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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을 위해 미리 처리할 것이 있었다. 집, 직장, 유치원 등 여행을 끝내고 가족 모두가 자신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행정절차, 직장업무 그리고 집과 차량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 급하게 마무리하고 미리 끊어놓은 비행기 티켓과 트렁크와 배낭, 유치원 다니는 5, 7살 아이 둘을 챙겨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우린 유랑 아닌 유랑을 하며 우리가 벌인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겁 없는 짓이었는지 심신의 고단함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로웠다.

             캠핑장에서 하루의 반나절은 이렇게 논다.
 캠핑장에서 하루의 반나절은 이렇게 논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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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격태격 싸워도, 그래도 말 통하는 둘이서 논다.
 티격태격 싸워도, 그래도 말 통하는 둘이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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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비큐 준비할게요"... 내던진 한마디에

다행히 바르셀로나 외곽의 유명캠핑장에서 한국인 가정을 만났다. 준서네와 민이네다. 준서네가 이탈리아를 향해 떠날 즈음 민이네가 들어왔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온가족이 단단해 보인다. 초등생 아들과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2년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나왔단다.

한국에 살 때 막연히 "우린 곧 세계 여행을 갈 것이다"라고 아이들에게 말을 했단다. 그런데 그 시기가 하필 중 2짜리 큰 아들이 학교에서 반장이 되어 한창 그의 큰 뜻을 펼치려고 할 때였다. 외모, 풍채, 성품 모든 것이 반장감이었다. 친구를 포기하고 나오는 게 힘들었다는 말에 심히 안타까웠다.

학교를 그만두고 2년 동안 여행을 한다는 것은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를 감안했을 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름난 대학에 가기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물론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들을 위해 수학을 중심으로 주지 교과의 교과서를 챙겨오긴 했지만 역시 2년은 그대로 학습 결손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되도록 성적과 학교생활에 대한 타격을 줄이고자 나처럼 어린 유치원생을 끌고 나와 이런저런 고생을 하는 것이나 중·초학생을 데리고 나와 이후 겪게 될 고난, 후회로 마음 고생 할 민이네나 서로가 대단하면서도 한편 딱하다. 

두려움, 걱정, 염려. 그래도 나는 5개월 후면 이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돌아갈 직장이 있지만 직장, 학교를 그만 두고 나온 민이네는 2년 후 한국에 돌아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어쩌면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난 그들의 선택이 너무 극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현실이 원망스럽고 그 가족이 안쓰러웠다. 본인의 의지로 퇴직을 선택했길 바라보지만 너무 순종적이고 성실할 것 같은 엄마, 아빠의 모습에서 어쩌면 원치 않는 퇴직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슬픈 상상을 해보았다.

그래서 우린 얼마나 마음을 나누지도 못했으면서 그만 "내일 저녁 함께 먹어요. 우리가 바비큐 준비할게요"라고 말해 버리고 말았다. 넉넉지 않은 경비를 아껴 써야 하는 장기여행자가 파티를 제안하는 건 제법 큰 경제적 출혈과 육체적 피곤을 의미하나 우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말해 버렸다. 사실 그때 나도 누군가가 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격려와 응원이 녹아난 식사 한 끼' 먹여 주길 바랐던 마음이 간절했던 때였기에.

내가 간절한 그것을 2년 중 이제 20일도 여행하지 않은 그 가족을 위해 선물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받고 싶었던 선물.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기로 한 날이 하필 스페인 국경일이란다. 우린 전혀 몰랐다. 그런데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겠다고 말을 내뱉고 이미 상상 속의 고기는 숯불 위에서 익어가고 있는데 "그런데 내일이 국경일이라 가게 문을 다 닫을 텐데요"라고 민이 아빠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없던 것으로 하기엔 여러모로 애매했다. 게으른 캠퍼가 뭘 아는 게 있을까마는. 어디서 재료를 사야 할까? 순간 난감하다.

