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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한 뒤 사고해역을 둘러보기 위해 해경 구조정에 승선하고 있다.
▲ 사고해역 둘러보기 위해 승선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한 뒤 사고해역을 둘러보기 위해 해경 구조정에 승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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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수색구조를 격려하러 왔는데 왜 수색구조를 하는 우리는 대통령 얼굴도 못 보게 하느냐'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고 수습 초기부터 언딘 리베로 바지선에서 실종자 수색구조 작업을 해 왔던 잠수사 B씨의 말이다.

지난 5월 4일 진도를 재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수색구조 관계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사고 현장의 언딘 리베로 바지선에 올랐지만, 세월호 실종자 구조 최일선에 있었던 민간 잠수사 대부분은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한 채 격려 현장에서 배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경호실 측은 "대통령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순간 통제였다"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실종자 수색 잠수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대통령 떠날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바지선에 올랐을 당시 민간 잠수사 3~4명을 제외한 나머지 20여 명은 바지선의 방안에 들어간 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들은 청와대 경호원으로부터 '대통령이 떠날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얘길 들었다고 한다.

지난 4월 29일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에서 시신 인양작업을 마친 잠수사들이 언딘 리베로 바지선에 오르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에서 시신 인양작업을 마친 잠수사들이 언딘 리베로 바지선에 오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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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언딘 리베로호에 있었던 잠수사 A씨는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오기 전에, 해군 혹은 해경 쪽에서 '대통령 격려 현장에 민간 잠수사는 2~3명만 나오라'고 했다"면서 "이 때문에 나머지 잠수사들은 기분이 나빠서 2층으로 올라와 있었는데, 바지선에 온 청와대 경호원들이 '대통령이 지나가니까 거기 있지 말고,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리베로호  2층에는 선실도 있고 밖으로 노출돼 난간이 설치된 부분도 있는데, 2층 바깥에 있던 잠수사들에게 청와대 경호원이 "거기 있지 말고 안에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잠수사는 이어 "대통령이 격려를 한 순서도 우리랑 유가족은 맨 끝이었다"며 "당시는 물때가 아니어서 잠수는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격려받은 잠수사 빼고 나머지 20명 정도는 대통령이 갈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 밝혔다.

세월호 실종자 선체 수색에서 가장 최일선은 민간 잠수사다. 해경 잠수사와 민간 잠수사가 2인 1조로 잠수를 할 때에도 해경은 선체 밖에 있고, 실제로 선체 안을 수색하고 시신을 수습해 나오는 건 민간 잠수사의 몫이다. 대통령의 구조현장 격려에 2~3명만 나오라는 푸대접에 화가 났는데, 청와대 경호원까지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해 잠수사들이 격앙됐다는 얘기다.  

A 잠수사와 함께 언딘 리베로호에서 작업했던 잠수사 B씨는 지난 8일 전화인터뷰에서 "청와대 사람들이 와서 대통령 떠날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하니까 잠수사들이 '우리가 여기서 구조 작업하는 사람들인 줄은 알고 이러느냐'고 항의했다"면서 "청와대 사람은 '위에서 지시한 대로 할 뿐'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B 잠수사는 "우리가 구조 최일선에 있는 사람들인데, 격려받는 사람들은 주로 해경과 해군이라 나도 기분이 상당히 나빴고 다른 잠수사들도 화를 냈다"고 밝혔다. 이어 B 잠수사는 "그땐 '수색구조 격려인데, 왜 수색구조를 하는 우리가 대통령 얼굴도 못 보게 하느냐'고 생각했다"면서도 "좀 지나고 나니 '어차피 조카 같은 아이들 건져내려고 와 있으니 대통령 얼굴 보면 어떻고 안 보면 어떠냐는 생각으로 신경 안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A잠수사도 "불만은 많았지만, 다들 구조는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청와대 경호실 "통제 최소화했지만 2층 인원 '순간 통제'는 불가피"

지난 4월 26일 오후 전남 진도 앞 바다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 수색에 투입된 '언딘 리베로' 바지선은 조류가 빨라져 구조작업을 잠시 중단 상황이다. 해난구조대 잠수사들의 장비가 바지선 위에 놓여 있다.
 지난 4월 26일 오후 전남 진도 앞 바다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 수색에 투입된 '언딘 리베로' 바지선은 조류가 빨라져 구조작업을 잠시 중단 상황이다. 해난구조대 잠수사들의 장비가 바지선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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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호실은 박 대통령의 바지선 승선 당시 2층에 있던 잠수사들을 '순간 통제'했지만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청와대 경호실은 9일 <오마이뉴스>의 전화 문의에 "진도 재방문 당시 경호실은 민·관 구조활동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 않는 걸 최우선으로 해 대통령 동선에 있는 각종 선이나 장비도 전혀 치우지 않았다"며 "바지선에 탑승하는 경호요원도 최소로 유지하며 통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경호실은 "대통령이 도착하셨을 당시 '순간 통제'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2층에 있는 인원에 대한 통제는 어느 경호 상황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바지선이 너무 협소하기도 해서 인원 이동이 있었다면 경호가 불가능한 상황이 예상돼 어쩔 수 없이 잠시 동안만 내려오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민경욱 '시신 한 구 500만원' 발언에 잠수사들 "이대론 잠수 못 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한 뒤 가족대책본부 천막을 나서고 있다. 왼쪽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 진도 팽목항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한 뒤 가족대책본부 천막을 나서고 있다. 왼쪽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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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최일선 민간 잠수사들의 사기를 꺾어 놓은 '청와대발 악재'는 또 있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과 식사를 하다가 '민간잠수사가 시신 수습 시 1구당 500만 원을 받는다'고 발언한 게 5월 25일 보도됐던 일이다.

이 보도가 나가자 민 대변인은 "잠수사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마지막 한 명을 수습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랄 것이고, 또 가능하다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통해서라도 피곤에 지친 잠수사를 격려해주기를 희망할 것이라는 저의 개인적 생각을 얘기했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구조현장에 있던 민간 잠수사들은 대통령의 격려 방문 때보다 더 격앙됐다고 한다. 

B 잠수사는 "없는 말을 만들어서 하니까 잠수사들이 화가 많이 났다"면서 "당시엔 작업 일당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시신 한 구 올리면 500만원' 이런 말을 청와대 사람이 했다고 하니 '이런 식으로 자꾸 없는 말이 나오면 잠수 못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또한 보도가 나온 5월 25일 언딘 리베로호는 풍랑주의보 때문에 피항 중이었고, 민간잠수사들은 육지에 있었다. '이대로 돌아가겠다'는 잠수사들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A 잠수사가 밝힌 당시 상황도 B 잠수사와 같다. "잠수사들이 '기분 나빠서 이제 안 한다, 돌아간다'는 잠수사들이 있었고, '그래도 구조는 해야 한다'고 설득을 해서,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태그:#세월호, #민간잠수사, #사기꺾기,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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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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