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감주나무의 황금빛, 겨자빛, 노란빛 꽃이 화들짝 피었습니다.
▲ 모감주나무의 황금빛 꽃 오감주나무의 황금빛, 겨자빛, 노란빛 꽃이 화들짝 피었습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모감주나무는 가을에 잘 익은 까만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염주나무'라고도 합니다. 6월 중순경이면, 황금빛 노란 꽃 비처럼, 꽃들이 떨어집니다. 요즘 들어 자주 내리는 국지성 호우의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갑작스레 내리는 소낙비에 모감주나무 꽃이 속절없이 떨어집니다.

비바람에 떨어진 꽃들을 보면 삶의 상처들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짜합니다. 저렇게 떨어진 꽃들이 있어 남은 꽃들이 실한 열매를 맺습니다. 꽃이 핀대로 죄때문에 열매를 맺는다면 자잘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운데 부분에 붉은 빛 기운이 도는 꽃들도 함께 피어납니다.
▲ 모감주나무 가운데 부분에 붉은 빛 기운이 도는 꽃들도 함께 피어납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우리네 세상사도 그렇습니다.
경쟁의 사회에서 낙오된 이들, 그래서 피어나지도 못하고 비바람에 떨어진 꽃처럼 떨어진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있어 일등도 있고, 그들이 있어 위안도 받고, 그들이 있어 살아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처 입은 이들, 낙오된 이들, 실패한 이들에게 미안하거나 감사한 마음을 갖기는커녕 조롱합니다.

실패한 사람, 낙오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누구라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가 속해있는 공동체가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모두의 책임이지요. 그러한 책임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세상, 그리하여 정작 자신의 책임임에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을 능력처럼 아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비바람에 꺽인 꽃가지와 떨어진 꽃들입니다.
▲ 떨어진 꽃들 비바람에 꺽인 꽃가지와 떨어진 꽃들입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모감주나무는 서양에서 'Golden Rain Tree'라고 부른답니다.
이름 그대로 황금빛 비가 내리는 나무이지요. 6월의 햇살을 피하려 모감주나무 아래 섰습니다. 작은 꽃들만 떨어진 것이 아니라, 꽃가지까지 부러져 떨어진 것을 보니 돌풍을 동반한 소낙비에 상처를 입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믿습니다.
이 정도의 상처로 그들이 꽃 피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남은 꽃들이 열매 맺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 때문일까요? 중국에서는 학덕이 높은 선비가 죽으면 묘지 옆에 모감주나무를 심어주었다고 합니다. 학덕이 높다는 것은 단지 이론만 잘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배운 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니, 모감주나무의 근성을 닮은 이들이 학덕도 쌓은 것이겠지요.

비바람에 가지째 떨어진 모감주나무의 꽃
▲ 모감주나무의 꽃 비바람에 가지째 떨어진 모감주나무의 꽃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모감주나무의 '모감'이라는 말은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보살을 의미하는 '묘각(妙覺)'에서 왔다고 합니다. 묘각은 그대로 풀면 '묘한 깨달음, 신비한 깨달음'이지만, 보살 오십이위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어 '온갖 번뇌를 끊어버린 부처의 경지에 해당'하는 것이 묘각입니다. 그것이 신비한 깨달음이겠지요. 그 '신비'에 이르기까지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번뇌를 겪었을 것입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모감주나무의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했습니다.
염주는 염불할 때에 손으로 돌려 개수를 세는 용도로 사용하는 손목 또는 목에 거는 법구(法具)입니다. 불교적인 용어지요. 불교 하면 '출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모감주나무의 꽃말은 '자유로운 마음, 기다림'입니다. 출가하는 처지에서는 '자유'를 갈구하는 심정이요, 다른 가족들로서는 끊임없는 '기다림'의 과정입니다.

모감주나무 아래서 6월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다 떨어진 꽃들을 만났습니다.
그 많은 꽃을 놓아버리고도 넉넉하게 서 있는 모감주나무를 보면서, 아주 작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더 큰 상처를 만드는데 익숙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떨어진 꽃을 짓밟으며 노는 철부지 아이 같은 이들을 떠올렸습니다.

모감주나무의 황금빛 꽃 비가 내리던 날, 그 꽃을 즈려밟으며 출가한 이는 없었을까?
▲ 모감주나무 모감주나무의 황금빛 꽃 비가 내리던 날, 그 꽃을 즈려밟으며 출가한 이는 없었을까?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떨어진 꽃은 이미 아픕니다.
그냥 그곳에서 마냥 자기가 피었던 가지도 바라보고, 하늘도 바라보다가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게 두어도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떨어진 꽃과 같은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인내심이 극한에 다다를 때까지 짓밟고 또 짓밟습니다.

그렇게 짓밟는 사람들은 지금은 승리한 듯 희열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자신이 더 큰 아픔을 감내해야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왈가불가하며 말하지 않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황금빛 꽃 비가 내리는 나무에서 꽃 비가 내릴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황금빛 꽃 비를 맞으며, 신비한 깨달음을 얻는 시간을 갖는 6월의 하루를 만들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여러곳에 모감주나무가 있겠지만, 저는 '서울숲' 영주사과길 근처의 산책길에서 만났습니다.



태그:#모감주나무, #염주나무, #보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