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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동대문역. 토요일이지만 길거리 장사치들은 많은 손님들과 함께 하기 위해 아침부터 나섰고 손님과 장사꾼들로 동대문은 오늘도 번잡하다. 이 동대문 역에서 마을버스 5번을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많은 연인과 가족들의 주요 산책지인 낙산공원이 나온다. 혜화역과도 가깝고 따스한 봄날, 가족 혹은 연인의 손을 잡고 산책하기 좋은 낙산공원.

3월의 따뜻한 봄의 낙산공원
▲ 따뜻한 봄 날씨의 낙산공원 3월의 따뜻한 봄의 낙산공원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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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기분 좋게 성곽길을 따라 낙산공원을 걷다보면 바로 아래, 조그마한 지붕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집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이 살만한가 싶기도 하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의 모습이 참 정겹다. 이 곳은 서울시 삼선동에 위치한 장수마을이다.

장수마을은 일제시대를 거쳐 6.25 전쟁 시기 피난을 다니던 사람들과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돈을 벌러 왔던 빈민들이 정착하면서 구릉지형이었던 삼선동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한 곳이다.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살던 곳을 정부는 2004년, 한창 재개발 열풍에 휩쓸려 철거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주변에 성곽과 문화재가 있어서 고도가 제한되는 이유로 건설사들의 매력을 끌지 못했던 것이 다행이었을까, 장수마을의 주민들은 흔히 말하는 재개발 철거민이 되지 않았다. 물론, 단순히 수익창출의 모델로서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재개발이 미뤄진 것만은 아니다.

장수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거주 기간이 기본 40년 이상이고 큰 골목으로 주민 커뮤니티가 굉장히 활발했다고 한다. 즉, 골목마다 평상 하나씩 두면 그 곳에서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사는 것을 함께 공유했었고 마을에서 태어난 갓난아이가 40대, 50대 아저씨 아줌마가 될 때까지 시간을 보내온 곳이다.

장수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 중 65세 이상의 인구가 65% 이상이지만 반 세기를 공유했던 사촌보다 더 끈끈한 이웃간의 정이 함께 뭉쳐졌기 때문에 장수마을은 지난 2013년, 재개발 지역으로 규정된 지 약 10년 만에 재개발예정구역에서 해제될 수 있었다.

멀리서 보기엔 한가로운 장수마을이다
▲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장수마을 멀리서 보기엔 한가로운 장수마을이다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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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재개발예정구역이 해제될 동안 마을 안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2011년 '동네 목수' 마을 기업으로 선정

2011년 행정안전부에서 진행한 마을 기업 공모에 지금의 동네 목수 대표인 박학룡 대표와 배정학 부대표가 공모하여 그 해 7월, 동네목수는 마을기업으로서 설립될 수 있었다. 설립은 되었지만 초반엔 리모델링 및 공사 자체가 더디고 마을 자체가 계단도 굉장히 많은, 공사가 진행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여건이었다. 고도도 높은지라 공사에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재건축의 방법으로는 비용도,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목표도 이룰 수가 없었기에 동네 목수는 주민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마을의 변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토론하며 사업을 진행했다. 노후화된 마을 주거환경 개선을 목표에 두고 한 집씩 한 집씩 바꿔가기 시작하면서 열악한 구조의 집들 및 빈집을 리모델링 해 왔다. 그 결과 리모델링한 집에 세입자가 입주하기 시작했으며 마을 주민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을 통해 마을의 고용창출까지 이루어내면서 장수마을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경로당 지하를 개조해서 만든 공방, 이곳에서 많은 작업들을 한다고 한다
▲ 동네목수 목조공방 경로당 지하를 개조해서 만든 공방, 이곳에서 많은 작업들을 한다고 한다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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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과의 소통

크게 6개의 골목으로 이루어진 장수마을은 6개의 골목마다 골목통신원을 두어 정기적으로 총회와 모임을 진행하였다. 이 모임을 통해 마을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과정 속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였고 조금 더 큰 범위의 주민 협의회를 구성하였다.

또한 서울시에서 주관했던 도시 가스 유입과 하수관 정비, 골목길 정비 등 마을의 대대적인 공사가 있을 경우에도 주민 설명회를 개최했다. 장수마을은 일방적인 도시 리모델링, 일방적인 마을 개선이 아닌 주민들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사실 '집주인', '세입자' 등 우리나라에서 집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 자신이 살고 있는 것 이외에도 다달이 들어오는 월세, 다달이 지불해야 하는 월세. 같은 월세를 두고도 이해관계가 다르다. 살고 있는 주민들과 집의 소유자인 집주인들과의 소통 및 네트워크가 견실하지 않다면 장수마을의 마을 재생은 끝없는 좌절을 맛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과제로 남아있지만 마을 기반 시설과 관련한 공사에 있어서 끊임없는 행정 시스템과의 소통, 각각의 집 리모델링 시 요구 조건과 실행하기 위한 끊임없는 관계 유지가 동네 목수를 지금의 위치에 있도록 만들었고 장수마을의 변화를 이끌었던 주된 동력이었던 것이다.

작은카페의 수익금은 장수마을 주거환경 개선에 사용된다고 한다
▲ 동네목수 작은카페 작은카페의 수익금은 장수마을 주거환경 개선에 사용된다고 한다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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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아직 동네 목수가 리모델링을 조금씩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주민 참여가 적극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골목통신원 같은 경우도 실제 서울시의 직접적인 행정과 연관되어 일을 하게 될 경우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고 공무원의 세세한 설명 및 친절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그냥 나몰라라 해버리는 것이 현실.

또한 집을 수리하며 좋은 곳에 살아가는 것은 좋지만 집이 좋아지다보니 집주인은 자연스레 임대료를 올릴 유인에 빠지게 되고 세입자의 주거 환경을 좋게 하고 더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활동이 오히려 세입자에게 짐이 되고 부담이 되는 상황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세입자를 위한 보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여전한 숙제이다.

계속 이어지는 계단
▲ 장수마을 계단 계속 이어지는 계단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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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장수마을 안에서 지닌 고민과 과제는 아직 많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었던 것이 없었듯, 많은 문제를 직접 부딪치며 해결해왔고 해결하고 있는 중이고 앞으로도 단순히 '나'가 아닌 우리가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이다. 오늘도 장수마을에선 집 수리가 한창이고 오며 가며 정답게 나누는 인사는 우리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조금은 높고 계단이 많아 오르기 힘들지만 다 올라선 후 마을을 내려다보는 그 마음의 풍족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풍경이 우리집 창문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라면 조금은 삭막했던 우리의 인생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냥 예뻐지고 외관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동네의 힘으로 스스로 살기좋은 마을로 변해가는 장수마을. 서울, 아니 한국의 주민참여재생사업 대표로서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마을이다.


태그:#사회적 경제, #마을 만들기, #삼선동 장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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