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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지방선거 당시, 한 서울시장 후보의 발언 중 가장 비상식적이었던 것은 '반값등록금이라는 개념 혹은 용어가 대학의 사회적 인식을 낮추고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낮춘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역시 반값등록금의 취지 자체는 이해하지만, 장학금이나 기숙사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언급하였다.

사실 그리 놀라운 언급도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립대 이사장들이 비슷한 생각을 해왔을 것이고,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 사립대학의 학비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대학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독일?

서울지역대학생교육대책위 소속 학생들이 지난 1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과 대학재정의 투명한 심사의결을 위해 민주적 등록금심의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 서울지역대학생교육대책위 "반값등록금 약속 언제 지키실 건가요" 서울지역대학생교육대책위 소속 학생들이 지난 1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과 대학재정의 투명한 심사의결을 위해 민주적 등록금심의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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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학생의 등록금을 반액 면제해 주느니 차라리 몇 명 골라서 장학금을 주며 학점 경쟁 시키고, 신축 기숙사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돈벌이를 하는 게 그들에게 더 편한 방법이니깐 말이다. 이 모든 생각과 논의에 앞서 사실 학비가 비싸고 싸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왜 비싼지이다.

삶에 필수적이지 않은 물건이 비싸면 안 사고 아니면 할부를 해서 또는 대출을 해서 구입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이 허용되는 것처럼, 대학이 필수가 아니라면 비싸다는 이유로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이 스펙의 기본 요소인 대한민국에서 그런 소리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이다. 그렇다면 이 필수품이 비싼 만큼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예전에 한 의류 브랜드의 가격 책정 방식이 인터넷을 달궜던 때가 있다. 요지는 원자재비, 노동비가 차지하는 가격비중은 굉장히 낮고, 브랜드 이름 하나가 의류 가격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류 브랜드는 정기적으로 할인 행사라도 한다. 하지만 대학 등록에 있어서는 세일 기간도 없고, 폭탄 세일도 없고, 일찍 등록한다고 할인을 해주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분명 대한민국의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는 것에 동감할 것이다. 그리고 감히 비싸니까 가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은 의무와도 다름 없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체감하고 있고, 수많은 지표들이 증명하는 진실이다.

단적인 비교를 해보자. 한국의 일반적인 사립 대학의 공과대학을 8학기 다녀서 졸업하려면, 학비로만 순수 약 3200만~4000만 원의 돈(1학기 400만~500만 원)이 소요된다. 순수 학비로만 말이다.

내가 독일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데는 매달 700유로(약 100만 원)가 든다. 이 돈으로 월세, 베를린 공대에서의 학비, 교통비, 건강보험비를 충당하고 가끔 문화 생활, 여행까지 할 수 있다.

즉, 한국 대학 등록금으로, 독일에서는 같은 기간만큼 대학을 다니면서 동시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정도의 생활비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욕심을 부리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돈이고, 어떤 수준의 집에 사느냐 그리고 나이에 따라 생활비는 큰 차이가 나지만, 20대의 대학생으로서 큰 무리 없이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즉, 한국의 학비와 약간의 용돈 정도의 예산이라면, 독일에서는 일반적인 대학 생활을 할 수준과 버금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당연히 비쌀 수도 있다. 학비가 비싼 나라도 있고, 싼 나라도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말이다.

2014년도 여름학기 베를린 공대의 등록금 및 분담금은 약 290유로(약 40만 원)였다. 금액이 이상하다. 한국에서의 상식으로 봤을 땐 '0'이 하나 더 붙어야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럼 이 베를린 공대의 등록금을 파헤쳐 보자.

베를린 공대 한 학기 등록금, 40만 원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캠퍼스 전경.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캠퍼스 전경.
ⓒ TU Berli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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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 베를린 공대 여름학기 대학 등록금 및 분담금 내역 (환율 1400원 기준)

1. 행정비용:  50.00 유로 (약 70,000원)
2. 학생회비: 8.70 유로 (약 12,000원)
3. 대학생 복지 사업: 46.13 유로 (약 65,000원)
4. 학기 교통 티켓: 179.40 유로 (약 250,000원)
5. 사회기금: 3.50 유로 (약 5,000원)

총 287.73 유로 (약 400,000원)

1. 행정비용
정식적으로 대학이 받게 되는 유일한 요금이다. 행정비용(Verwaltungsgebühr)으로 들어가는 서류 처리, 데이터 베이스 정보 업데이트, 학사 행정을 위한 비품 구매 비용 등등. 이 돈으로 무슨 일을 할지 어느 정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수준의 비용이다.

