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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중인 삼성전자서비스노동자들을 위한 '밥한끼! 양말한켤레!'라는 이름의 행사에 김밥을 500줄 정도 싸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밥 싸던 기억이 났다.

쌍용차해고자들과 쌍용차해고자지원을 위한 와락센터 가족들은 지난 해 가을, 겨울 매주 화요일 김밥을 말았다(나도 와락센터에서 일한다). 처음에 한 500줄로 시작했는데, 쌍용차 공장앞에서 팔려고 꺼내놓으면 금방 동이 나버리니까 해고자들이 자꾸 욕심(?)을 냈다. '100줄만 더 싸보자. 이왕 만드는 거 200줄만 더 만들어보자' 하다가 결국 900줄까지 싸고는 기분 좋게 몸살들이 났다.

공장안 동료들이 사서 먹는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싸고 싶어 김치를 볶아서 넣고 참치김밥, 고추김밥을 만들었다. 다들 신나서 만들었다. 다양한 분야 많은 분들의 김밥말이(?) 연대도 있었다.

새로운 작업복을 입고 공장으로 출근하는 옛 동료들에게 복직요구 선전물을 건넬 때마다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는 해고자들은 김밥을 팔 때도 역시나 손끝이 떨린다고 했다.

하루에 900줄까지 말았던 김밥, 다시 만들렵니다

그래도 여럿이 만들어서 함께 먹는 일은 다른 것보다 사람 마음을 풀어지게 했다. 공장안 동료들도 김밥 한 두 줄을 사면서 그동안 서먹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에게 그런 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대량 김밥을 다시 싼다. 파업하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을 위해서 말이다.

작업복엔 삼성전자 로고가 박혀 있고 삼성제품에 고장이 생기면 활짝 웃으며 하나하나 설명하고 친절하게 고쳐주던 사람들. 당연하게 삼성전자의 직원인 줄 알았던 이들은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직원이란다. 그래서 교섭요구 피켓에 '진짜 사장 나와라'가 적혀 있었던 거다. 삼성전자가 만들어 판 물건이 고장났을 때 당연히 그 회사 직원이 와서 고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 삼성전자가 그런 정도 책임감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이 센 회사를 상대로 파업하는 이 분들을 위해 정말 맛있는 김밥을 싸야지 했는데, 농성장에서 전화가 왔다. 상경해서 파업하는 내내 김밥을 먹어 집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쿠, 장을 잔뜩 봐왔는데... '

생각해 보니 거리에서 10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하는 파업인데 당연히 김밥을 물리도록 먹었을 것이다. 2009년 쌍용차 파업때 공장이 경찰에게 봉쇄되고 물, 전기, 음식, 가스마저 차단되었을 때  우리 조합원들이 20일 가까이 최루액맛 주먹밥만 질리게 먹었던 생각을 왜 못했을까? 우리가 먼저 김밥보다 집밥이 좋겠다는 그 생각을 못한 게 미안했다.

부랴부랴 김밥재료로 전을 부치고 제육볶음을 만들고 열무김치를 감칠맛나게 담갔다. 그리고 지난 5월 28일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몰려 있다는 으리으리한 빌딩숲 한복판 서초동으로 향했다.

연대한마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
 연대한마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
ⓒ 권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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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하긴 했지만 일당이 천만원인 사람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고 일당 5억짜리 황제노역을 선고받았던 회장님도 있는 시절에 시급도 아닌 분급을 받으며 일했다고 했다. 제품 고장을 소비자에게 설명하는 시간은 그 분급에서 제외한단다. 사람 피말리는 벌점제도가 있어 제품 불만을 서비스기사에게 함부로 폭발시키는 소비자가 있어도 그저 '나는 사람이 아니무니다' 자세로 참아야만 했단다.

성수기건 비수기건 기본급도 없이 건당 떨어지는 수수료로 아장아장 아가와 착한 아내와 살아야 했기에 밤 늦은 시간까지 한 건이라도 더 하려고 기름값도 안 주는데 부지런히 다녔단다. 오죽하면 자신들이 그동안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파업으로 생계가 어려워도 견딜 수 있고 사측태도에 화가 나도 웃을 수 있으며, 파업이 길어져도 인내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다고 자조 섞인 시를 쓰는 조합원이 있을 정도다.

그러다가 도저히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어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노조가입 했다고 일감을 주지 않아 한달 월급이 40만 원, 50만 원밖에 안 되도록 만들었다. 일부 업체는 아예 위장폐업을 해버렸다. 그런 이유로 젊은 동료 세분이 안타까운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조합원 800명은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 일부는 수원 영통 삼성디지털시티에서 거리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노동자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세계 초일류 기업, 서비스 품질 1등 기업 삼성을 위해 서비스노동자들은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 외국에 나갔더니 삼성제품이 있어, 삼성광고가 보여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는 글들을 심심찮게 보았었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회사 삼성이 자기 나라에서 자기 회사의 직원들을 이렇게 대해 왔다. 백혈병으로 죽어가도 내내 모른 척으로 일관하다 자기들이 말하는 '또하나의 가족'이 허구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확인하자 급하게 사과를 하며 교섭을 한다고 한다.

예전 삼성이 했던 광고 중에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합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그렇게 기억되는 1등을 하고 싶어 삼성이 그간 우리 사회에 저지른 잘못은 너무도 많다. 세상에 삼성 편만 들어주는 잘나고 똑똑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채 삼성의 잘못이 번번이 덮어졌을 뿐이다.

누군가 내게 그래도 삼성이 있어 우리 경제가 이 정도라도 된거니 어쩌고, 삼성 제품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어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인정받고 어쩌고 이런 소리를 한다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노동조합도 인정하지 않는 후진적 경영방침을 고수하는 회사가 무엇이 1등인들 그게 다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냐고 말이다.

노동자를 소중히가 아니라 소모품으로 여기고 노동조합과 함께가 아니라 함부로 대하는 기업과 국가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게 할 수 가 없다.

길거리에서 밥상도 없이 먹는 밥이지만 맛있다며 정겹게 수저를 드는 젊은 서비스 기사님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 밥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내려온 날. 쌍용차 해고자들과 와락가족들은 오래오래 생각했다. 밥 한 끼, 양말 한 켤레, 책 한 권, 빵 한 조각, 지지의 박수와 격려, 그 무엇으로든 이들의 파업을 응원하고 함께 해주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권지영님은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전자서비스, #쌍용차, #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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