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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덕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이 자신을 소재로 한 기록영화 <미완의 시간> 상영에 앞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강창덕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이 자신을 소재로 한 기록영화 <미완의 시간> 상영에 앞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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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덕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의 일대기를 담은 기록영화 <미완의 시간> 상영회가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강창덕 선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지난 26일 오후 평화통일시민연대 사무실에서 열렸다.

강창덕 이사장은 대구 지역 민주화운동의 원로로 일제시대에 2번,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장면 정권 때 각 1번, 그리고 박정희 정권 때 2번 등 모두 7차례에 걸쳐 투옥되어 13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선생은 또 기자 재직 시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 현장을 최초로 보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날 상영회에 앞서 강창덕 이사장은 "나는 일제 때 처음 감옥 생활을 한 이래 지금까지 60년간 오직 평화통일에 보탬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살아 왔다"며 "나 스스로 역사와 정의, 그리고 양심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해 왔다고 자부 한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또 "나는 외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족 자주적으로 우리 민족끼리 화해와 협력으로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며 "나는 지금도 평화통일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 무슨 일이든 찾아 나설 것이다. 하지만 한 마디 쓰다는 말도 없이 고생만 하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는 정말 미안하다"고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강 이사장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두 번 구속됐다. 첫 번째는 장면 정권의 허가를 받아 1961년 5월 10일 대구 시내 만경관 앞 광장 집회에서 연설을 했다가 5·16 직후 지난 일을 문제삼아 박정희 정권이 선생을 구속한 일이었고, 두 번째는 1974년 5월 6일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인혁당 재건 사건'으로 체포되어 극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8년 8개월을 복역한 일이었다.

강 이사장은 88세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도 '대구경북 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 고문, '영남개혁 21' 고문, '한반도포럼' 대구경북 상임고문, '남북 정상회담 경축 국민대회' 고문, '민생정치포럼' 대구경북 고문, '개성 평화 통일의 숲 가꾸기 행사' 참여, '남북평화나눔운동본부' 고문, '대구경북 민주언론 시민협의회' 고문,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대구경북본부 고문, '민주평화통일가문회의' 상임위원, '6·15 공동선언 10·4 선언 실천을 위한 평화통일 국민회의' 고문, '평화통일 대구시민연대' 상임고문, '대구광역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아직도 첩첩이 쌓인 백골, 학살은 대구 근교에서, 총소리 매일 산골 울려, 압량 코발트 폐갱 속에 추산 1000여 해골" (1960년 5월 22일 매일신문 기사)


태그:#강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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