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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 브랜드 핵심은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하는 기업, 로하스(LOHAS) 정신이다. 그 출발점에는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의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 정신이 있다. 풀무원 창립 30주년을 맞아 '로하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 이야기가 '하필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말]
충북 괴산 로하스 아카데미 원경선 기념관 모습. 평생 농부로 지낸 원경선 원장은 91세의 나이에도 농사를 지으며 주변에 유기농 농업과 관련한 다양한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풀무원 농장이 한 눈에 보이는 이 곳에서 즐겨 시간을 보낸 장소라고 한다
 충북 괴산 로하스 아카데미 원경선 기념관 모습. 평생 농부로 지낸 원경선 원장은 91세의 나이에도 농사를 지으며 주변에 유기농 농업과 관련한 다양한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풀무원 농장이 한 눈에 보이는 이 곳에서 즐겨 시간을 보낸 장소라고 한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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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이란 이름은 농장에서 시작했지만, 풀무원이 그 이름을 키웠으니 잘 써라. 다만 모든 제품에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의 정신이 깃들게 해라."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 최근 창립 30주년을 '통과한' 풀무원의 초심은 이렇게 아홉 글자로 요약된다.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원경선 원장의 이 정신은 농장 풀무원에서 회사 풀무원까지를 관통하는 글자들인 동시에,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브랜드 '풀무원 로하스'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아홉 글자가 풀무원만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다.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어른들이 만든 결과는...너무나 참혹했다. 풀무원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잘 살고 싶은 어른들이 함께 곱씹을 만한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첫 번째 행선지로 충북 괴산 로하스 아카데미를 택했다. 그 곳에는 지난 12일, 풀무원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문을 연 원경선 기념관이 있었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풀무원 농장이나, 풀무원 임직원 1만5천여명을 위한 연수원도 있었다. 이른바 풀무원 정신이 집약된 곳이라고 판단했다.

철쭉에 물을 준 날짜...일상적인 '생명 존중' 기록

1940년대 초 북경에서 인쇄업을 할 때 쓰던 원경선 원장이 쓰던 책상. "북경에서 가져와 부서지지 않으니 60년 넘게 썼다"고 한다
 1940년대 초 북경에서 인쇄업을 할 때 쓰던 원경선 원장이 쓰던 책상. "북경에서 가져와 부서지지 않으니 60년 넘게 썼다"고 한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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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선 기념관은 풀무원 농장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 있었다. 작년 1월 8일 향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하기 전까지 원경선 원장이 8년 여 말년을 지낸 자택을 리모델링한 곳이라고 한다. 유기농 농업과 환경·생명보호·평화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그의 기록들이 전시실 4곳에 정리돼 있었다.

"인류가 타고 가는 수레바퀴도 마차의 두 바퀴 같아서 도시와 농촌이라는 양쪽 바퀴가 같이 굴어가야 하는데, 도시라는 바퀴만 굴러가고 농촌이라는 바퀴는 굴러가지 못해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경제, 교육, 문화 모두가 도시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

여전히 유효한 그의 강연 메모. 사람 뿐 아니라 닭, 소, 말, 돼지, 토끼 등의 '똥' 성분을 분석한 메모나 "인류가 살아 남으려면 농민들의 양심적인 각성과 공해에 대한 지식의 계몽과 무공해 농법에 대한 기술 지도가 필요하다"는 원고들은 '정농(正農)'에 대한 고인의 열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원경선 원장의 검소한 삶을 나타내는 전시품들도 눈에 띄었다. 1940년대 초 북경에서 인쇄업을 할 때부터 쓴 책상, "북경에서 가져와 부서지지 않아 60년 넘게 썼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풀무원 공동체를 꾸렸던 원경선 원장의 부인 지명희 여사(2009년 타계)의 '통합 일지'도 인상적이었다. 금전 출납 내용은 물론 그 날 일어난 일, 부부 건강 상태 등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다.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철쭉 등에 물을 준 날짜를 확인하며 그들의 '생명 존중'이 일상적으로 느껴졌다.

패시브 하우스 "제발 자연을 치고 들어오는 형태가 안 되도록"

충북 괴산 로하스 아카데미의 '패시브 하우스' 전경. 건물과 주위 자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한 설계가 특징이다
 충북 괴산 로하스 아카데미의 '패시브 하우스' 전경. 건물과 주위 자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한 설계가 특징이다
ⓒ 풀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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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풀무원은 원경선 원장의 '이웃 사랑과 생명 존중' 정신을 바탕으로 기업 로하스(자신의 건강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생각하고 실천하는 라이프 스타일)를 회사 미션으로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원경선 기념관이 '어제'에 대한 인증이라면, 로하스 아카데미 연수원 '패시브 하우스'는 '오늘과 내일'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풀무원은 140억 원을 들여 지난 해 12월 이 곳에 '패시브 하우스(외부에서 열을 끌어쓰는데 수동적인 친환경적인 건축물)'를 건립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국제 인증기관인 독일 '패시브 협회'로부터 예비인증, 본인증을 모두 받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1년 내내 15±3℃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지열을 이용한 친환경 지열 냉난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건물과 주위 자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한 설계 역시 특징이다. 원래 있던 오솔길을 그대로 살려 건물 역시 '꼬불꼬불한' 형태로 건축했고, 옥상 산책로는 외부 산책로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설계자는 독일의 유명 생태 건축가인 게르노트 발렌틴.

