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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동네는 먹을 게 없어."

주말마다 볼멘소리하기가 수차례. 서울 강북의 한 베드타운에서 살다가 사무실이 많은 강남으로 이사 온 뒤부터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먹거리에 목말라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곳은 흔히 말하는 도심권인데 전에 살던 동네에 비해 '주민'은 얼마 없다. 그래서인지 동네 주민들의 까다로운 입맛과 지갑 사정까지 고려한 싸고 양이 많은 '착한 식당'을 찾기 어렵다. 회사원이 많은 이 동네 식당들은 맛있으면 터무니없이 비싸고 양이 얼마 안 된다. 게다가 회사원이 쉬는 주말에는 대부분 문을 닫아 외식도 쉽지 않다. 푸짐한 먹거리를 갈망하는 나로선 늘 아쉬웠다.

칼국수 한 그릇에 2500원이라고?

그러다 보니 늘 다른 동네에 갔다가 맛있는 먹거리를 발견하면 '득템'을 한 기분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나도 모르게 양 손 가득 먹거리를 쟁여 오는 게 취미가 돼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귀가 솔깃할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은 칼국수 한 대접을 먹는 데 단돈 2500원이라는 것. 또 만 원으로도 웬만한 음식들은 다 먹어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당장 검색을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이미 '망원시장 특A코스', '망원시장 100% 즐기는 법' 등의 다양한 게시물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하여 반신반의하며 친구 세 명과 함께 망원시장을 찾았다.

우선 시장 입구에서 각자 만 원씩 모았다. 이 돈으로 과연 '몇 차'까지 갈 수 있나 확인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지출은 만둣집이었다. 망원역에서 시장까지 걸어가던 중,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만둣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큼지막하니 먹음직스러운 만두는 가격도 저렴했다. 주먹만한 만두 여덟 개에 5000원. 만두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지만, 우리의 맛집 탐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맛있는 건 오늘 다 먹으(의)리!' 뜨끈뜨끈 김이 나는 만두를 손에 쥐고 시장에 들어섰다.

망원 시장 초입에서 구매한 만두.
 망원 시장 초입에서 구매한 만두.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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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시장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동네 시장이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평범했다. 하지만 시장을 차차 둘러보며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무리 동네 시장이어도 이렇게 저렴할 수는 없을 거야.' 정말 듣던 대로 칼국숫집 메뉴판에는 잔치국수 1500원, 칼국수 2500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평소 즐겨 먹던 동네 칼국수는 7000원이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칼국수와 잔치국수, 수제비를 주문했다. 심상치 않은 크기의 그릇에 음식이 가득 담겨 나왔다. 시장에 오기 전부터 궁금했던 칼국수부터 얼른 맛봤다.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낸 듯한 육수는 깔끔한 맛이 났고, 손으로 반죽한 면발은 쫄깃쫄깃해서 씹는 즐거움이 있었다. 양념장은 조금만 넣어도 얼큰한 맛을 냈는데 매운 걸 잘 먹기로 자부하던 나조차 한 숟갈 퍼 넣자 입안에 매운 기가 퍼졌다. 사 온 만두와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일품. 잔치국수 1500원, 칼국수 2500원, 수제비 3000원. 두 번째 집에서 총 7000원을 지출했다.

푸짐한 수제비, 칼국수, 잔치국수. 그릇의 크기도 크다.
 푸짐한 수제비, 칼국수, 잔치국수. 그릇의 크기도 크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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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벌써 배부른 기색이었다. '벌써 배부르면 어떡해.' 위를 다그치는 심정으로 배를 두드렸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닭강정과 닭똥집 튀김. 밴드 장미여관의 멤버 육중완이 방문했다는 플래카드를 내건 이 집은 다양한 종류의 닭강정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닭똥집과 닭강정을 각각 한 컵씩 주문했다.

