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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의 막내 아들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 대해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 정몽준 "아들 발언에 사죄, 잘 못 가르친 탓"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의 막내 아들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 대해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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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했고 진심 어린 듯 보였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사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 후보의 막내아들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생사불명의 자식들을 구해달라며 오열하던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미개하다'고 조롱했다. 덕분에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같이 울던 국민들도 졸지에 미개한 국민이 됐다.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논란이 일자 정몽준 예비후보는 21일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불찰"이라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실한 대응으로 가뜩이나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식의 망언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으리라.

사건은 잠잠해졌다. 정몽준 예비후보 외에도 국민적 슬픔과 분노에 기름을 부어대는 정치인들의 망동과 망언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체육관에서 의료용품을 치우고 팔걸이 있는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은 교육부 장관이나, "계란 넣은 것도 아니"니 괜찮다는 취지로 그를 감싼 청와대 대변인까지. 정 예비후보의 진심 어린 사과가 여론을 잠재웠다기보다는, 슬퍼하고 분노하느라 국민들이 지쳐버렸다.

아들의 망언 사과하던 날, 울산 현대중공업에서는...

정몽준 예비후보가 국회 정론관에서 자식의 망언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던 지난 21일, 그가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에서는 또 다른 비극이 벌어졌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5도크에서 건조 중이던 LPG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육중한 선체 위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라 매캐한 냄새와 함께 방어진 하늘 덮었다. 선박건조장이 있는 울산시 동구 전하동의 주민들이 놀라서 경찰에 신고할 정도였다.

화재현장에서 용접 작업 중이던 이아무개(38)씨가 전신에 화상을 입고 울산대병원으로 긴급하게 이송되었으나 숨졌다. 화물창 바닥에서는 김아무개(40)씨가 질식하여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또 다른 김아무개(58)씨와 박아무개(34)씨는 불길을 피해 탈출하다 큰 부상을 입었다. 이들은 모두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이 사건은 국민들의 시선이 세월호에 주목된 탓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사건 하루 뒤인 22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번 선박 화재 사고에 대해 "정몽준 예비후보가 국민 앞에 사과하고 그룹 차원의 근본적 산재사망 예방대책을 수립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왜 정몽준 예비후보한테 사과를 요구하냐고?

억울할지도 모른다. 현대중공업의 주식을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책임이 없는 자신에게 향하는 사과 요구가 야속할 수도 있다. 어쩌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현실을 모르는 '미개한' 발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정 예비후보는 1982년에 현대중공업의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뒤 1987년 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 그는 현대중공업의 회장직과 고문직에서 물러났다. 정치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주식이었다. 정 예비후보는 2001년 6월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가 됐다. 금융분석업체인 '와이즈에프엔(WISEfn)'에 따르면 정 예비후보는 현대중공업 주식 약 770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미포조선 등 계열사 주식을 합하면 지분율이 21.31%에 이른다. 현대중공업은 2013년 3분기까지 누적매출액 약 360억 달러를 기록했다. 매출액 기준으로 조선업계 세계 1위였다.

지난 21일 오후 4시께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건조중인 선박에서 발생한 화재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4시께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건조중인 선박에서 발생한 화재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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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예비후보가 배당받은 150억 원, 누가 벌어온 돈인가

조선업계 매출액 세계 1위로 현대중공업을 끌어올린 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노력이었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 수의 1.5배 가까이 되는 4만 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현대중공업의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들은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을 하면서 더 적은 월급을 받고 차별에 고통받았다. 

지난 1년간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자 6명과 부상자 4명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재해경위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작업안전 지휘자와 유도자 없이 야간에 단독으로 크레인에 철판을 옮기다 깔려 사망했다. 안전을 위해 만들어놓은 족장(난간과 같은 발받침)이 무너져 바다에 빠져 사망하기도 했다.

수십 미터 깊이의 아찔한 바다는 언제나 그들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데, 그들을 보호해줄 추락방지망은 없었다. 노조는 회사 측이 자체 잠수부를 동원하여 구하겠다며 119 신고를 미룬 것도 비정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조선업계 매출 세계 1위의 성과는 현대중공업과 대주주 정 예비후보가 독차지했다. 지난해 6월 17만 원이던 주가가 20만 원으로 급등했다. 정 예비후보는 지분율을 바탕으로 지난 2월 150억 원이 넘는 배당금을 받았다.

사내하청업체 기업주들은 산재발생율을 줄이려는 현대중공업의 눈치를 보며, 다친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산재신청을 하지 말 것을 강요했다. 때문에 지난해 현대중공업의 재해율은 0.66로 조선업 평균 재해율 0.69보다 낮았다.

그 덕분에 현대중공업은 2009년부터 산재보험료를 768억 원이나 감면받았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10월 보도자료를 통해 "사내하청 재해율을 감안한 현대중공업 전체의 환산재해율은 0.95로, 1000대 건설업체 환산재해율 0.43보다 2배 이상 높았다"고 비판했다.

이윤을 위해 희생된 그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도리'

현대중공업은 정 예비후보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다. 아버지 정주영 '왕회장'으로부터 물려받아 20여 년을 넘게 경영하며 기업가의 명성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 울산 시민들은 정 예비후보가 현대중공업을 통해 지역의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활성화에 이바지한 점을 들어 그를 6번이나 국회의원으로 선출했다.

이제 정 예비후보는 인구 1000만의 대한민국 최대 도시 서울의 행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사서삼경의 대학(大學)편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나온다. 먼저 자기 몸을 바르게 가다듬은 후 가정을 돌보고, 그 후 나라를 다스리며, 그런 다음 천하를 경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 예비후보가 몸담았고 여전히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이다. 이제는 장남 정기선씨에게 3세 경영을 준비시키는 것이 이니냐는 전망(경영전문지 <엑설런스코리아>)이 나올 만큼 '정몽준' 하면 '현대중공업'이라는 인식은 국민들에게 일반적이다.

정 예비후보는 현대중공업에서 150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지난 1년 동안 10여 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거나 크게 다쳤다. 낮은 월급을 받으면서 더 큰 위험에 노출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1974년 창사 이래로 셈하면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300명에 이른다.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는 무게를 생각하면 결코 세월호 사고의 사망자들보다 그들의 죽음이 가벼울 수 없다. 서울시장이라는 공적 책무를 짊어지고자 한다면 법적인 책임을 떠나 이윤을 위해 희생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태그:#정몽준, #현대중공업,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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