그러나 까르푸, 리들 등 큰 마트는 문을 닫아도 현지인이 사는 주택지로 가면 작은 구멍가게는 장사를 할 것이란 판단이 섰다. 출신국이 다양한 나라인 만큼(사실 스페인의 작은 식료품 상점은 인도, 파키스탄 등의 출신들이 어느 정도 장악한 느낌) 녹록지 않은 이국에서 보다 안락한 삶, 자식의 공부를 위해 그 많은 이민자 중 누군가는 돈을  바짝 벌 요량으로 노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상점 문을 열 것이다, 라고 추측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건너간 한국인들도 휴일 없이 가게의 문을 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좋다. 관광자의 천국인, 바르셀로나가 북쪽이라면 우린 정확히 서쪽에 있는 주택지로 간다. 현지인 구역이 분명한 그곳에 문을 연 가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갔다. 서쪽 현지인 마을을 향해. 이름도 모른다. 돌아와서도 지도에서 찾아보지도 않았다.

현지인 마을을 돌다가 드디어 대형마트보다는 살짝 비싼, 그러나 편의점보다는 싸게 다양한 것을 구입할 수 있는 디아마트를 발견했다. 운전에만 집중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딱히 못미더운 아내를 가진, 고로 이번에도 눈을 까뒤집고 마트를 찾은 건 남편이었다.

그리고 다 샀다. 현지인 동네에 가면 왜 꼭 무엇이 먹고 싶은지. 주차를 아주 빨리 쉽게 한 후 거리에 올라섰다. 저 앞 쪽 레스토랑이 정확히 두 개가 있는데 한 쪽은 대기자가 있는 대박집이고 그 옆은 쪽박집이다. 잠시 망설이다 결정했다. 대박집 대기줄에 합류해 봤자 이 긴 대기 시간을 기다렸다가 먹기엔 우리 입맛이 스페인 맛집의 미묘한 맛을 그다지 느끼지 못할 것이 분명해 과감히 지나쳤다. 그 옆 쪽박집에 앉으려니 가까이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또 하나의 레스토랑이 보였다.

그래서 또 쪽박집을 지나쳐 코너에 있는 한 식당에 앉았다. 중국인이 뛰쳐나온다. 내가 만난 중국인, 정확히 말하면 화교라 불리는 이주 중국인 중 가장 밝은 화색과 귀여운 웃음을 가진 아저씨다. 가게 안쪽엔 아내로 보이는 중국인 아주머니가 아기와 놀고 계셨다.

주인아저씨는 우리에게 "차이니즈?" 하시며 중국말을 하시다가 남편의 당황하는 귀여운 표정을 보고는 "자폰?" 물으신다. 한국이라고 말하자 많이 반가워하신다. 나중에 제이콥에게 들으니 이 동네에선 일본인, 한국인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 가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콧대 높았던 인도인 '제이콥', 알고보니...

우리와 같은 리씨다. 그래서 제이콥이 우릴 중국인으로 알았다.
 우리와 같은 리씨다. 그래서 제이콥이 우릴 중국인으로 알았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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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 종류가 워낙 많은데 오늘은 하몽(생고기 말린 햄)을 먹기로 했으므로 메뉴에 대한 주인의 조언이 필요했다. 그러나 상냥한 리씨 아저씨는 영어가 안 된다.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거무튀튀한 혈색의 인도인을  데리고 나왔다. 그가 제이콥이었다. 제이콥이 웃지 않아, 고로 그의 성격이 많이 거만해 보였다. 그런 이유로 우린 제이콥을 식당 사장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붙임성 좋은 중국인 부부를 종업원이라 생각했다. 손님을 위해 영어가 되는 식당 사장님을 불러온 줄 알았다. 그래서 졸지에 주인인 리씨 내외는 종업원 주제에 일터에서 애까지 돌보는, 이상한 사람들로 보여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타파스는 아이들이 먹기 좋은 감자튀김, 바게트 위에 올려진 하몽, 그리고 카레 양념을 입혀 볶아낸 돼지고기였다.

