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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공무원 수가 꾸준히 증가한 이래 2014년에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사립학교 교원 등 각급 공공기관 구성원을 합치면 그 수는 200만을 웃돈다. 그러나 양적 팽창 만큼 질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를 살펴보면 의문은 더욱 커진다. 이 지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부패지수는 전체 45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27위다. 선진국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공무원에 대한 세간의 진단은 대개 일치한다. 각종 청탁과 낙하산 인사가 횡행하고 유력한 상급자에게 충성하여 속칭 관피아라 불리는 부처내 파벌을 형성하는 등 오랫동안 쌓여온 폐해가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태는 공무원들로 하여금 공익에 봉사하기보다는 유력자에게 줄을 대고 개인적 영달에만 몰두하도록 하여 공무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최근의 세월호 참사 속 무능하고 부패한 공직자들의 모습은 곪은 상처가 터져나온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진단이 나왔다면 처방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처방은 오로지 원칙을 지키는 것, 그 뿐이다. 한국의 공직자문제는 진단과 처방이 미비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처방에 따라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두가 바람직한 공직자상을 알고 있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공직자, 전문성을 갖춘 공직자, 잘못에 책임질 줄 알며 사람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에 봉사하는 공직자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각 부처마다 관피아가 형성되고 학연, 지연, 온갖 청탁과 비리로 얼룩져 있는 것이다. 고소영이라 불린 지난 정권의 인사와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이번 정권의 인사가 이를 반증한다.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이와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조사결과가 흥미롭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민 가운데 54.3%, 기업인의 34.5%, 외국인의 23.4%가 한국의 공무원이 '부패하다'고 답했다. 놀라운 사실은 공무원 중에서는 오직 4%만이 '부패하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국민과 공무원 사이에 믿기 어려울 만큼의 엄청난 인식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선 집단의식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집단의식이란 하나의 집단을 이룬 각 구성원이 공통으로 가지는 사고와 감정, 의지 따위를 통틀어 가리키는 용어로 이를 통해 두 집단 사이의 인식차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개미무리는 생태적인 집단의식을 통해 전체가 마치 하나의 개체와 같이 사고하고 움직인다. 이 속에서 집단과 다른 사고를 하는 개체란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사회 속 집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만약 공무원집단이 부패에 대해 국민일반과 괴리된 집단의식을 형성하고 있다면 충분히 위와 같은 통계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집단의 만연한 부조리에 개인의 도덕적 기준이 무뎌졌을 때 집단의식은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집단의식을 통해 부조리가 부조리로 다가오지 않을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집단의식이 내부의 부패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죄의식과 문제의식 없이 부패는 진행되고 확산될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외부의 비난은 그저 비난에 그치게 마련이다. 집단의식이 집단과 공동체의 가치판단마저 괴리시키는 것이다.

공무원 인사에 있어 누구나 알고 있는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것은 집단의식과 원칙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확립된 집단의식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집단의식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과 이미 형성된 집단의식이 발현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 뿐이다. 전자는 원칙을 세우는 작업을 통해서, 후자는 민간의 감시를 통해서 확보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만이 집단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바람직한 공무원상을 구현할 수 있다.

성실한 공무원을 기르고 싶다면 성실한 공무원이 대우받는 시스템을 갖추면 된다. 정직한 공무원을 만들고 싶다면 정직한 이를 우대하면 된다. 이미 원칙은 존재한다. 진단 역시 나와 있다. 지금부터라도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원칙을 적용하고 민간의 감시를 강화한다면 공공의 인식과는 다른 집단의식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공무원 인사의 원칙과 방향은 바로 여기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태그:#공무원, #공직개혁, #집단의식, #국민권익위원회,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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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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