닭똥집 튀김에 고로케까지...이것이 '망원의 행복'

주인 아저씨는 컵이 넘치도록 닭똥집과 닭강정을 담아 주셨다. 이것들을 오물오물 씹으며 시장을 활보하고 있자니 맥주가 간절해졌다. 특히 짭짤하면서도 살짝 기름이 돌며, 쫄깃한 식감을 지닌 닭똥집은 기대 이상이었다. 당장 자리를 펴고 닭똥집 튀김에 맥주를 들이켜고 싶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우리는 위 안 공간을 남겨둬야만 했다.

종이컵에 넘치도록 담겨있는 닭똥집튀김. 아저씨의 인심이 따뜻하다.
 종이컵에 넘치도록 담겨있는 닭똥집튀김. 아저씨의 인심이 따뜻하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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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멈춘 곳은 미니김밥을 파는 곳이었다. 매콤 오징어, 스팸 참치 등 쉽게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조합해 손가락만한 크기의 김밥을 파는 곳이다. 메뉴가 다양한 탓에 고르는 데 한참이 걸렸다. 총 7가지 맛을 선택하고 3500원을 지불했다.

뜨거운 국수와 짭짤한 닭똥집을 먹고 나니 이번엔 시원한 음료를 들이켜고 싶어졌다. 시장 곳곳에 셰이크, 아이스크림 등이 있었으나 우리는 살짝 살얼음이 낀 식혜 한 병을 구매했다. 시원하고 달달한 식혜가 입속에 퍼지자 지금의 더위가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더위가 아니라면 이 식혜를 맛볼 일이 있겠는가. 3000원으로 무더위까지 긍정하게 되었다.

다음 코스는 망원시장에서 명물로 꼽히는 고로케. 시장 끄트머리에서 서로 마주보고 장사를 하는 두 집은 각각 고로케, 야채 고로케, 감자 고로케 등 일반 고로케와 크림치즈 고로케 등 독특한 고로케를 팔고 있었다. 한 곳만 맛보기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두 곳 다 방문하는 '의리'를 발휘했다. 야채 고로케 하나도 덤으로 얻었다. 이미 배는 포화 상태였으나 공짜는 사양하지 않는 법. 바삭바삭하고 간이 잘 밴 고로케를 먹으니 다시 입맛이 도는 듯했다. 이곳에서 4500원 지출.

다양한 고로케와 도넛을 팔고 있다.
 다양한 고로케와 도넛을 팔고 있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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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위에 공간이 없는 듯했다. 배를 부여잡고 망원시장을 나서려는데 아이스커피와 미숫가루를 파는 할머니와 마주치고 말았다. 기름진 걸 먹었으니 커피로 내려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한 번 멈춰 섰다. 시원한 커피 한 잔과 미숫가루 한 잔을 주문했다.

아이스커피 1+1...전통시장에서만 가능합니다

시장 커피는 당연히 달달한 믹스커피일 줄 알았는데 커피와 설탕만 들어간 깔끔한 아이스 커피였다. 미숫가루는 만드는 방법이 독특했는데, 일단 커다란 통에 미숫가루와 설탕을 밥숟갈로 퍼 넣은 뒤 얼음과 물을 붓고 흔든다. 그리고 종이컵에 따라 주었다. 베테랑 할머니도 이번에는 양 조절에 실패했는지 생각보다 더 많은 양을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우리는 '1+1(원 플러스 원)'의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인심이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마신 커피와 미숫가루는 2000원.

커피와 미숫가루를 순식간에 뚝딱.
 커피와 미숫가루를 순식간에 뚝딱.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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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시장표 아이스커피와 미숫가루, 서비스로 미숫가루 한 잔 더.
 망원시장표 아이스커피와 미숫가루, 서비스로 미숫가루 한 잔 더.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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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배는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날 우리가 지출한 돈은 총 2만8000원. 숨도 못 쉴 정도로 먹는 데 든 돈은 한 사람 당 7000원이었다. 대형마트와 달리 시장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왠지 모를 향수와 푸근함. 사람 사는 냄새 나는 시장을 다시 찾지 않은 이유가 없었다. 망원시장에서 즐긴 만원의 행복, 그야말로 '망원'의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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