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교 주변 관광호텔 건축에 대한 규제개혁안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규제정보포털 토론방.
 학교 주변 관광호텔 건축에 대한 규제개혁안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규제정보포털 토론방.
ⓒ 규제정보포털

관련사진보기


"뭐라고? 학교에서 50m 거리에 호텔을 짓겠다고?"
"응. 지금은 학교 200m 거리부터 숙박업소를 짓는 걸로 되어 있는데 그 규정을 50m로 완화하겠대."
"엄마! 50m면 진짜 가까워 그게 말이 돼?"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학교에서 200m 안쪽에 숙박업소를 못 짓게 하는 규제를 50m안에 호텔을 못 짓게 하는 것으로 바꾸려 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아이는 도리어 현재 규정도 너무 약하다며 강화해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나서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규제개혁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 이유는 세월호 참사의 한 원인으로 여객선의 선령을 완화한 규제개혁이 꼽혔기 때문이다. 여객선의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만 하지 않았어도 선령 18년인 세월호를 들여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번 참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이유로 적어도 당분간은 정부가 섣불리 규제는 '암덩어리'라며 소리를 높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지금 정부가 가장 먼저 고치려는 규제는 학교 근처 숙박업소 설립에 관한 규정이다. 현 규정은 다음과 같다.

'학교보건법'에 따라 학교 경계선으로부터 200m 이내(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서는 '호텔, 여관, 여인숙' 시설을 원칙적으로 할 수 없으며,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를 거쳐 인정하는 시설에 한하여 허용
- '규제정보포털' 홈페이지

정부는 규제개혁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인터넷 토론방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규제정보포털' 홈페이지다. 이 사이트에는 현재의 규제 내용과 완화하려는 정부 부처의 안이 올라와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엔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의견이 붙어 있다.

"엄마! 50m면 진짜 가까워 그게 말이 돼?"

정부에서 규제개혁을 주장하는 근거는 외국 관광객 수 증가에 비해 객실 수 증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외국 관광객들의 수는 2배 이상 증가하였지만 같은 기간 숙박시설의 객실 수는 1.4배에 증가하는 데 그쳐서 외국 관광객들이 머물 숙소가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규정 때문에 2010년부터 2013년 12월까지 설립되지 못한 호텔은 서울에는 76건, 그리고 전국에는 91건이란다. 한국에 그 하고많은 땅 중에 굳이 학교 담장 200m 안에 호텔을 비집고 지으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호텔을 더 이상 못 짓는 것도 아니고 학교 담장에서 200m 떨어진 거리에 호텔을 지으면 될 거 아닐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그런데 정부는 이 규제를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 걸까?

정부 부처의 개선안은 두 가지이다. 교육부안과 문화체육관광부안. 규제정보포털에 올라 있는 개선안은 다음과 같다.

교육부 : 관광호텔에 대한 유해인식이 개선됨에 따라 유해시설(유흥업소 등)이 없고 일정규모(객실 100실) 이상 등 일정 요건을 갖춘 관광호텔에 대한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운영방식 개선
* 심의 시 사업자에게 설명기회 부여, 주요 고려사항 제시, 심의결과 통보시 주요결정 사유포함 등

문화체육관광부 : 유해시설이 없는 호텔에 한해, 별도 심의 없이 학교 인근 설치 허용
* 교육환경보호 강화 의견을 반영하여 학교로부터 50m 밖에 위치하고, 객실이 100실 이상인 호텔에 한해 규제완화 적용
- '규제정보포털' 홈페이지

교육부안은 유해시설이 없는 호텔의 경우에는 심의기구인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운영방식을 개선하여 사업자에게 설명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거다. 교육부안이라서 그런지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사업자가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말할 기회를 주는 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안은 변화가 꽤 많다. 일단 설치할 수 없는 장소가 학교에서 200m에서 50m로 대폭 줄어든다. 그런데 진짜로 문화체육부의 개선안대로 학교 담장 50m 이상부터 객실 100개 이상의 호텔이 들어설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맨눈으로 객실 창문 보이는 거리... 학생 생각은 안 하나?

예전에 고등학교 때 일이 생각이 난다. 그때 난 여자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무척 더운 여름날이었다. 자율학습을 하는데 너무 더워 몇몇 아이들이 복도 창가 쪽에 책상을 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복도에서 공부하던 아이가 교실 앞문으로 뛰어들어왔다. 앞쪽에 앉은 아이들과 쑥덕거리더니 교실 안 아이 네다섯이 복도로 뛰어 나가고 복도에서 비명이 들렸다. 다른 아이들도 복도로 뛰어 나갔다.

나도 뭔 일인가 뛰어 나갔더니 어느 집 옥상에서 남녀가 키스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순식간에 학교 복도는 키스를 구경하는 아이들로 난리가 났다. 환호성을 지르고 위층과 아래층 교실에 구경거리를 알려주려 뛰어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많은 여학생들의 환호를 눈치챈 남녀는 쑥스러워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비명 소리를 들은 선생님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조용하라고 고함을 친 덕분에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호기심 많은 청소년기 아이들 학교 코앞에 호텔을 세우면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까?

심하면 학교 건물과 호텔이 50m 조금 넘는 거리로 들어설 수도 있다. 그 정도 거리면 맨눈으로 객실 안이 들여다 보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밤이면 실내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고등학생들의 눈에 호텔 객실 안까지 훤히 다 보이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학교 가까이에 객실 100개 규모의 호텔이 들어서게 된다면 호텔의 부지는 대로변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대로변 호텔을 지나서 매일 등하교를 해야 하는 학생들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유흥시설이 없는 호텔이라 하더라도 손님들이 그 호텔을 성매매 장소로 사용하는 것을 호텔이 막을 수는 없다.

이런 장소를 아이들이 매일 지나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장소를 교실에서 창문을 통해 아무 때나 볼 수 있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번 규제개혁은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저해하고 학습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높다. 사업보다는 아이들이 먼저다. 규제개혁 아니 규제개악 하지 말길 바란다.


태그:#규제 개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