역시 현지인 마을이라 서비스가 좋다. 올리브는 서비스다. 아직 파키스탄 돼지고기볶음은 안나왔다.
 역시 현지인 마을이라 서비스가 좋다. 올리브는 서비스다. 아직 파키스탄 돼지고기볶음은 안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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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맥주를 시키고 아무 망설임 없이 나에겐 물을 시켜주기에 10분 동안 말도 않고 삐져 있었다.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여?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에 그런 표정을 하니 예쁘다."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말들을 퍼붓기에 방어기제를  완전 해제하고 기분 좋게 제이콥을 향해 외쳤다. "아메리까노, 낫 에스프레소, 노말 커피"하고 제이콥에게 직접 주문했다. 커피를 아끼지  않은, 에스프레소틱한 아메리카노에 뜨거운 물을 타서 먹어야 했다.

"제이콥, 네 이놈. 너가 분명히 알았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게 무슨 아메리까노니?"

아니다. 화낼 필요 없다. 에스프레소를 즐겨 먹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가 노말 커피일 것이다.

제이콥은 우리가 사장과 같은 나라인 중국인인 줄 알아서 우릴 대할 때 표정이 사무적이며 시큰둥했던 것이었다(어디나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는 비슷한가 보다). 우린 제이콥이 인도인인 줄 알고 '역시나 인도인은 거만해'란 판단에 샘플을 하나 더 추가하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여행 중 만난 인도인은 아주 콧대가 높았다. 글로벌한 유머를 구사하며 말을 걸어주면 살짝 그리고 짧게 웃는데 그게 비웃는 건지 그냥 웃어주는 건지 알 수 없다. 여하튼 말을 길게 섞고 싶지 않은 느낌. 자기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계급이고 우릴 모두 불가촉천민으로 생각하는 건지 어쩐건지. 엇! 브라만을 욕했다가 발리 댄스 복장에 복면을 두른 날렵한 여자의 쌍칼에 운명을 달리 하는 것은 아닐까 순간 걱정된다. 푸휴.

제이콥에 대한 오해... 요리로 풀었다

제이콥이다. 파키스탄에선 빨리 돌아와 장가 가라고 성화란다.
 제이콥이다. 파키스탄에선 빨리 돌아와 장가 가라고 성화란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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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에 대한 오해가 없어진 것은 요리를 주제로 한 대화 때문이었다. 카레로 볶아낸 요리를 두고 '인도 스타일'이냐고 묻자 '파키스탄 스타일'이라며 매콤한 요리를 즐겨 먹는 자국의 맛에 대해 길게 얘길 했다. 그래서 우린 제이콥이 인도인이 아닌 파키스탄 사람인 줄 알았다. 물론 영어를 잘했다.

스페인에 4년째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데 스페인어도 잘 하고 한 마디로 똑똑해 뵌다. 제이콥의 말로는 중국인은 사업 수완이 굉장해서 장사를 시작하면 1년 안에 그 마을 돈을 쪽쪽 빨아 드신단다. 이미 내가 화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굳건히 하는 샘플 하나 추가다. 제이콥 말로는 사람들이 "파키스탄과 중국인이 같이 장사를 왜 하느냐?", "중국인이랑 결혼하면 되겠다"며 비꼬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여하튼 중국인의 사업 수완이 위협적일수록 현지인들의 견제와 방어는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어딜 가든.

제이콥은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 남녀노소와 반갑게 이야기와 스킨십을 주고받았다. 그의 스스럼 없는 행동이 참 보기 좋았다-난 언제쯤이나 한 인간을 출신국의 경제력, 땅의 크기 등의 부가적 요소를 덮어 씌워 보지 않을 수 있을는지-. 예상한 바대로 제이콥은 파키스탄의 중상류층에 속한 집 자식이었고 매달 못 먹고, 못 입으며 모은 돈을 파키스탄 가족을 위한 생활비로 보내야 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다행이다. 대화가 유쾌할 수 있을 테니까.

제이콥 말에 따르면 스페인은 인종차별이 거의 없단다. 그래서 여러모로 살기 좋으나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현지인조차도 집도 없고 직장도 없는 사람이 생겨 큰 문제라 했다. 그건 프랑스도, 한국도, 미국도, 비교적 산다고 하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비슷한 현상이기에 별로 관심이 안 갔다.

