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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 20일 오후 2시부터 출판사 후마니타스 사무실에서 박상훈 대표와 2시간 동안 진행한 인터뷰 전문 첫 번째다. [편집자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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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은 왜 생겼나?

- 요즘 정치를 보면 어떤가?
"관심을 갖는데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전에 정치에 관심을 가질 때는 '이렇게 하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도 좋아질 것 같지 않은 상태다."

-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가?
"민주주의 정치이론이 이야기하는 처방들이 있다. 우리 정치의 현실은 그 처방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각의 개별정당들은 튼튼하게 조직돼야 하고, 그래야 사회를 통합하고 자기 기반을 세울 수 있다. 그게 민주주의 정치이론이 이야기하는 정당체제를 구성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현재의 정당체제는 권위주의 정당체제 때처럼 사회와 유리돼 있는 느낌이다. '3김시대'에 과도한 보스중심주의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민주적으로 강한 조직(정당)을 만드는 데 있지, 민주주의 권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건 잘못된 방법이다. 그것은 정당이 자기 기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에서 한 판 도박을 하듯이 게임을 걸어야 하는 정치가 됐다. 일상적으로 정치적 성과를 내서 선거에서 평가받는 게 아니라 선거 때 한 게임 하자는 식의 악순환을 계속 보게 되니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보던 사람들은 지칠 수밖에 없다."

-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도 선거를 위한 정치투기라고 생각하나?
"선거는 넓은 범위의 전쟁이다. 영어로 캠페인은 전쟁용어다. 캠프를 치고 다른 캠프를 점령하는 거다. 그런 과정에서 외부 세력과 연대해서 싸울 수 있다. 다만 연대의 목표와 방향성이 있으면서 수단이 고려되면 이렇게 당혹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해서라도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만 남아 있다. 이것은 윤리적으로 맞지 않다.

아이들에게 인생은 한방이라고 가르칠 수는 없다. 꾸준히 노력해서 성취하는 게 옳다고 가르치는 게 맞다. 그래도 여당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 말하기가 애매해진다. 그것만을 목적으로 합치고 연대하는 건 윤리적 딜레마를 안긴다. 잘못된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렇게 해서라도 견제해야 하지 않냐는 딜레마다. 딜레마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없다. 제발 야당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 현 시점에서 다시 '안철수 현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상황의 출발이었던 '안철수 현상'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정당체제가 사회와 닮아가지 않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방법이 운동이다. 정당이 사회욕구나 열정을 대변하지 못하니까, 촛불집회나 희망버스 같은 운동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런 운동의 방식은 시민들에게 큰 비용을 요구한다. 돈도 내야 하고, 자기 일상도 할애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으로 민주주의 후퇴를 막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를 맞는다. 시민이 정치발전을 위해 희생하는 건 쉽지 않다.

또 하나의 방법이 제3의 정치세력을 통해 표출하는 것이다. 그동안 진보정당들이나 문국현의 제3정당들이 그런 역할을 수행했다. 지금 양당제 체제라고 하지만 한국사회는 민주화된 이후 한 번도 양당제였던 적이 없다. 주요 정당이 항상 세 개 이상 있었다. 제3의 정당은 불만을 표출하는 하나의 통로였다. 그 중에서도 '안철수 현상'이 강력했는데, 여기에는 제3정당운동으로서 진보정당이 약해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을 향한 실망이 보태져 안철수에 거는 기대가 야당보다 크게 나타난 것이다.

결국 '안철수 현상'은 한국정당체제가 사회와 유리되면서 생기는 시민적 불만과 저항을 매개체로 나타난 것이다. 안철수 스스로는 중도라고 외치지만 그를 지지하는 마음에는 진보정당의 실험이 좌절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사람들의 마음도 반영됐다. 본인이 중도라고 외치는 반면, '안철수 현상' 자체에는 답답한 사회현실을 넘어서야겠다는 시민적 열망이 있다. 그것은 평등, 분배 등 진보적인 의제들이다.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안철수, 한국정치 부정적 요소의 거울 같다"

- 안철수 현상이 강했던 이유는 진보세력이 신뢰를 잃고 약화됐기 때문이라는 건가?
"민주당에 실망해 진보정당으로 가는데, 적어도 내 생각에 진보정당에 15% 정도 지지할 의사를 보여줬다. 그것의 상당부분이 안철수 현상쪽으로 흡수됐다. 그래도 안철수 현상에는 진보적인 요소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안철수 본인의 행동이나 말과 다를지는 몰라도."

- 구체적으로 '안철수 현상'에 투영된 기대와 바람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양당체제와는 다르게 정치 자체가 양극화된다는 말이 있다. 시끄러운데 성과는 없다는 거다. 사회적 효용은 낮아지고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시끄러운 싸움으로 비쳐지는 요소 때문에 상당한 피로감이 왔다고 본다. 여야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정치의 피로도가 높아진 것이다. 이것이 안철수가 싸움만 하는 정치를 풀어보겠다고 나선 이유다.

안철수 현상에는 무엇보다 기존정당이 담을 수 없었던 사회적 요구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대표적인 게 노동시장의 문제다. 안철수가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청년실업 문제, 노동시장 신규 진입자들을 대변하려고 노력했던 점이다. 오랫동안 청춘콘서트를 했던 것도 신규 진입자들의 불안과 상처를 말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였다. 본인이 그걸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공격적인 것만 원하는 게 아니라 안정감 있는 합리적 리더십을 기대했다. 안철수는 민주화 이후 20년 이상 보여준 한국정치의 부정적 요소를 거울처럼 비추어주는 느낌을 준다."

- 왜 그 거울이 안철수가 된 것일까?
"과거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운동이었다. 그런데 운동가적 개혁가 리더십에 기대하는 심리가 낮아졌다. 그것에 대비돼서 좋은 학교도 나오고, 사회적으로 성취를 이루고, 합리적이고 안정감있는 리더십 모델을 기대해온 측면이 있다. 그게 맞아떨어진 게 안철수 개인이었다."

- '안철수 현상'이 현재도 유효하다고 보나?
"100% 유효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부분을 대표하면서도 통합력을 가질 수 있는 리더십이다. 안철수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냐는 문제와 별개로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의 필요성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것이 한국의 진보에게도 주는 함의가 많다. 진보가 사회통합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노동시장에 신규로 진입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대변할 수 있다면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현재 그들은 진보에게 어떤 기대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기대를 받으려면 노동시장을 재편할 수 있는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안철수 현상에서 남아있는 과제 가운데 하나다."

- 좀 전에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이 분리돼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안철수 현상'은 기성정당이 준 불만과 실망의 구조로 봐야 한다. 그것을 실현하는 실험자로 나선 게 정치인 안철수다. 과연 정치인 안철수가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실현하고자 제 역할을 잘 해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차례가 됐다. 나는 정치인 안철수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 정치인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에 담겨진 의미를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
"'완전한 실패' 말고 다른 걸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안철수 현상과 정치인 안철수는 구분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현상' 속에 숨겨진 열망을 개인적으로 전유하게 된 명망가 안철수, 초선의원 안철수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 왜 정치인 안철수는 완전하게 실패했다고 생각하나?
"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기업운영 경험이나, 좋은 학교에서 받은 교육으로 감당하기에는 복잡하고 힘든 세계다.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좋은 정치인이 되는 건 아니다. 안철수가 안타까운 건 좋은 사람이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니라 오히려 퇴행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초기에는 누구나 다 실수한다. 그걸 극복하고 실력이 늘고 있느냐, 사회를 유익하게 만드느냐가 평가 기준이라면 안철수는 점점 더 나빠지는 모습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태그:#박상훈,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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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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