김혜경 풀무원 부사장(로하스 아카데미 본부장)은 "제발 이 건물이 자연을 치고 들어오는 형태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강조했었다"며 "덕분에 헬기로 상공에서 촬영해도 건물이 잘 안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곳이 '로하스 아카데미'임을 실감케 만드는 건 이와 같은 '대단한 건물'때문만은 아니다.

그래도 내 밥이 더 많았다

충북 괴산 로하스 아카데미 '패시브 하우스' 내부 모습. 원래 있던 오솔길을 그대로 살려 건물 역시 '꼬불꼬불한' 형태로 건축됐다고 한다
 충북 괴산 로하스 아카데미 '패시브 하우스' 내부 모습. 원래 있던 오솔길을 그대로 살려 건물 역시 '꼬불꼬불한' 형태로 건축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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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종이 타월 때문에 낭비하는 자원이 한 해에 얼마나 되는지 알아볼까요? 돈으로 환산하면 210억원을 없애는 것이고, 어린 소나무 7만 9895 그루를 베어내는 셈이며 CO2를 자그마치 222톤이나 배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축구장 42개 크기의 숲을 사라지게 하는 엄청난 반환경적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로하스 아카데미에는 '물론' 종이 타월이 없다. '잔디 출입 금지' 대신 선택한 '치료중인 잔디입니다'란 팻말 문구나 공기 정화력이 좋은 식물들을 소개하는 조경 방식 또 자연스럽게 방문객 발길이 트래킹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 '동선' 등 '소소한 일상들'이 곳곳에서 로하스 아카데미에 와 있음을 환기시킨다. 밥상 또한 당연히 그러하다.

"로하스 식생활 실천의 시작은 건강을 생각하며 먹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식사방법을 실천합니다. 나에게 맞는 식사량 알기. 식사의 시작은 단백질 음식부터 채소류. 밥, 국, 김치로 식사 마무리. 싱겁게 먹기. 천천히 먹기(30분 이상)."

어디서 한 번 쯤 들었음직한 말들이지만, 식탁 뿐 아니라 식당 곳곳에 붙어 있는 이와 같은 '밥상머리 교육'은 '자제'를 일으키기 충분하다. 덕분에 '주눅'이 들어 나름 밥과 반찬을 조금 펐는데...식탁에 앉아 직원들의 그것과 비교하니 '그래도 내 밥이 더 많았다'. 풀무원 직원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우제혁 로하스 아카데미 본부 부장은 "여기에서 근무하면서 살도 빠지고 건강해졌다"며 웃었다.

다시 떠오른 강의 메모 "자기만 바르게 행복하게 살아도..."

충북 괴산 로하스 아카데미 부속동 모습. 80년대부터 풀무원 역사를 함께 한 단풍나무들이라고 한다
 충북 괴산 로하스 아카데미 부속동 모습. 80년대부터 풀무원 역사를 함께 한 단풍나무들이라고 한다
ⓒ 풀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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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스 아카데미 교육을 관통하는 것은 한 마디로 '좋은 습관'이다. 바르게 먹는 방법부터 청소나 정리 정돈 등 생활 습관 교육이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사무직 노동자들을 위한 '자세 교육'이나 감정 노동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트레스 관리 교육' 역시 '어떻게 살아야 내 몸에 좋고 가족과 이웃 그리고 자연에게도 좋은가'란 질문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특히 풀무원 직원이라면 이런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고 한다. 대형마트 판촉직 사원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또는 급식사업 현장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직원의 '범위' 또한 넓다. 우제혁 부장은 "본인이 좋은 삶의 가치를 깨달아야 소비자에게도 전달이 가능한 것 아니냐"면서 "일종의 정신 무장"이라고 표현했다. 이 곳은 풀무원의 브랜드 가치를 인큐베이팅하는 '사관학교'도 되는 셈이다.

1981년 서울 압구정동에 '풀무원 농장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이란 이름의 채소 가게가 문을 열었다. 그렇게 풀무원 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작물을 상품화한 가게는 이제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하는 로하스를 미션으로 표방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언뜻 거대해 보이는 이 말, 로하스 아카데미를 둘러보며 단순해졌다. 한 마디로 '잘 살자'는 것이었다.

잘 사는 어른이 많아질수록 어린이나 청소년이 행복해질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하지만 이 당연한 귀결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낯설다. '잘 산다'는 기준이 '물질'에 종속돼 있는 어른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아까 원경선 기념관에서 봤던 강의 메모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자기만 바르게 행복하게 살아도 절대적인 행복은 없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절대적인 행복."

덧붙이는 글 | 김혜경 풀무원 부사장(로하스 아카데미 본부장)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태그:#풀무원, #로하스, #원경선, #CSR, #패시브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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