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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 사이에 공공연히 회자되는 '산토끼'와 '산토끼 사냥꾼'

"산에서 바람 많이 난다는 걸 듣긴 들었지만 어쩌다 한 둘이겠지 했거든. 그런데 어젠 정말 그 말이 맞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더라고. 함께 간 사람들이 눈앞에서 그러는 걸 보니!"

얼마 전(6월 16일) 10살 가량 연배인 지인과 전화 통화를 했다. 전날 자신을 포함해 남자 10명이 산에 갔단다. 산행 중 막걸리를 겸한 간식을 먹다가 가까이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여자 5명과 말 섞을 일이 생겼단다. 와중에 누군가 뒤풀이를 어디서 할 거라고 말을 했는데 그 여자들이 뒤풀이 장소로 와 합석을 하게 되었다고. 자기 일행은 10명, 여자들은 5명. 그리 오래지 않아 짝짓기가 되는 것을 보고 나와 버렸단다. 

지인은 매주 주말이나 휴일에 산에 간다. 부부 산행 모임 사람들과. 그날은 몇 집에 사정이 생겨 남자들 10명만 가게 된 것. 지인은 친목모임과 산행하지 않는 날에는 부부 둘이서 산행을 했다. 이러다 보니 혼자 혹은 남자들끼리 산행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그야말로 요즘 산에서 흔히 이뤄진다는 '건수'가 생기지 않았고, 때문에 산행 중 바람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길 들었어도 정말 그러랴 싶었던 것.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아닌 일행이 눈앞에서 짝짓기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기사를 좀 썼으면 하고 전화를 해온 것이었다.

"전 혼자 산행할 때가 많은데 어떤 날은 몇 명이나 달라붙어 귀찮고 곤혹스러울 때가 많아요. 여자 둘이나 셋 정도 가도 접근하는 남자들이 예사로 있는데, 흥미롭게도 남자 하나가 끼면 말 거는 남자들이 전혀 없어요. 몇 명씩 묻어 다니며 남자들끼리 산행하는 사람들만 골라 술집으로 유인하는 여자들(꽃뱀)도 많다고 하던데…."

지인은 일부 등산객들 사이에 공공연히 회자되는 '산토끼'와 '산토끼 사냥꾼'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산토끼 사냥꾼은 여자 '낚는데' 목적을 두고 산행을 하는 사람이고, 산토끼 사냥꾼들이 꼬드겨 어떻게 해보고 싶은 산에 다니는 여자들, 이미 꼬드겨서 볼일을 보는 관계거나 본 여자를 산토끼라고 한다고 말해줬다.

"내려가서 한 잔 하자" 혼자 산행하는 여자에게 말 거는 남자들

6월 21일 북한산
 6월 21일 북한산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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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북한산.
 6월 말 북한산.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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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가을부터 산행을 했다. 내가 산행을 시작하자 이미 그 전부터 산행을 해오던 친정 언니가 나 같은 초보였을 때 가입한 카페에서 겪은 일을 들려줬다. "괜찮은 카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카페도 많아, 흑심을 가진 남자들도 많으니 전혀 모르는 산행 카페에는 가입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란 당부와 함께.

"혼자 가려니 좀 막막해 도움 될 것 같아 카페에 가입했어. 두 번째 산행 후 뒤풀이가 끝나고 나왔는데 한 남자회원이 다짜고짜 팔짱을 끼며 맥주 마시러 가자는 거야. 난 처음에 다른 사람으로 잘못 보고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알고 보니 남자 회원 자기들끼리 짝을 지어 버렸더라고. 산행 중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들에게 찍힌 거지. 뒤풀이 중 사람들이 많이 없어져 순진하게 사정이 있어서 먼저들 갔나보다 했는데 아니었던 거야. 집에 오자마자 탈퇴해 버렸어. 그랬더니 며칠 동안 카페지기라는 사람 전화가 계속 오는 거야. 더 웃긴 것은 내가 탈퇴해서 아무개가 어쨌다나 라며 전화라도 하고 지내면 안 되겠냐 부탁하는 거야."

