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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수도 서울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승리했고 진보교육감이 전국적으로 압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전체 결과를 '야권 승리'라고 부르기에는 석연치 않다.

새누리당은 텃밭이라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었던 대구, 울산, 경북, 경남, 제주는 물론 인천, 부산, 경기 등 주요 격전지에서 승리해 총 8곳의 광역단체장을 휩쓸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수도 서울을 비롯해 대전, 광주, 충남, 충북, 전남, 전북, 세종, 강원 등 9곳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특히 새정치연합이 지역 텃밭을 떠나 수도 서울과 충청도 지역에서 승리한 것은 작지 않은 성과다. 야권이 압승했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구)민주당은 광역단체 7곳 승리에 머물렀다. 게다가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주진보단일후보'를 내세웠던 교육감 선거는 압승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성과를 냈다.

선방한 여당, 그러나 위기는 남아 있다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 이완구 비대위원장, 윤상현 사무총장이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웃음꽃 핀 새누리당 지도부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 이완구 비대위원장, 윤상현 사무총장이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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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실은 빈약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총 82곳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했고, 당시 민주당은 92곳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124곳에서 승리한 반면, 새정치연합은 72곳(5일 오전 10시 현재)에 그쳤다. 진보교육감의 전국적 승리 역시 지방자치 선거와 달리 야권단일화의 위력이라 볼 수 있지만, 보수 스스로의 분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물론 혹자는 여당과 야당이 기가 막힌 세력 균형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또한 세월호 사건이 아니었다면, 새정치연합은 이 정도의 성과도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권 직후부터 등장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등 공안몰이로 돌파해 왔던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사태로 급격히 흔들린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이번 선거는 그냥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아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번 지방선거가 박근혜 정부의 중간평가이자, 세월호 사태로 분노한 국민들의 '분노투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린 지방선거 결과는 여당의 승리도, 야당의 승리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에서 멈췄다. 오히려 정권차원의 위기를 감안하면 집권 여당의 선방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이 선거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물론 지방선거 이전부터 제기되던 박근혜 정부의 위기가 단지 세월호 사고 때문만은 아니다. 사고를 참사로 키운 데에는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불통과 독단, 일상화된 거짓과 속임수가 큰 몫을 했다. 여전히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보여준 오만하고 거침없는 행보들은 그대로 그들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갔다. 세월호 사태는 정권위기가 가시화된 계기였으나 원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선거 결과는 미지근하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세월호 사고에 대한 분노를 지방선거가 집어 삼켰다. 2008년 점차 무력화되던 촛불시위가 뒤이은 재보궐 선거에 흡수되다 2009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사건과 맞물려 2010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듯, 이번 세월호 사태도 지방선거에서 정권 심판 투표로 이어질 듯 보였다. 그러나 '심판투표', '분노투표'로 치장하기엔 결과가 지나치게 밋밋하다. 청와대가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내심 안도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물론 박근혜 정부로서는 수도 서울과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의 패배로 인해 위기를 깔끔하게 돌파했다고 보기는 어렵게 됐다. 그러나 이 어중간한 결과 앞에, 그들은 이제까지의 정국운영 기조를 그대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선거 정국에 터진 세월호 사태가 최대의 위기라 여겼지만, 그 심판의 칼날은 지나치게 무뎠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입장을 바꿔야할 뚜렷한 동기가 없다.

중앙정치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서울에서 시장선거와 교육감, 대부분의 구청장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정권에게 지속적인 위협 요소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들이 실제 정부여당을 위협이라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활동을 보아왔을 때 요원하다.

야성 버린 새정치연합, 또다시 무능함의 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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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언제나 그랬듯 야성을 버린 야당이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지방선거에도 여전히 특유의 무능함을 보였다. 야당의 존재 이유가 여당이 싫은 사람들의 표를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면, 왜 그들이 존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이 모호함은 주요 격전지에서의 패배를 불러왔다.

물론 새정치연합은 그들이 자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갔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이번 선거결과를 대단한 선전으로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들을 신뢰하거나 지지하지 않지만 그들에게 표를 준 이들의 입장에서는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지도, 그렇다고 분노를 맘껏 표출하지도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그들의 전략으로 인한 것이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의 연이은 패배 이후, (구)민주당은 촛불시위를 지켜보며 야성 회복을 통한 지지율 상승을 노렸다. '좌클릭'으로 상징되는 야당의 변화는 현실 장벽에 가로막힌 촛불의 유토피아를 적절하게 흡수했다. 그러나 18대 대선을 전후해 그들의 전략은 다시 변화했다.

그 전략의 핵심은 어차피 자신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진보·개혁층보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의 지지를 얻거나, 최소한 '위험하지 않은 세력'으로 보이려는 중도화·보수화 전략에 입각해 있다. 

야성을 잃은 야권이 기댈 전략은 '최악을 피하는 차선'에 대한 호소였고, 적중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 비판적일수록 자신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표를 얻고, 스스로는 자신이 '위험하지 않음'을 표방해 왔다. 자력 승리가 아니라 분노의 전유다.

그들은 슬금슬금 눈치만 봤다. 그들은 '최악 회피 투표'의 최대 수혜자지만, 대신 분노하지도, 대신 심판하지도 않았다. 무능이다.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진보정치의 주변화

새정치연합의 무력함에는 진보정치의 고립과 주변화가 한몫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와 뒤이은 내란음모 사건은 진보정치 전반의 고립으로 이어지며 정치적 영향력 상실이란 결과를 보여줬다. 거대 야당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지표를 빼앗길 수도 있다고 느끼게 만들지 못함으로써, 새정치연합의 보수화·온건화 전략을 제어하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치는 그야말로 초토화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천과 울산의 진보구청장들은 하나 같이 재선에 실패했고, 녹색당의 첫 시장 도전이었던 과천에서도 진보정당의 깃발은 오르지 못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끈질긴 억압과 배제 전략 때문만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진보정치가 고립화되고 주변화됐기 때문이다.

비록 산술적인 합산이긴 하나, 선거경쟁에 뛰어든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녹색당과 노동당의 득표만 모아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유의미한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산이 조각난 진보정치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제도정치 공간으로 흡수되지 못한 분노와 심판의 목소리는 여전히 비제도적 항거로만 남아있다. 정권에 대한 비판은 야권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의 소수 의견으로 간주됐다. 숨죽이며 벼르던 분노는 새정치연합에게 적절한 성공을 안겼지만, 그 분노는 새정치연합에 의해 대표되지도, 진보정당을 통해 표출되지도 못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적절한 힘의 균형을 이뤘을지는 몰라도, 분노의 표심은 갈 길을 잃었다.

지방선거 후, 여전히 남은 과제들

세월호 참사 39일째인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 천만의 약속'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청계천로에서 종로방향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세월호 참사' 촛불 거리 행진 세월호 참사 39일째인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 천만의 약속'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청계천로에서 종로방향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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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다. 새정치연합은 여전히 어정쩡한 태도를 고수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여당은 지방선거 결과에 조금이나마 위기를 느낄 것이나, 자신들의 통치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임기가 많이 남아 있는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정한 해결책을 꺼내 놓으리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거가 끝난 지금, 분노와 심판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은 의회 밖에서의 항거뿐이다. 여당의 선방과 무능한 새정치연합, 초토화된 진보정치가 만들어 낸 결과다. 제도정치 공간으로 투입되지 못한 요구는, 제도정치 공간 외부에서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이제 선거에 빨려들어가지 않는 분노와 항거, 심판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래서 더 허탈하다. 이 심판 없었던, 분노로 표출되지 못했던 지방선거 결과가.


태그:#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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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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