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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 범종을 나르기 위해 도착하고 있는 헬기. 국내 민간항공 헬기 중 최대 용량이라고 했습니다.
 법계사 범종을 나르기 위해 도착하고 있는 헬기. 국내 민간항공 헬기 중 최대 용량이라고 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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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080관 범종이 지리산 법계사로 올라간 까닭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맛난 나물반찬으로 밥 먹고, 좋은 물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행복감을 한 끼라도 더 느끼고 싶어 점심까지 챙겨먹고 범종이 도착해 있을 지리산 아랫마을 중산리를 향해 하산을 서두릅니다. 흐르는 물처럼 내려 걷고, 구비치는 산세처럼 내려디디며 중산리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성큼성큼 내려 걸었습니다.

당연한 거지만, 같은 길 같은 계곡이건만 올라갈 때보다 내려오는 길이 힘도 훨씬 덜 들고, 걸리는 시간도 훨씬 짧게 걸렸습니다. 몸이 가벼워지니 주변을 둘러보는 눈길 또한 가벼워지고 넓어집니다.

낡고 해져서 솔 터진 저고리 입고 있던 법계사 주지 관해 스님

16일 아침에 우연히 보게 된 관해 스님의 해진 윗저고리가 연둣빛 산색에 겹쳐 중얼 거리듯 아른 거립니다. 아침에 종무소엘 들렸다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관해 스님 뒤쪽에 서 계시던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주지 스님, 윗저고리 터졌네요"하며 저고리 등 쪽 솔이 터져 있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관해 스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등 쪽으로 돌려 더듬으시며 "오래돼 삭아서 그런지 자꾸 해져서 그려"하셨습니다.

법계사 주지 관해 스님은 낡고 삭아서 솔이 헤진 저고리를 입고 있었습니다.
 법계사 주지 관해 스님은 낡고 삭아서 솔이 헤진 저고리를 입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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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스님께서 입고 계신 바지저고리가 많이 낡아 보였습니다. 누덕누덕 기운 곳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옷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오래되고 낡았다는 게 물씬했습니다.

값비싼 옷만을 입고 다녀 불자들 사이에서 '명품 스님'으로 회자되며 희롱되고 있는 스님이 없지 않은 현실을 감안할 때,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출가수행자의 참모습, 갈아입을 옷 한 벌 정도만을 소유하고 있는 검소한 구도자의 모습을 아주 오랜만에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스님 중에서 시주물을 막 쓰라고 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말로는 시주물을 아끼라고 하면서 정작 당신을 위한 씀씀이에는 통이 커 과다지출을 하거나 허비를 하는 스님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관해 스님께서는 이렇듯 일상적으로 입는 바지저고리조차 낡아서 해질 만큼 절약하고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산새 소리가 들려오면 콧노래로 대답을 하고, 물소리 바람 소리가 들려오면 휘파람 소리로 추임새 넣어가며 성큼성큼 내려걷다 보니 어느새 지리산 아랫마을 중산리 야영장입니다. 

단 1그램의 무게라도 더 줄여라

자동차는커녕 맨몸뚱이로 올라가는 것도 녹록하지 않은 법계사 가는 길. 산(山)사람이 아니면 한두 번쯤은 쉬어야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는 법계사까지 1080관(4050Kg)이나 되는 무거운 범종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은 헬기를 이용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범종 전문 제작업체인 진천 '성종사'에서 만들어진 범종은 이미 화물트럭을 이용해 해발 410m쯤 되는 중산리 야영장 공터까지 운반돼 왔습니다. 중산리 야영장에서 법계사까지는 국내 민간항공 중 최대용량을 운반할 수 있는 헬기를 보유하고 있는 항공사와 일찌감치 예약이 돼 있었습니다. 