난, 처음 한동안 언니 일행에 끼어가거나 알고 있는 사람들과 산행을 했다. 그러나 자신감이 좀 생기자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날짜 잡기로 신경 써야할 일이 줄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좋았기 때문이다. 꽃 사진도 여유 있게 맘껏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혼자 산행하는 날이 많아지자 말을 걸어오는 남자들이 많아졌다. 산행 초보 때부터 지금까지 산에 갈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무슨 꽃이냐?' '꽃 좋아하나 보다' '사진을 찍어 주겠다' 등 사진과 관계된 말을 거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 중 일부는 "우리 둘 다 혼자니 함께 밥을 먹자"거나 "어디로 내려갈 계획이냐?", "올 사람이 없어 혼자 와 심심했는데 함께 산행하면 좋겠다", "따분했는데 함께 다니며 꽃구경 함께하자" 등과 같은 제의를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한술 더 떠 "빨리 집에 가 뭐하냐. 내려가서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마시자", "노래 좋아하면 노래방 가자"와 같은 제의를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남자 여자 혼자 산행하는 이유가 뭐겠어. 잘 알고 있으면서 발뺌은.…튕기지 말고 갑시다!"

한번은 이처럼 노골적으로 은밀한 관계 혹은 무언가를 대놓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후 남자들의 말은 가급 자르고 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받아줘야 할 때가 있고 이런 저런 제의까지 여전히 종종 받고 있다.

우연히 산토끼 사냥꾼을 알게 됐다. 나처럼 혼자 산행하는 사람과 말 거는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알게 됐다. 말로만 듣던 산토끼 사냥꾼이란 존재를. 내가 어떤 남자들에게는 산토끼가 되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수많은 남자가 말을 건 후 미적거리며 서있던 이유를. "좀 전에도 만났는데 또 만났다"며 반색하던 남자들의 웃음 속에 숨겨진 흑심 등을 말이다.

동네 슈퍼 아저씨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배낭 속을 살피곤 했던 이유도 비로소 알게 됐다. 당시 산에 가는 척 배낭 속에 외출복을 챙겨 나가 갈아입은 후 다른 데로 새 부적절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거나, 산 혹은 산악회에서 눈이 맞아 바람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들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었다. 산행을 전혀 하지 않던 내가 어느 날부터 산에 가는 일이 많아지자 의심한 것이리라.

여하간 산행을 핑계로 혹은 산행이 계기가 되어 바람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도는 것을 보면서 기사를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 그런가?' 궁금했다. 그래서 여차하면 사람들에게 묻곤 했다. 언제든 글을 통해 한번 짚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경험이 다인데다가 누가 그렇다더라 등 근거가 부족하고, 시간이 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자꾸 미뤄졌다. 또, 알 것 다 아는 성인들끼리의 지극히 사적인 문제인지라 어떤 결론도 나지 않는 이야기란 생각 때문에 마음만큼 글이 쉽게 써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이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이유는 산에 다닌 지 좀 됐다는 사람들도 지인처럼 산토끼 사냥꾼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간의 호기심에 잠시 어울렸다가 엄청난 낭패를 보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한 결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날 찍었던 '자주꿩의다리'. 북한산에는 6월 말경부터 시작해 추석 무렵까지 핀다.
 그날 찍었던 '자주꿩의다리'. 북한산에는 6월 말경부터 시작해 추석 무렵까지 핀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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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여름 산행 중 볼 수 있는 중나리
 북한산 여름 산행 중 볼 수 있는 중나리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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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꽃이에요?"

지난 6월 21일에도 북한산 산행을 했다. 올 들어 처음 보는 '자주꿩의다리'란 꽃을 찍고 있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이처럼 물었다. 돌아보지도 않고 꽃 이름만을 알려준 후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그리고 산행을 계속했고 지난해 나리꽃을 만난 장소에서 올해 들어 처음 만나게 된 나리꽃을 찍었다.

"반가워요. 아까 저 아래서 사진 찍었던 그 분 아니에요? 이렇게 또 만나다니 우리가 인연인가 보네. 커피라도 마실래요?"

사진을 찍는다고 가까이 누가 있는지도 신경 안 쓰고 있던 참인데 어떤 남자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그 남자는 나리꽃 가까이에 있는 바위에서 혼자 간식을 먹고 있었나 보았다.

어쨌든 산행을 핑계로 여자를 낚으러 다닌다는 산토끼 사냥꾼에 대해 쓰기 전에 산행이라도 하고 올까 생각하고 간 산행이었다. 사실 그동안 글을 쓰자 마음 먹으며 '한번쯤 좀 넘어가 봐?'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최대한 많이 알고 쓰는 것이 맞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연 운운하며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남자의 제의가 한편으론 반가웠다.

'그래? 그럼 오늘 한번 낚여 봐?'

- ②편에서 이어집니다.


태그:#산행, #산토끼 사냥꾼, #꽃뱀, #북한산, #자주꿩의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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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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