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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는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의 '교육론' 3부작 중 마지막 책이다. 전작인 <왜 학교는 불행한가>와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는 학교교육과 교육철학의 문제를 다뤘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서 우리 교육의 문제를 정책과 제도의 측면에서 살피고 있다. 교육학자 이재강씨와 공저했으나 전체적으로 전성은 선생의 기조를 따랐다.

제도와 정책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분명하다. 저자에 따르면, 정책은 '평화라는 일정한 방향을 향해 한 단계씩 제도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저자는 오늘날 인류 보편의 문제를 평화의 부재에서 찾는다. 이는 단순히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저자는 다수의 희생 위에 소수에게 권력과 부를 집중시키는 세상을 평화가 부재하는 세상으로 본다.

저자가 보기에 안녕과 번영이라는 공동선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사회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해방 후에 평화라는 학교교육의 목적을 위한 제도의 업그레이드를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이는 우리 교육사에서 제대로 된 교육정책이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로써 강조된다.

"역사는 억압이 있는 곳에서 자유를 향해, 불평등한 세상에서 평등한 세상으로, 착취가 있는 곳에서 착취가 없는 세상으로 진보해왔다. 그런데 우리의 학교교육은 해방 후에는 그 목적을 '반공'에 뒀다가 다시 그 무게중심을 '경제 산업 발전의 수단'으로 바꿔 아동을 점점 더 가열되는 경쟁의 도가니로 일관되게 몰아넣었다."(본문 37쪽)

저자가 보기에 정책의 목적은 제도의 인간화를 통한 업그레이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제도는 개인의 삶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사람의 의식과 일상을 지배한다. 제도를 인간화하지 못하면 제도의 노예가 된다. 현대 정책의 목적이 제도의 악마성을 최소화하고 제도의 선성을 최대화하는 길을 모색하는 데 있어야 하는 이유다.

"공동선이 위기에 처하면 그 결과 모든 제도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제도는 끊임없이 점검되고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정책은 개혁이고 개혁은 제도의 업그레이드다."(본문 83쪽)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교육은 어떻게 실현될까. 저자는 학교가 국가권력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교육개혁의 최종 목표도 교육부 독립에서 찾는다. 이유도 제시한다. 지금의 교육 현실에 대한 책임은 최종적으로 교육부에 있다. 해방 후 교육시책의 결정과 집행의 주체는 국방부나 농림부가 아니라 교육부였다. 저자는 교육부를 교육개혁의 제1호 대상으로 지목한다.

"정치계와 경제계의 요구가 비교육적일 때, 즉 학교교육을 단순히 국가가 필요한 인재(human resource)를 만들어내는 인재공장(human resource manufactory)으로 전락시키라고 요구할 때 'No'(노)라고 말해야 하는 곳이 바로 교육부다. 다른 부서가 아닌 교육부이며, 그곳의 수장 교육부장관이다. (중략)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의무를 다한 교육부장관은 없었으며, 교육관료집단도 없었다."(본문 116쪽)

저자는 교육부 독립과 학교교육 되살리기의 첫걸음을 교육기획론으로 불리는 삼각형 모형론에서 찾는다. 이는 교육부가 중심이 되는 중앙이 아니라 각 지역 단위를 기반으로 한다. 저자가 지역단위 교육력으로 부르는 삼각형 모형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1. 학교(교사)의 교육기획력 : 교사의 전문성, 교육과정 교재편성권, 교사별 학생 평가 등.
2. 조장적 행정력 : 교육활동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조건을 정비하는 행정력. 인적·적 조건 정비, 지근거리 지원 등.
3. 사회적 평가: 교육기획력과 행정력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묻는 평가체제.(124쪽 참조)

달리 말하면, 교육의 모든 것을 스스로 기획하는 개별 학교와 교사, 이를 지원하는 행정 시스템, 학교 교육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사회적 평가 체제의 구조로 학교교육 제도의 기본 틀을 갖추자는 것이다.

저자는 '제도가 악마성을 발휘할 때 이를 지적해야 하는 의무가 종교와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보기에 종교와 교육은 개인 구원과 공동체의 구원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와 교육은 그 두 가지 차원의 구원을 사회나 공동체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개인적인 영역에 국한된 것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6·4 지방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는 민선 2기 교육감 선거도 포함돼 있다. 후보로 나선 이들은 서로 자신이 지역 교육을 살릴 수 있는 최적임자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제도를 업그레이드하는 좋은 교육 정책을 내건 이들을 찾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처럼, 교육 정책의 목적을 '평화'에서 찾으면서 후보들의 교육 공약을 따져 보자. 가령 혁신학교 확대와 자율형사립고 유지 정책 중 어느 것이 공동체의 구원이라는 교육 본연의 사명을 더 잘 구현할 수 있을까. 보편적인 교육 복지 정책과 선별적인 교육 복지 정책 중 어떤 것이 우리나라의 평화를 실현하는 데 더 크게 이바지할까.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중산층의 약 10%가 몰락해 하층민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제도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의 가치를 강조하는 대목에서 저자가 인용하는 내용이다. 공동선이 위기에 처할 때 모든 제도가 위기에 처하게 되므로 정책 개혁을 통해 제도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는 교육과 무관해 보이는 후보들이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들이, 어찌 보면 교육을 죽일 것 같은 정책을 선거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내걸고 있는 게 아닌지 두 눈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이명박 정권 시절 하층민으로 몰락한 10%의 중산층처럼 우리 역시 교육 하층민으로 전락하지 말란 법이 없겠기에 하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전성은 외 지음 / 메디치 / 2014. 5. 15. / 192쪽 / 1만2000원)
이 기사는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

전성은.이재강 지음, 메디치미디어(2014)


태그:#<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 #전성은 이재강, #메디치, #정책과 제도, #6.4 교육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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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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