야영장에 도착해 있는 범종은 부직포를 몇 겹씩이나 둘러 단단히 포장돼 있었습니다. 범종을 헬기에 매달아 줄 쇠사슬도 연결됐습니다. 오후 3시 30분이 조금 넘으니 하늘 저쪽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헬기가 불쑥 나타납니다. 헬기는 야영장으로 내리지 않고 먼저 천왕봉 쪽으로 날아가 범종을 내려놓을 자리를 미리 정찰한 후에야 다시 야영장으로 내려와 착륙했습니다. 헬기는 주차의 달인들이 보여주는 주차 묘기만큼이나 아주 능숙하게 범종 옆으로 사뿐하게 착륙했지만 몰고 다니는 바람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부직포를 몇 겹이나 둘러 꼭꼭 싸맨 범종
 부직포를 몇 겹이나 둘러 꼭꼭 싸맨 범종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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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을 실어 나르기 위해 도착한 헬기
 범종을 실어 나르기 위해 도착한 헬기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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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그램의 무게도 줄이기 위해 헬기를 비우고 있습니다.
 단 1그램의 무게도 줄이기 위해 헬기를 비우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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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를 줄이기 위해 헬기에서 던 물건들이 수북합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헬기에서 던 물건들이 수북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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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를 최소화 하기 위해 딱 필요한 양만을 주입하고 있는 헬기.
 무게를 최소화 하기 위해 딱 필요한 양만을 주입하고 있는 헬기.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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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떨어져 구경을 하고 계시던 할아버지들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눈은 반쯤 감기고, 머리카락은 물론 주름살조차 바람에 누운 갈대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생소한 경험이 재미있으신지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정착한 헬기에서 의자 같은 부속물들은 물론 별로 무게가 나가지 않을 것 같은 서류뭉치조차도 몽땅 내려놓았습니다. 범종 무게가 헬기가 운반할 수 있는 최대 중량에 가깝기 때문에 단 1그램이라도 덜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기름도 범종을 운반하는 데 소요되는 최소한의 양만을 넣고, 비행 후 다시 돌아와 보충하는 방식으로 무게를 최소화 시킨다고 했습니다.

둘레둘레 범종을 포장한 부직포도 풀었습니다. 부직포 안쪽으로 두른 뽁뽁이, 몇 그램 정도밖에 나가지 않을 비닐 포장지조차 홀랑 다 벗겨냈습니다. 구릿빛 범종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법계사에서 견본 모형으로 봤던 것보다 문양 하나하나가 훨씬 더 섬세했습니다. 저 육중한 범종이 하늘 길을 걸어 법계사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집니다.

종이 한 장의 무게까지 덜어내고,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체크하고 확인한 기장이 헬기로 올라갑니다. 기장이 엔진을 가동시키니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고, 프로펠러가 회전 속도를 더해가니 몸을 지탱하기 힘들 만큼 거센 바람이 일며 헬기가 움찔움찔 일어납니다.

1080관 무게의 범종, 헬기에 매달려 축지법 쓰듯 천왕봉 쪽으로

헬기에서 내린 와이어 로프와 범종을 매달고 있는 줄이 연결되고, 느슨하게 늘어져 있던 줄이 일직선을 이루며 팽팽하게 당겨집니다. 그러더니 땅바닥에 있던 그 육중한 범종이 조금 들렸습니다. 기장은 조심스러웠지만 능수능란했습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포장지를 모두 벗겨낸 범종
 무게를 줄이기 위해 포장지를 모두 벗겨낸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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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 범종 표면에 양각돼 있는 지리산 산신할머니 상
 법계사 범종 표면에 양각돼 있는 지리산 산신할머니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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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종소리보다도 더 큰 울림을 일으킬 발원문
 어쩌면 종소리보다도 더 큰 울림을 일으킬 발원문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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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을 매단 헬기가 살짝 떠오르는가 싶더니 팽팽했던 줄이 조금 느슨해질 만큼 다시 고도를 살짝 낮췄습니다. 헬기로 운반을 하는 데 범종 무게가 실질적으로 무리가 되는지 않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부양력 시험을 하는 듯했습니다.

별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 듯 헬기가 떠오릅니다.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땅바닥을 박차고 떠오른 헬기는 돋움닫기를 하듯이 선회비행을 하며 부양력을 충분히 키운 후에야 법계사로 가는 길, 천왕봉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가듯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며 법계사로 올라간 헬기는 1080관 무게의 범종을 범종각 옆에 사뿐히 내려놓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습니다. 법계사 범종은 그렇게 헬기가 일으키는 바람을 타고 지리산 허공을 훠이훠이 날아 법계사까지 올라갔습니다.

6월 10일, 기쁨은 보태고 슬픔은 나눌 수 있는 타종식 봉행

산길에 피어 있는 노란 야생화조차 그냥 허허롭게 봐 넘기지 못하고 아픈 의미를 둬야 할 만큼 탈도 많고 걱정도 많은 세상입니다. 모두가 함께할 때, 슬픔은 나누게 되고 기쁨은 배가 된다고 합니다.

