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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함석헌 선생의 발언과 비교한 복거일씨 칼럼.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함석헌 선생의 발언과 비교한 복거일씨 칼럼.
ⓒ 한국경제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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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복거일씨는 <한국경제>에 ''하나님의 시련'은…고 함석헌 말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의 글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문 후보자가 교회 강연에서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비난도 있다. 언뜻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얘기다. 그러나 찬찬히 맥락을 살피면 우리 역사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해석한 것임이 드러난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우리 역사를 살핀 분은 함석헌 선생인데, 실제로 문 후보자의 발언은 함 선생의 역사 해석과 맥락이 같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함 선생은 중학생들에게 '영광스러운 조국의 역사'를 가르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우리 역사는 '고난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함 선생이 던진 물음은 '왜 우리는 그렇게 고난을 겪었을까?'였고 고뇌 끝에 찾은 답은 '섭리'였다. 우리 역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기독교 신자에겐 당연한 이 답을 찾는 일은 그러나 쉽지 않았고, 함 선생처럼 위대한 사상가에 의해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었다.

복씨는 이 글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인 함 선생과 문 후보가 같은 세계관으로 우리 역사를 해석한 것은 자연스럽다"며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를 변호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몇 마디 말이나 글이 아니라 그 인간의 전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결정된다. 복씨 말처럼 문 후보자가 함석헌 선생과 같을 말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창극씨 삶의 모습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평생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함석헌 선생의 삶과는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함석헌 선생은 해방 전과 북한의 소련군정 하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해방 후 월남한 대한민국에서조차 같은 동포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의해 수감과 연금생활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했다. 불의한 독재 권력에 대한 함석헌의 가차 없는 비판 때문이었다. 문 후보자는 독재자 박정희를 기리는 박정희기념재단의 이사를 지냈다.

성경에서도 예수와 율법주의자인 바리새인들은 같은 책인 '토라'를 읽었고 같은 성전인 '시나고그'에 출석했다. 그러나 예수가 약한 땅의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목숨을 걸고 함께 했던 것에 반해 바리새인들은 늘 강자와 권력자들의 주변을 맴돌았고 기득권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문창극은 '보수우파'가 아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표현한 과거 발언이 공개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사퇴 압박받는 문창극 후보자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표현한 과거 발언이 공개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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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을 보는 시각에는 최소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피해자나 약자 입장에서 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해자나 강자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함석헌은 역사와 현실에서 늘 약자와 피해자 편에 함께 섰고 그들 입장에서 말을 하고 글을 쓰며 행동했다. 그래서 강자와 폭압자인 일본제국주의, 김일성,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함석헌은 평생 한 번도 안정된 직장을 가져보지 못하고 수시로 감옥문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그러나 강남의 한 대형교회 장로라는 문창극씨 모습에서 나는 함석헌이 겪었던 고난과 사회정의를 향한 열망,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뜨거운 모습은 전혀 볼 수 없다. 나는 문씨에게서 재야인사 함석헌 선생과는 너무나 다른 권력지향적인 기득권 언론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문씨의 <중앙일보> 후배인 조우석 기자 또한 최근 "보수 우파는 공직 진출 꿈도 꾸지 말란 얘기인가?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조씨는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좋아하는 문창극"이라며 선배 문씨를 강력하게 변호했다. 조씨는 이 글에서 문씨가 "함석헌을 높이 평가한다"라며 마치 문씨의 '하나님의 시련' 발언이 함석헌의 발언과 유사하다는 듯이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조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문씨가 '보수우파'가 아니라는 데 있다. 보수우파는 무엇보다 민족의 중요성을 내세운다. 그래서 영국에서도 보수우파는 유럽연합의 이익보다는 영국 자체의 이익을 이기적이라 할 정도로 먼저 주장하고 챙긴다.

조씨 글처럼 문창극씨가 진정 민족을 중요시하는 '보수우파'라면 일본의 극우 네티즌들이 "옳은 소리"라고 문씨의 강연을 환영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겠는가. 일본 극우 네티즌들이 문씨를 환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총리 후보라는 문씨가 일본 극우의 입장을 너무나 잘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문씨는 결코 '친일파'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함석헌이 말한 '하나님의 뜻'

함석헌
 함석헌
ⓒ 함석헌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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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씨와 조우석씨가 '함석헌의 시련' 글과 관련하여 간과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있다. 함석헌은 1934년 김교신이 발행하는 <성서조선>에 "성서로 본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연재하며 일제강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글을 당시 일본 형사는 오늘날 일본의 극우 네티즌들처럼 "옳은 소리"라고 환영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진 고문 끝에 함석헌을 1년씩이나 교도소에 보낸다. 왜 그랬을까? 당시 함석헌을 고문하던 일본 형사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냥 무력항쟁을 하는 놈들보다 500년 후를 내다보고 조선정신과 얼을 교육하는 네 놈은 훨씬 악질 놈이다!"

바로 그것이었다. 함석헌은 일제강점기 핍박에 찌든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일본 점령자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희망'이라는 무기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아무리 어려움에 처한 개인이나 민족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고난을 극복 할 힘을 얻을 수 있고 내일을 개척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당시 피해자이자 약자로 일본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무서운 억압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우리민족에게 가해자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희망'이라는 무기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한 인간에 대한 가치는 단순한 한 마디 '말과 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서 있는 역사적 위치와 자리, 그리고 그 인간이 그동안 살아온 총체적 삶의 모습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함석헌은 평생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며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살아온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과 글은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제는 제발 권력의 주변을 맴도는 기회주의자들이 함석헌의 말과 글을 함부로 인용하면서 그를 욕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함석헌은 항상 권력의 비판자였지 결코 권력의 추종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수 기자는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의 저자입니다.



태그:#함석헌, #김성수, #문창극,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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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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