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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대한민국은 '역사전쟁'으로 뜨거웠다. 전쟁의 발단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였다. 문제의 교과서 저자들은 일제 시대를 긍정적으로 기술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들은 일제 식민통치를 역동적인 근대화의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했다. 그 결과 식민사관과 같은 말들이 오가면서 격렬한 역사 논쟁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은 일본의 속국이나 식민지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일제의 식민 통치로부터 벗어난 것은 무려 7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역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제 식민사관의 담론에 빠져 허우적댄다. 그 어느 분야에서보다 강력한 한민족 민족주의에 휩싸여 있는 역사학계에서 왜 이런 일이 되풀되는 것일까.

 

역사학자 이희진은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에서, 우리나라 역사학의 주류를 차지하면서 대학 강단을 장악하고 있는 일제 식민사학 추종자들에게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식민사학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지금까지 역사학의 주류를 꽉 틀어쥐고 있는 세력이 되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저자는 식민사학이 원하는 역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 추종자들이 어떠한 속임수를 쓰고 있는지를 밝힌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 놓은 역사가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영향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따진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한국 고대사학계에 남아 있는 식민사학의 영향을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한다.

 

식민사관, 왜 문제일까?

 

식민사학은 왜 문제인가. 식민사학의 뿌리는 황국사관이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기 이전 일본의 역사서술 목적을 천황지배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것으로 요약한다.

 

일본의 기득권 층은 한국을 식민지배하기 위하여 식민사학을 만들어 내기 훨씬 전에 자기네 백성을 조종하기 위한 역사부터 만들어 낸 셈이다. 그것이 바로 황국사관이다. (38쪽)

 

저자는 일본인의 역사관을 천황에 대한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여느 나라에서와는 달리 역사 인식의 중심에 천황을 놓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기득권층의 특권을 지키고, 주변 민족을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육성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그러한 황국사관에 뿌리를 둔 식민사학이, 역사학계의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를 악용하는 데 핵심적인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저자는 식민사학 추종자들이 식민지배를 위해 역사를 사실과 다르게 조작하는 논리를 별다른 근거도 없이 쫓아간다고 일갈한다. 한반도 지배를 위해 조작된 일본 역사학계의 논리를 근거도 없이, 또는 억지 근거를 만들어 따르기도 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식민사학의 대표적인 계보 두 개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고대사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전형적인 식민사학으로 여겨지는 계파는 말송보화(末松保和)로 대표되는 계열이다. "고대 일본의 대화(大和) 정권이 한반도를 정복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했다."라는 식의 주장을 했던 바로 그 작자이다. ···  말송보화를 필두로 한 계파와 쌍벽을 이루었던 계파의 거두가 바로 진전좌우길(津田左右吉)이었다. 꼴통 계파와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 계파의 특징은 <일본서기>의 사료적 가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 진전좌우길은 천황가에 충성스러운 황국사학자의 하나였을 뿐이다. 충성심이라는 측면은 몰라도 양심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배울 게 없는 것 같다. (44~50쪽)

 

저자는 한국 고대사학계의 기득권층이 이들 식민사학의 계보를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식민사학 추종자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본다. 그들의 아지트는 저자가 '특정 국립대학'으로 돌려 말한 서울대학교(국사학과)다.

 

대한민국 고대사의 기틀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는 바로 그 원로 학자가 그 학교 역사학과의 초창기 멤버였다. 당연히 그는 교수로서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그들이 고대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다. 앞으로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은 연구 성과의 사례를 들 때 대부분이 그 학교 출신들이라는 사실을 예고할 수 있다. (62쪽)

 

저자는 식민사학의 '전통'을 매섭게 비판한다. 식민사학은 투철한 학문적 신념과 소신이 아니라 선생이 알고 있는 찌꺼기 같은 지식에 매달리는 태도가 쌓이고 쌓여 '전통'으로 둔갑해 버린 것일 뿐이다.