1080관이나 되는 범종을 살짝 들어올렸습니다.
 1080관이나 되는 범종을 살짝 들어올렸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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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져 구경을 하시던 할아버지 두 분이 헬기가 일으키는 바람에 날아 갈듯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구경을 하시던 할아버지 두 분이 헬기가 일으키는 바람에 날아 갈듯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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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들도 헬기가 일으키는 바람에 몸을 눕혔습니다.
 들풀들도 헬기가 일으키는 바람에 몸을 눕혔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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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는 돋움닫기를 하듯 선회비행을 한 후 고도를 높인 후 천왕봉 쪽으로 비행을 하였습니다.
 헬기는 돋움닫기를 하듯 선회비행을 한 후 고도를 높인 후 천왕봉 쪽으로 비행을 하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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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을 싣고 천왕봉을 향해 비행하고 있는 헬기. 멀리 보이는 산이 천왕봉입니다.
 범종을 싣고 천왕봉을 향해 비행하고 있는 헬기. 멀리 보이는 산이 천왕봉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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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는 드디어 천왕봉 높이까지 고도를 높였습니다.
 헬기는 드디어 천왕봉 높이까지 고도를 높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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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10일, 법계사에서는 이번에 올라간 범종을 타종하는 타종식을 한다고 합니다. 6월 10일이라는 날짜에 1987년 6월이 언뜻 떠올랐습니다. 타종식 날짜를 6월 10일로 잡은 게 혹시 6·10과 어떤 상관이 있거나 의미를 둔 것은 아닌지를 관해 스님에게 여쭸습니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날짜가 잡혔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의도된 의미보다 우연히 맞닥뜨리는 의미가 더 크고 진중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참석해 보십시오. 참석자 모두에게 범종을 칠 기회도 줄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제일 높은 곳에서 장엄한 울림으로 퍼질 범종을 쳐보는 기회가 누구누구의 인생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주어지는 가슴 벅찬 추억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좋을 겁니다. 천왕봉이 조금 버거워 할 만큼 많은 사람이 와도 지리산은 다 품어줄 것입니다. 우리나라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범종을 직접 타종하는 경험은 두고두고 우려도 마르지 않을 가슴 벅찬 감동, 딱 한 번뿐인 기회, 환호와 기쁨이 가슴 울렁거리도록 넘실대는 행복한 경험이 될 게 분명합니다.

지리산 정기와 천왕봉에 세워져 있는 표지석이 연상되는 용뉴와 음통
 지리산 정기와 천왕봉에 세워져 있는 표지석이 연상되는 용뉴와 음통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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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범종들과는 달리 법계사 범종 표면에는 법계사 3층석탑이 양각돼 있었습니다.
 여느 범종들과는 달리 법계사 범종 표면에는 법계사 3층석탑이 양각돼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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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산색으로 고단해진 마음 쓰다듬고, 졸졸거리며 흐르는 계곡물에 마음 저릿한 슬픔 씻으며 천천히 걸으면 누구라도 오를 수 있습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은 솔솔 불어오는 산바람이 식혀줄 거니, 심드렁해진 일상 바윗길에 거르며 서두르지 말고 타박타박 올라가 보십시오.

까닭도 모르게 골병처럼 찾아 든 아픔, 이유도 설명할 수 없는 설움에 지친 심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치유되는 걸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혼자여도 좋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며 걷다보면 저절로 도착하게 되니 좋고 좋을 겁니다.

무게가 1080관이나 되는 범종이 지리산 법계사로 올라간 까닭은, 십방삼세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정령들에게 범종이 품고 있는 의미를 골고루 나누어주기 위함입니다. 또 법계사 범종이 지리산을 품고, 법계사 범종 소리가 천왕봉에서 지르는 야호 소리를 닮은 것은, 지리산이 법계사를 품고, 천왕봉에서 발원한 정기가 법계사 범종소리에 실려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을 설법하는 커다란 울림이 되어 산산골골로 흘러 널리 퍼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987년 6월 10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려오던 그 함성과 열기가 민주화로 피어났듯, 오는 6월 10일, 한국인의 정기가 발원하는 천왕봉 직하에서 울릴 법계사 범종소리로 대한민국 국운이 융성하고 모두의 가정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헬기를 능수능란하게 운항하던 (주)에어로 피스 수석기장 김용기님.
 헬기를 능수능란하게 운항하던 (주)에어로 피스 수석기장 김용기님.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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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법계사 가는 길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IC-지리산 중산리(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619-12) 주차장에 주차 - 주차장서부터 칼바위쪽으로 보행을 시작하거나, 지정 시간에 운행하는 법계사 버스를 이용해 ‘경상남도 환경교육원’까지 올라간 후 교육원서부터 보행(약 1시간 30분 소요). 자세한 사항은 법계사(055-973-1450)로 연락하시면 안내 받을 수 있습니다.



태그:#지리산, #법계사, #천왕봉, #범종, #타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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