2. 학생회비
AStA라고 알려진 학생회(Allgemeiner Studentenausschuss)를 위한 비용이다. 간단히 말하면 학생회비. 이 돈으로 학생회가 독일의 학생들을 위해 이뤄낸 일들은 적지 않다. 학생회가 학생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학기 교통 티켓(Semesterticket)에도 깊숙히 관여해 있다는 사실을 보면 이 돈을 내는 것이 전혀 억울할 일이 없다.

3. 대학생 복지 사업
보통 학생 기숙사로 많이 인지되는 기관을 위한 비용으로, 학생회와 더불어 학생 복지 관련 일을 하는 단체를 위해 쓰이는 돈이다. 학생 식당(Mensa)나 학생 기숙사(Studentenwohnheim) 등의 학생들의 직·간접적인 사회 복지를 위해 쓰이는 돈이다. 이 돈을 내기에 주변 식당에 비해 저렴한 학생 식당을 이용할 수 있고, 모두는 아니어도 많은 학생들이 학생 기숙사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4. 학기 교통 티켓
전체 등록금을 구성하는 비용 중 가장 큰 비용으로 학기 중 교통 티켓을 위한 비용이다. 이 티켓은 동시에 학생증과 도서관 대출증으로도 활용 가능하다(티켓이 필요 없으면 학기 티켓 면제 서류를 작성하여 티켓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음). 6개월 동안 베를린 전체 구간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이 티켓은 비 학생 신분의 일반인이 매달 베를린 전체 구간의 정기권을 구매하는 것에 비해 약 3배 가량 저렴하다.

5. 사회기금
일반 티켓에 비해 굉장히 저렴한 요금으로 학기 교통권을 구매할 수 있게 보조하는 공공 기금이다.

저렴해도 존경할 만한 대학을 꿈꾸며

2011년 9월, 서울 신촌 연세대 정문앞에서 연세대와 고려대 총학생회가 공동개최한 '9.19 반값등록금 연고제/고연제 선포 기자회견'에서 비싼 등록금을 '반값'으로 자르기 위한 퍼포먼스를 위해 톱이 준비되어 있다.
 2011년 9월, 서울 신촌 연세대 정문앞에서 연세대와 고려대 총학생회가 공동개최한 '9.19 반값등록금 연고제/고연제 선포 기자회견'에서 비싼 등록금을 '반값'으로 자르기 위한 퍼포먼스를 위해 톱이 준비되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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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등록금 및 분담금이라는 이름으로 책정된 대부분의 등록금은 학생의 권리와 혜택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분담금이었다. 등록금으로 볼 만한 것은 50유로의 행정비용뿐이다.

400만 원, 500만 원씩 남의 집 개 이름도 아닌 돈을 매 학기 수십만의 대학생들이 각자의 대학에 지불한다. 한국의 대학들이 그들에게 받은 돈만큼 뭔가를 돌려주고 있으니 비싼 것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학 도서관은 자리가 부족하고, 기숙사는 하늘의 별 따기다. 수백만 원을 냈지만 기숙사는커녕 학기 교통권조차 없다.

그럼에도 단순히 독일은 등록금이 없는데 우리나라는 왜 이리 비싸냐고 비판할 이유도, 비판할 수도 없다. 한국대학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독일의 대학의 상황과 많이 다를 것이고, 우리나라의 사회적 상황과 독일의 사회적 상황은 또한 많이 다르다. 게다가 독일의 공립대학과 한국의 사립대학을 비교하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그냥 이 두 나라는 너무나도 다른 나라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독일의 거의 모든 대학은 입학 전에 이미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금이 얼마인지, 등록금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는지, 과거 등록금에 비해 얼마나 올랐는지 혹은 줄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대학 홈페이지에서는 등록금이 얼마인지는 공개해 놓았지만, 그 외의 자세한 내역은 알 수 없다. 대신, 각종고시 합격자 수와 취업률 등은 상세하게 기록해놔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두 나라의 대학들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너무나 다르다.

대학의 학비는 비쌀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에 벽에 부딪혀서 대학이 학문의 장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취업 사관학교의 역할이라도 제대로 하고 있을까? 학생들은 학교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교 이름과 학점 외의 자신만의 스펙을 쌓아야 한다. 게다가 이제는 눈에 보이는 스펙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스펙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적어도 그들이 낸 등록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책정된 것인지 떳떳하게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나라이고 어떤 사회이고를 떠나서 그리고 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의 구분을 떠나서 '대학이라는 교육 기관의 이름'을 달고 있으면 행정적 투명성은 당연히 갖춰야할 기본 조건이 되었으면 좋겠다. 투명하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기 앞서 투명하고 상식적인 대학을 바란다.

학생들이 꿈꾸는 대학은 비싸야 존경할 수 있는 대학이 아니라, 저렴해도 존경할 만한 대학이다.


태그:#대학등록금, #독일, #베를린, #대학, #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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