 

저자가 보기에 식민사학의 연구 성과에는 무엇보다 치밀한 논리와 근거가 나타나지 않는다. 학풍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일관된 체계 같은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식민사학의 계보라는 것도 그저 선생 눈에 잘 보여 그 바닥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명단일 뿐이라고 조롱한다.

 

대한민국 역사학계, 특히 고대사학계의 식민사학 문제는 식민사학 자체의 논리보다 학계의 구조적 비리와 훨씬 더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런 사정이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 침투해 있는 식민사학의 잔재를 체계적으로 추적해서 청산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73쪽)

 

저자는 우리나라 고대사학계에 퍼져 있는 식민사학의 대표적인 예로, '고대'라고 구분되는 시대에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있던 나라들 중 누가 국제관계를 주도했느냐는 문제를 든다. 저자는 이 문제가 한국과 일본 고대국가의 세력 관계, 나아가 한·일 양국의 고대사를 보는 시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고대 한일관계사와 관련한 식민사학의 논리는 간단하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강력한 대화(大和) 정권이 상대적으로 허약한 한반도 남부의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식이다. 이를 위해 식민사학자들은 왜곡·조작·과장된 <일본서기> 관련 기록을 멋대로 인용하면서, 이를 통일 신라의 저자세 외교의 근거로 제시한다.

 

역사 연구란 기록을 그대로 베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식으로 역사를 연구하려면 역사학자라는 존재 자체가 필요가 없다. 단순히 한문이나 영어 같은 어학 잘하는 사람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굳이 역사학자라는 직업을 따로 만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록이 항상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 뒤에 숨겨진 사실을 찾아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175쪽)

 

저자는 식민사관이 그저 역사를 팔아 자기들 이익에 맞게 많은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짓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학문적 양심이나 신념이 있어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손쉽게 기득권을 얻고 안주하려는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따른다는 얘기다.

 

이렇게 놓고 보니 식민사학의 논리가 왜 이다지도 질기게 오래 살아남았는지, 그 추종자들이 왜 한 입으로는 '민족 정기'니 '독도는 우리 땅'이니 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다른 입으로는 식민사관에 충실한 주장을 펼치는지 감이 잡힌다. 식민사학의 문제를 민족주의적인 차원에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저자도 고대사학계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마지막 3장에서 비교적 자세히 풀어 놓았다. 여기에서 저자는 학술 논문에 대한 학계 내의 편파 심사나 도입 취지가 완전히 사라진 학술지 등급제, 무책임한 관료 조직 등 학계 내부의 구조와 제도·시스템의 문제 등을 하나하나 짚는다. 이에 관한 저자의 결론은 한 마디로 '깡패논리'다.

 

고대사학계에서는 학자라는 사람들 상당수가 학문 자체보다 동문 비호하기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실정이다. 이런 풍조에서는 검증을 강화하겠다는 발언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위선이 될 수밖에 없다. 아직도 황국사관·식민사관에 절어 있는 일본 연구 성과 베끼기가 성행하는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에 있다. (252쪽)

 

어디 고대사학계뿐이겠는가. 대한민국 학계에서 예의 '특정 국립대학교'의 쩌렁쩌렁한 위세가 뻗쳐 있지 않은 분야는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위세가 해당 학문의 건강한 발전과 성장을 위한 것이라면야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문제는 그것이 고대사학계의 경우에서처럼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 고대사학계의 문제가 고대사학계만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 이유다.

 

뜨거웠던 역사전쟁의 포연은 이제는 그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면 아래로 잠겨 들어간 역사전쟁의 포문은 언제든지 부상해 우리 사회를 갈가리 찢어 놓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또 다시 식민사학이 파 놓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야 하나. 비판적이고 양심적인 대중들이 식민사학의 본질과 작동 원리를 제대로 간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이희진 지음 / 책미래 / 2014. 3. 25. / 255쪽 / 14,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

이희진 지음, 책미래(2014)


태그:#<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 #이희진 지음, #책미래, #황국사관, #고대사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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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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