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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양대 노조인 KBS 노조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조합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개념광장에서 공동파업 출정식을 열어 청와대의 KBS 보도와 인사 개입 등을 규탄하며 길환영 KBS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총파업 돌입한 KBS 양대 노조 "KBS는 국민의 방송이다" KBS 양대 노조인 KBS 노조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조합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개념광장에서 공동파업 출정식을 열어 청와대의 KBS 보도와 인사 개입 등을 규탄하며 길환영 KBS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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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KBS에 입사한 35기 기자들은 29일 오후 KBS 양대 노조의 파업출정식에 참여해 "길환영 사장은 퇴진하라"고 외쳤다. 방송 기자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치는 건 어색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힘차게 '팔뚝질'을 했다. 6년차인 이들이 맞는 3번째 파업이다.

기자와 PD가 주로 가입한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KBS노동조합(1노조)에서 분리된 2010년 이후 2010년, 2012년에 이어 올해 파업에 나섰다. 35기 기자들은 지난 2010년 12월 김인규 당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고 "지금의 KBS는 불행히도 권력의 확성기가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 9일 길환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낸 성명에서 "왜곡보도로 KBS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천인공노할 패륜적인 가치관을 지닌 언론사가 돼버렸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은 4년과 2년 전에도 "공정방송 사수"를 외쳤다. 이번 양대 노조가 내건 파업의 목적도 '공정방송 쟁취'다.

그렇다면 이들은 언제쯤 공정방송을 쟁취할 수 있을까. 이는 왜 KBS는 '공정하지 못한 방송'이 됐느냐는 질문과 이어진다. 그 답은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에 있다.

정연주 사장 강제 해임에서 시작됐다

'KBS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방송법 50조 2항의 내용이다. 이사진 11명 중 7명을 여권에서 추천한다. 결국 대통령은 자신과 가까운 인사를 어떠한 견제 없이 KBS 사장에 임명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공영방송 KBS'의 정치적 편향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1990년 4월 노태우 정부는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서기원씨를 KBS 사장에 임명한 뒤 KBS 안팎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3월 자신의 대선 캠프 언론정책고문을 지낸 서동구씨를 사장에 임명했다. 서동구 사장은 노조의 출근저지투쟁 8일 만에 사표를 냈다.

이후 <한겨레> 출신의 정연주 사장이 KBS를 이끌었다. 당시 KBS의 보도는 정치권의 외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와대와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을 폭로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뉴스에 대한 개입을 안 했던 사장이 정연주·이병순 전 사장이었다"면서 "두 사람은 가편집, 큐시트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2008년 8월 정연주 사장이 강제로 해임됐다. 이명박 정부는 이병순 사장을 임명했다. 1년 3개월의 짧은 임기 동안 이병순 사장은 <시사투나잇> 등 시사프로그램을 줄줄이 폐지하고 탐사보도팀을 해체했다. KBS의 시사보도기능이 약화됐다. 반면 KBS 뉴스는 이명박 정부 띄우기 성향이 짙어졌다.

1996년에 입사한 KBS 23기 기자인 함철 새노조 부위원장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고 가장 먼저 한 게 보도본부 접수"라면서 "정권에 비판적인 뉴스가 배제되기 시작했고, 정권의 비리를 고발하는 뉴스가 '9시 뉴스'에서 사라졌다"면서 "뉴스의 연성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망가진 KBS의 공정성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언론특보를 지낸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의 KBS사장 취임을 앞둔 지난 2009년 11월 23일 오후 여의도 KBS 본관 로비에 KBS노조가 내건 '낙하산 사장' 임명 반대 현수막과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언론특보를 지낸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의 KBS사장 취임을 앞둔 지난 2009년 11월 23일 오후 여의도 KBS 본관 로비에 KBS노조가 내건 '낙하산 사장' 임명 반대 현수막과 포스터가 붙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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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년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언론 특보 출신인 김인규 사장을 임명했다. 이명박 정부의 본격적인 방송 장악이 시작된 것이다. 김인규 사장은 앞선 두 사장과 달리, 직접 보도에 개입했다. 김시곤 전 국장은 "뉴스 큐시트를 받기 시작한 게 김인규 사장이고,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김인규 사장은 코드가 맞는 인사들을 주요 보직에 앉혔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화섭 전 보도본부장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그는 보도제작국장이던 2010년 5월 <뉴스9>에서 박재완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의 논문 이중 게재 의혹 보도가 방송되지 못하도록 막았다. 또한 그해 12월에는 <추적 60분>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편의 불방을 주도했다.

