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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일주일째인 22일 오후 경기 안산 단원고를 방문한 추모객이 눈을 감고 있다.
▲ 슬픔에 잠긴 추모객 세월호 침몰사고 일주일째인 22일 오후 경기 안산 단원고를 방문한 추모객이 눈을 감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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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174명의 소중한 목숨을 구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최초 신고자 단원고 학생 최아무개(17)군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 특히 최군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최초의 구조선에 기관부 선원 7명만 먼저 탑승한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실을 처음 알렸던 학생은 주검으로 돌아온 반면, 승객들을 대피시켜야 할 승무원들은 이 학생의 전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양경찰청 경비정으로 가장 먼저 탈출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살려주세요" 단원고생 신고로 출동한 해경 구조선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24일 전남 진도 팽목항 임시 안치소에서 신분확인 절차를 밟고 있는 학생 사망자 중 한 명이 최초 신고자인 단원고 2학년 6반 학생 최군으로 추정된다. 최군의 시신은 전날(23일) 세월호 4층 선미 부분에서 구조팀에 의해 발견됐다.

해경은 "최군의 부모가 시신 인상착의를 확인한 결과 아들 시신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지문, DNA 검사, 치아 등 정확한 신분확인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아직은 추정 단계"라고 설명했다.

최군은 지난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살려주세요.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라고 첫 신고전화를 걸었다. 세월호에서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조난 신고보다 3분이나 빨랐다.

그러나 최군이 전화를 해 신고 접수를 마칠 때까지 4분 25초나 걸렸다. 전남소방본부로부터 전화를 넘겨받은 목포해경은 선원도 아닌 학생을 붙잡고 일반인도 알기 어려운 'GPS 경위도' 등 배의 위치를 물어봤다. (관련기사 : "살려주세요" 최초 신고 학생에 "위도�경도 말하라" 다그친 해경)

해경상황실은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에 배 이름만 입력하면 위치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해경은 배 이름을 물어본 게 아니라 배의 위치나 출발한 항구명을 물어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대처로 인명 구조에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Golden time)을 허무하게 낭비했다.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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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경 경비정이 최군의 신고를 받고 사고해역으로 출발하는 데는 6분여가 걸렸다. 해경상황실이 시간을 허비하면서 최초 신고시간에서 4분 가까이 지난 8시 56분 57초에야 신고접수가 완료됐고, 1분 가량이 더 지난 8시 58분에야 경비정이 출동한 것이다.

당초 해경은 16일 오전 8시55분 세월호와 제주 관제센터(VTS)의 교신이 이뤄진 뒤, 자신들은 오전 8시 58분에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제주 관제센터(VTS) 연락을 받고 해군 경비정이 출동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해경 경비정이 최초 출동한 것은 제주 관제센터(VTS)의 연락이 아니라 침몰하는 배에 있던 최군의 최초 신고 때문이었다. 해경이 제주 관제센터(VTS)로부터 연락을 받고 오전 8시59분에 목포해경에 연락을 했을 때는 이미 최군의 신고에 의해 경비정이 사고 해역으로 출동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 구조선에 기관부원만 탑승... 이후 탑승한 선장도 '오십보 백보'"

문제는 최군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해경 구조선에 최군이나 탑승객이 아니라 세월호 기관장과 기관부원 7명만 먼저 탔다는 것이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23일 "최초의 구조선에 7명의 기관부원만 탔으며 선장은 이 배에 타지 않고 다른 배를 타고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왔다"고 밝혔다.

수사본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세월호 선장·항해사·기관사 등 선박직 승무원들은 선교(브리지)에 모여 있으면서 승객들에게는 "위험하니 객실에 있으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이후 자신들만 아는 통로 등을 이용해 최초로 도착한 경비정을 타고 탈출한 것이다.

기관장은 조타실에서 선박 밖으로 이동하고 기관부원들은 3층으로 옮겨가 최초로 세월호에 접근한 해경 경비정에 올랐다. 가장 먼저 도착한 첫 구조선에 탄 것으로 알려진 선장은 이후 도착한 다른 해경 선박에 의해 구조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수사본부 측은 "선장이 첫 구조선에는 타지 않았지만 이후에 바로 도착한 어선이 아닌 해경배를 타고 나왔으므로 '오십보 백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첫 구조선에 탄 선원이나 다음 구조선에 탄 선장의 직무 회피 강도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선장과 선원 15명이 승객 구호 의무를 저버린 채 해경 구조선을 타고 탈출하는 사이, 승무원들의 목숨을 구한 해경 구조선을 최초로 불렀던 최군은 선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세월호 침몰사고' 9일째인 24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 희생된 학생의 운구차량이 교내를 마지막으로 돌아본 뒤 나오자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불쌍해서 어떡해" '세월호 침몰사고' 9일째인 24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 희생된 학생의 운구차량이 교내를 마지막으로 돌아본 뒤 나오자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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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침몰 사고, #해양경찰청, #최고 신고 학생, #최초 구조선,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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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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