기를 고대하며 반찬통을 열어본다.

양파, 껍질을 벗긴다. 아우, 매콤함이 먼저 눈을 자극한다. 껍질을 벗겨 놓으면 그 피부가 그야말로 부드럽게 밝고 투명한 푸름과 하얌이 동시에 발산한다. 반절로 쪼개 땔 쫙 하고 생생함이 느껴진다. 가로세로 뚝뚝 자르면 칼끝에서 싱싱함이 그대로다. 싱싱함이 쪼개지는 소리란 가히 햇양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리다.

감자. 올해 감자는 씨알이 굵다. 내 주먹만은 크기도 있다. 종알종알 작은 것이 쪄먹기도 좋고 반으로 갈라 입에 넣기도 좋은 법이다. 큰 감자는 껍질을 벗겨내고 채썰기로 해서 복아 먹는데 제격이다. 볶음의 간결함을 느끼려면 채 썬 감자를 초벌로 씻겨내면 녹말이 없어져 볶을수록 진득함이 사라지고 탄력성이 그대로 유지된다. 감자는 갈치조림에도 된장국에도 어디에 들어가도 제 한자리를 차지한다. 그래도 감자는 만만하다.

호박잎. 그냥 찌면 까글 까글하다. 대롱에서부터 껍질을 벗겨내면 녹색 실들이 조금씩 끝을 보지 못하고 쪼금씩 벗겨져 나간다. 벗기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먹는 식감이 천지 차이다. 꺼끌꺼끌함을 느껴 보는 것도, 그래야 이 차이를 몸으로 알고 끄덕 끄덕 할 수 있다. 살짝 데치는 정도가 호박잎을 싸 먹는데 신경을 제일로 많이 써야한다. 너무 팍 익혀져버리면 물렁거려 우물우물하다. 마늘, 된장, 고추장, 참기름을 양념장으로 만들어 놓으면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간다.

호박, 호박잎, 오이, 가지, 감자, 양파. 아, 몸이 안다. 고마움을.


태그:#호박잎, #호박, #오이, #가지,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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