그런데 젊은 세대들이 마약, 대마초 등을 너무 많이 한다고 했다. 실제로 대화하다가 지나가는 현지인 청소년과 이야길 주고받은 후 살짝 나에게만 보이도록 "저것도 약이다" 그런다. 아예 우리나라처럼 금지 시킨 후 한 번이라도 손을 댔을 때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도록 윤리적,  법적으로 단죄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저렇게 젊은 세대들의 뇌가 시원해지는 것을 내버려둬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는 사람은 퓨춰 핸접!

제이콥에 대해 글을 길게 쓴 이유는 내가 15년 전 만난 알렉산더 칸(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비자를 받고 우리나라에 온 유능한 인재였지만 한국인 중소기업 사장은 임금체불을 하고 도망가서 12월 금요일 밤 11시쯤 동종 피해자인 형과 함께 붕어빵을 구워 팔아야 했다)이 파키스탄인이었고 그로 인해 '내 나라에 대한 깊은 수치심'을 어린 나이에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새겨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은 푸하하~ 제이콥이 노메이크업의 나를 보고 '섹시하고 멋지다'고 여러 번 말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 남편 앞에서 말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에이 기분 좋아라. 무울론! 옆 상가 반찬가게 아줌마가 맥주 한 잔 시켜 놓고 올리브 안주 삼아 드시고 있는데 그녀에게도 '섹시하다'라고 해서 순간 기쁨이 반감되긴 했으나 그럼에도 이 놈의 아줌마들은 예쁘다면 그리 좋단다. 아무래도 스물여섯의 이 녀석은 이 거리의 모든 아줌마들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았는지 모르겠다. 반찬가게 아줌마를 포함한 이 동네 여인들은 제이콥이 주는 마약을 먹고 잠시 동안의 나처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해롱해롱 대며 "사람들이 나보고 다 섹시하다고 난리야"라며 살지는 않는지. 

능구렁이 제이콥한테 '섹시하다'란 말을 듣고 아줌마 둘이 좋단다. 영혼없는 말일지라도 좋단다.
 능구렁이 제이콥한테 '섹시하다'란 말을 듣고 아줌마 둘이 좋단다. 영혼없는 말일지라도 좋단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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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너무 많아. 다 못 먹겠어."

남편의 말이다. 사실 타파스를 다 먹어치우기엔 양이 많았다. 현지인 마을이라 제법 저렴한 값에 많이 시킨 게 문제였다.

"이 세 가지 요리 중 하나를 남긴다면 그것은 파키스탄 음식이 아니어야 해!"

우리의 대화가 유쾌했던 만큼, 요리하다가 동네 사람과 인사하다가, 단골 챙기는 중간에도 무료한 한국인에게 속사포처럼 빠른 영어로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알려준 제이콥을 위해서 우린 파키스탄식 양념으로 만든 그의 신메뉴, 돼지고기 카레볶음을 다 먹어치웠다.

"남기는 방법이 있긴 해. 사실 우린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는 못 먹는다고 하면..."

오늘이 공휴일이라 다행이다. 오늘 같은 날 하필 바비큐 파티를 하자고 제안하길 잘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로 밥 먹고 사는 여행업 종사자, 전문 행위예술가, 숙년된 플라밍고 댄서, 현란한 손놀림의 기타리스트는 없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살을 조금이라도 엿보았으니 말이다.

그날의 바비큐, 유난히 고기가 맛있었고 현지에서 담근 양배추 김치가 적당히 익어 더욱 맛났으며 중국 간장으로 만든 야채볶음도 짜지 않고 맛있었다. 부디 2년 뒤 한국 땅을 밟을 때는 잃는 것보다 얻어서 돌아올 게 많기를 바라며 그렇게 민이네와 작별했다.

덧붙이는 글 |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태그:#리씨네 여행기, #유럽캠핑, #스페인, #바르셀로나, #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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