길환영 현 사장도 이명박 정부 들어 영전을 거듭했다. 김인규 사장은 취임 직후 길환영 TV제작본부장을 임명했다. KBS는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KBS 스페셜> '긴장의 서해, NLL을 생각한다'편을 방송했다. '북풍을 조성해 선거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PD들의 반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길 사장은 이후 콘텐츠본부장(2010년 6월)과 부사장(2011년 9월)에 임명되는 등 거침이 없었다. 그 사이 KBS는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다룬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KBS PD협회 등에 따르면, 당시 방송된 G20 특집 프로그램의 방송 분량은 3300시간에 달했다. 또한 방송인 김미화씨가 2010년 7월 KBS 출연금지 문건인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1년 1월 새노조가 전문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KBS 내 기자와 PD 13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4.1%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KBS의 공정성이 약화됐다고 답했다. 2월에는 새노조가 콘텐츠본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길환영 본부장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한 결과, 투표자의 87.9%가 불신임한다고 밝혔다.

기획제작국의 한 PD는 "길환영 사장은 관제 방송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콘텐츠 본부장에 있을 때 PD들의 제작자율성이 크게 줄었다"면서 "정부 행사 생중계, 모금 방송 등 새마을운동식의 방송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인규 사장에 밉보인 기자들은 대거 밀려났다. 김 사장은 사장으로 취임 직후 YTN 해직기자 등을 다룬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현석 기자를 춘천방송국으로 발령냈다. 또한 자신을 비판한 김진우 기자협회장을 징계했다. 회사는 또한 2012년 1월에 2010년 파업한 새노조 집행부 13명을 징계하기도 했다.

'공정방송 쟁취'는 언제 가능할까

2012년 12월 대선 직전 길환영 사장이 임명됐다. '방송장악은 없다'는 새 대통령이 들어서고 사장이 바뀌었지만, KBS는 여전히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권편향적인 간부들로 채워진 보도본부에서는 정권에 우호적인 뉴스를 생산했다. 한 10년차 KBS 기자는 "일방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인물에게 주요 보직을 맡겼다"고 전했다.

또 다른 기자는 "함량 미달의 간부들이 많다, 국장 말 한마디에 부장들은 '네네' 한다, 갑자기 오후 회의 때 새로운 발제가 나온다"면서 "또한 정치권이나 청와대에서 오더가 내려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보도본부 간부들은 고발하는 게 아닌 국정에 도움 되는 뉴스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보도본부 간부들은 기자의 발제보다는 조간신문의 나온 내용을 재가공해 보도하는 것을 선호했다. 처음으로 제작거부를 결의한 지난 12일 KBS 기자협회 총회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터져 나왔다. 한 KBS 구성원은 "정권에 비판적인 발제를 막고, 민감하지 않은 내용으로 뉴스를 채우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법조팀에 있던 한 기자는 "유우성씨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의 경우, 기자들이 증거 조작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를 했지만 리포트를 제작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면서 "유우성씨가 1심에서 무죄를 받았을 때, '9시 뉴스'에서는 보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3년 8월 길환영 사장이 유우성씨를 다룬 <추적 60분>의 방송이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KBS가 공영방송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길환영 사장 퇴진뿐 아니라, 인적 청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BS 노조 위원장을 지낸 현상윤 새언론포럼 대표는 "정권이 바뀌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은 교체되고, 능력이 없더라도 충성하는 사람들은 주요 직책을 맡았다"면서 "이들 함량 미달의 간부들을 교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BS 사장 임명 구조의 개혁이 공정방송을 위한 첫 걸음이라는 데 KBS 구성원과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없다. 이사진의 2/3가 동의해야 사장을 임명제청할 수 있다는 내용의 특별다수제 도입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야당 추천 이사가 동의해야 사장 임명 제청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30일로 KBS 파업 이틀째를 맞았다. KBS 구성원들은 공정방송을 쟁취할 수 있을까.


태그:#KBS는 언제부터 망가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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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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