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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2009년 5월 2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행렬이 서울역으로 향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운구차를 향해 추모의 뜻으로 노란 손수건과 종이비행기를 던지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2009년 5월 2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행렬이 서울역으로 향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운구차를 향해 추모의 뜻으로 노란 손수건과 종이비행기를 던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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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그날이 찾아왔습니다. 당신과 헤어진 지 어언 5년 째. 그럼에도 당신 사진만 보면 아직도 울컥합니다. 살아 계실 때는 간혹 이해가 되지 않는 당신의 정책에 거품도 물어보았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당신을 보내고 나니 그 모든 게 안타까움이 되어 돌아오네요.

올해에는 특히 많은 이들이 유난히 당신을 더 떠올리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곳에서 보셨겠지만 지난 4월 16일 당신이 그리도 아끼던 국민들이 아무 이유 없이, 어처구니없게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 과연 국가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들 정도로 형편없는 그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만약에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달랐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그곳에 있었으면 뭐가 달라졌겠냐고.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맞다"고. 아마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사고는 일어났을 것이라고. 그건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사회를 이렇게 만든, 아니 돈이면 다 되도록 사회를 방치해온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그러나 뒤이어 말씀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최소한 침몰 이후 과정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요즘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의 돌발영상처럼, 당신은 국가의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의 모든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고 할 것이며, 언론으로 장난치지 않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 모든 비판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었을 것이니까요.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됩니다

국민을 섬길 줄 안다는 거
▲ 고개 숙여 인사하는 대통령 국민을 섬길 줄 안다는 거
ⓒ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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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을 보면서 당신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당신의 눈물이 그리웠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위해 국민과 함께 눈물을 흘릴 줄 알았던 당신.

제가 사회에 나와서 들었던, 인생에 도움 되는 몇 가지 조언 중에 '경조사 중에 경사는 못 가더라도, 조사는 꼭 가야 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될 뿐이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번 세월호 참사는 함께 흘리는 눈물이 필요한 사고였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같이 슬퍼하고 통탄할 수밖에 없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작금의 높으신 분들은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이었다면 이미 펑펑 울어 눈이 퉁퉁 부었을 텐데 현 정부의 인사들은 울기는커녕 팽목항이나 진도 체육관에서도 실종자 가족이나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진정성만 있었다면 손만 잡아주어도, 눈빛만 오고갔어도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텐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것은 구조를 할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와 같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남이 슬프면 나도 슬플 수 있는 그런 공감 능력. 이는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함께 희로애락을 겪어봐야 형성될 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분들의 공감 능력은 이미 거세당한 지 오래입니다. 1%의 입장에서 99%의 삶을 말로만 읊조리다 보니 그들은 남을 위해 슬퍼할 줄 모릅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 왔고,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친일파 청산, 민간인 학살, 5·18민주화운동 등 잘못된 역사에 둔감한 이유 역시 같습니다. 그들의 어이없는 공감능력은 시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뭐든 다 해봐서 다 안다고 했던가요? 문제는 그래서 그가 다른 이들의 상황을 공감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가 사랑해야 할 국민들은 그와 달리 자주 실패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대국민 담화 도중 흘리신 눈물까지 폄훼할 생각은 없습니다. 기존 관례까지 깨가며 클로즈업 된 박 대통령의 눈물 또한 그분의 진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진도에 처음 찾아갔을 때는 왜 그 눈물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며 진심으로 위로하지 못했는지, 왜 조작이라는 의심을 감수하면서까지 유가족이 아닌 이와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아직까지도 수많은 유가족들의 피맺힌 절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통제하려고만 하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무릇 대통령이란 국민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대책마련도 중요하고, 인사쇄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국민들과 함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감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이었다면 울고 있는 우리를 안아주시며 위로했을 텐데, 당신이었다면 기꺼이 우리와 함께 이 잘못된 세태를 바꿔보자고 분노하셨을 텐데. 도대체 작금의 정치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요? 국민들의 이 끝없는 슬픔과 분노를 알기는 하는 걸까요?

기꺼이 국민은 섬겼던 당신, 그립습니다

당신이 어느새 가신 지 5년입니다
▲ 추모 5주기 당신이 어느새 가신 지 5년입니다
ⓒ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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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리운 또 다른 이유는 이 정부에서는 아직 당신만큼 높은 위치에서 기꺼이 국민을 섬기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위정자들이 국민을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말로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국민이란 정치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일 뿐이며, 조작된 사실을 진실로 인식하는 우매한 군중들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찌 진도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는커녕 가족들의 억울한 발걸음을 경찰 장벽으로 막고, 사복경찰들을 보내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동태를 살필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와중에 기념사진을 찍고, 라면을 먹고, 사이비 유족을 분별하겠노라고 공언하고, 심지어는 그런 국민들을 미개하다고까지 발언하는 그들이야 그렇다고 치겠습니다.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들은 단지 본인이 잘나서 그 자리에 올라갔다고 생각하는 만큼 안하무인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대통령은 다릅니다. 어쨌든 민의를 모아 그 자리까지 올라갔다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신을 뽑았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 가족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동들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것이 공복으로서, 국민의 대표로서 해야 할 책무이니까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않았습니다. 주의시키지 못했다면 최소한 죄송하다고 그에 대해 사과라도 했어야 하는데 무시했습니다.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자이툰 부대 방문 후
▲ 대통령의 눈물 자이툰 부대 방문 후
ⓒ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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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직후 진도 체육관에서 단상에 서 있는 대통령에게 무릎 꿇고 아이들을 살려달라는 절규하던 부모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창백한 얼굴로 뻣뻣하게 서서 귀를 기울이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항상 국민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던 당신의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한 치의 가식 없이 기쁜 마음 그대로, 슬픈 마음 그대로 국민들에게 다가갔던 당신의 모습. 지금 대통령에게 그와 같은 모습을 기대한다면 과한 걸까요.

참담했던 4월이 가고 역시나 또 비통한 5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날씨는 어느 때보다 화창하고 눈부시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당신이 가셨던 때만큼이나 아프고 괴롭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꽤 오랫동안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계절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듯싶습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죄스럽고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부디 당신께서는 그곳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분들을 위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살아남은 자들은 당신이 이야기했던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 이 땅에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마음 추슬러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노짱. 그립습니다.


태그:#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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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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