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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검찰의 간첩 조작사건이 점입가경이다. 해당 사건의 공소 유지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현철 부장검사)은 27일 증거로 제출한 문서 3건에 대해 증거 철회 조치를 취했다.

문제의 문건은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에서 발급했다는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34)씨의 출입경기록, 이 기록이 '허룽시에서 발급된 것이 맞다'는 허룽시 공안국의 사실조회서, 변호인이 증거로 제출한 삼합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서)의 정황설명서에 대한 반박 내용을 담은 삼합변방검사참의 답변서 등이다.

그러나 국정원, 검찰은 유씨를 간첩으로 확신하는 분위기다. 이런 와중에 전직 국정원 대공 수사요원들은 "국정원이 마치 엄청난 범죄집단인 양 매도되고 있다"며 국정원을 감싸는 한편 "이번 사건의 본질은 유우성씨가 탈북자로 위장한 중국인 화교 간첩이고 그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본말전도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21세기판 드레퓌스 사건

간첩조작 사건의 궤적은 마녀사냥, 진실 은폐, 언론인들의 질타 그리고 국론분열 등으로 흘러왔다. 이런 궤적은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군사법원이 육군 포병대 대위이던 드레퓌스에게 반역죄를 선고한 사건을 말한다.

사건의 발단은 프랑스 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프랑스군의 주요 정보를 담은 메모장이 발견된 데서부터였다. '명세서'라고 불린 이 메모장엔 프랑스군이 사용하는 포의 도면과 포병 배치도가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19세기 말 군 작전운용에서는 포병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었다. 따라서 명세서에 적힌 내용은 주요 군사기밀이었다. 이토록 중요한 기밀이 잠재적 적국인 독일에 넘어간 것이다. 프랑스는 발칵 뒤집혔다.

프랑스군 당국은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공교롭게도 드레퓌스는 유대인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 사회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들끓기 시작했다. 재밌는 대목은 정작 독일 대사관의 군 참사관 슈바르츠코펜은 드레퓌스가 용의자로 지목된 건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극단적 심판여론에 묻혀 전혀 반향을 얻지 못했고 드레퓌스는 귀아나 해변 앞바다에 있는 악마의 섬에 유배되기에 이른다.

드레퓌스의 가족은 그의 결백을 밝혀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베르나르 라자르라는 젊은 작가는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신하고 당시 재판의 허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책을 썼다. 이것이 <법정 오류 - 드레퓌스 사건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책자였고, 이 책자는 드레퓌스 사건을 재점화하는 계기가 됐다. 군부는 여론의 등쌀에 떠밀려 재조사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주요 군사 기밀을 적에게 누출시킨 범인은 누구였을까? 진범은 우연한 기회에 드러났다. 참모본부 정부국 소속의 조르쥬 피카르 중령은 또 다른 간첩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레퓌스는 무죄이며, 진범은 보병대의 에스테라지 소령임을 알게 됐다. 이에 그는 상부에 이 사실을 알리며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상부는 피카르의 주장을 묵살했고, 되려 그를 군사기밀 누설죄로 체포한다.

에스테라지의 혐의는 충분했다. 에스테라지는 문제의 명세서가 발견되기 전 6차례나 독일 대사관과 정보기관을 방문했고, 심지어 드레퓌스 재판이 열리던 와중에도 독일측과 접촉했다. 하지만 프랑스군 정보당국은 에스테라지의 행적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보병대 장교가 포병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서였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이 대목에서 드레퓌스 재판의 본질이 드러난다.

드레퓌스 사건 당시 프랑스군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프랑스군의 고급장교는 대게 귀족가문 출신이었고 에스테라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더구나 에스테라지는 정부를 두며 호화생활을 즐기느라 품위 유지비가 많이 필요했다. 반면 드레퓌스는 자수성가한 유대인 출신으로서 근대식 군사교육을 받은 신세대 엘리트였다.

만약, 그가 근대식 군사교육을 받지 않았고, 더욱 중요하게는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용의 선상에 오르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결국, 드레퓌스 사건은 군 기밀정보 누출이 빌미가 됐지만, 구 귀족과 신세대 엘리트 사이에서 불거진 세대 간 알력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드레퓌스에 대한 기소는 잘못된 것이었음이 명확해졌다. 하지만 군 엘리트는 여전히 귀족적 속물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진실 규명보다 드레퓌스 판결을 뒤집어 업었을 때 벌어질 군 체면 손상을 더 걱정했다.

이 대목에서 에밀 졸라가 등장한다. 그는 당시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이던 펠릭스 포르에게 <나는 고발한다>로 잘 알려진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백미는 이 대목이다.

"역겨운 드레퓌스 사건이 당신의 이름을, 아니 당신의 정권 그 자체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진실과 정의를 파괴하는 최악의 오점입니다. 일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프랑스는 더럽혀졌습니다. 역사는 당신의 정권 아래에서 프랑스 사회를 배반한 범죄가 자행되었다고 기록할 것입니다."

진실과 정의를 파괴하는 최악의 오점!

"이것이야말로 진실과 정의를 파괴하는 최악의 오점이다"는 한 마디는 프랑스 사회를 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의 편지는 자칫 유대인 장교 한 명이 떠안아야 했을지도 모를 프랑스 사회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냈다. 그의 행동은 지식인이라는 신조어를 낳았으며 사회적 공인이 사회와 역사 앞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 주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간첩조작 사건의 본질은 정보기관(국정원)과 준사법기관(검찰)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한 개인을 간첩으로 몰고자 온갖 위법과 탈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국정원과 검찰은 요지부동이다. 두 기관의 언행에 비추어 보면 유 씨가 간첩이라는 의심은 종교적 신념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프랑스 군부는 진실보다 조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온갖 비위를 저질렀다. 이와 유사하게 국정원과 검찰은 이제 조직 존립을 위해 간첩사냥에 매진 중이다. 이 와중에 전직 국정원 대공직원들까지 나서 국론분열을 부추긴다.

2세기 전 에밀 졸라는 거짓을 일삼는 프랑스 군부와 정부를 신랄하게 질타했다. 그의 질타는 공안몰이가 횡행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 큰 울림을 만들어 낸다. 거짓된 확신에 가득한 국정원, 검찰이 귀담아 들어야 할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실과 정의를 파괴하는 최악의 오점이다."


태그:#유우성, #드레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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