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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파스텔톤의 동화 속에 나올 법한 페나성
▲ 페나성 알록달록 파스텔톤의 동화 속에 나올 법한 페나성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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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홍보 대사'가 있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처자인데 이틀 머무를 예정으로 왔다가 리스본에 매료되어 5일째 머무르고 있단다. 그래서인지 리스본의 볼 만한 관광지, 관광지 가는 법, 여행 팁 등을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아침을 먹던 중에 오늘은 신트라에 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리스본 홍보대사가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신트라-무어인 성터-페나성-호카곶-신트라-리스본 순서로 돌아보라고 알려 준다. 무어인 성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더니 페나성 가는 길목에 있으니 먼저 무어인 성터에 올라가 페나성을 보면 그 경관이 끝내준다며 방문을 권한다.

동심을 자극하는 페나성

7-8세기 해발 450m의 산 위에 건축된 성으로 성벽 위에서 신트라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다.
▲ 무어인 성터 7-8세기 해발 450m의 산 위에 건축된 성으로 성벽 위에서 신트라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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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역의 아름다운 타일 장식
▲ 신트라역 티켓판매소 신트라역의 아름다운 타일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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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에서 페나성 가는 길이 그려진 종이까지 가지고도 무어인 성터 정류장을 지나쳐 페나성 입구에서 내렸다. 무어인 성터를 꼭 보라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에 걸어 내려와 입구로 들어섰다. 무어인들이 외적 침입에 대비해 해발 450m의 산 위에 세운 성이 지금은 터만 남아 있었다. 성벽을 오르니 생각 이상으로 눈맛이 시원했다. 전망도 좋고 내려다 보이는 마을이 예뻤다. 숲 속의 푸른 나무 사이로 빨간 지붕의 집들이 모여있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마을이었다.

스산했던 포르투와 달리 날씨가 맑고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여서 길다란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과 길게 뻗은 성벽을 담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쏟아부을 태세다. 산 위에서 소나기를 만나면 어떻게 하지. 공포스럽다. 급한 마음으로 사진을 대충 찍고 얼른 내려왔다. 급히 내려왔는데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쨍하다.

리스본 홍보대사가 추천한 다음 코스는 페나성. 무어인 성터에서 페나성 입구 버스정류장까지는 걸어서 10여 분 정도 거리였기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 걸어서 올라가는 게 빠를 듯했다. 오르막길을 힘들게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자동차 오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가 우릴 앞질러 가면 걸어 올라온 것이 억울할 것 같아서 있는 힘껏 뛰었다. 우리가 페나성 입구 정류장에 도착한 후 뒤이어 버스가 도착했다. 다행이다.

무어인 성터에서 내려다 본 신트라 시내
▲ 신트라 시내 무어인 성터에서 내려다 본 신트라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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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페나성이 보인다. 빨갛고 노란 알록달록한 성이다. 성의 곳곳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성벽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타일 장식과 아름다운 아치형의 문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럽의 성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페나성은 이슬람, 르네상스, 마누엘, 고딕 양식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뒤섞여 있지만 그 어울림이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야자수가 더욱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19세기 전반에 개축하여 왕들의 여름 별장으로 썼다는 페나성의 실내장식은 섬세하고 아기자기하다. 열심히 둘러 보았더니 배가 고프다. 다행히 성 안에 카페가 있다. 머핀 1개에 1유로, 바게트샌드위치는 4.5유로. 리스본 시내보다 비싼 가격에 딸은 저렴한 머핀을 먹자고 한다. 커피 대신 준비해 간 차를 마셨다.

알록달록 동화 속 나라 같은 페나성
▲ 페나성 알록달록 동화 속 나라 같은 페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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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 앉아 주변 풍경을 내려다 보며 먹는 머핀의 맛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따뜻한 차와 달콤한 머핀, 아름다운 경치. 간에 기별도 안 갈 만큼 적은 양이었지만 점심의 뜻 그대로 마음에 점만 찍고 나왔다.

호카곶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뿐인지라 무언가를 더 먹으려다 포기하고 바로 호카곶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구불구불해서 멀미가 나는 길을 한 시간 가까이 달렸을까 멀리 바다가 보인다. 호카곶이다.

호카곶의 기념비에는 포르투갈 시인 까몽이스의 시 "여기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다"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 호카곶의 기념비 호카곶의 기념비에는 포르투갈 시인 까몽이스의 시 "여기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다"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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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미래를 향한 꿈을 꾸다

저 멀리 십자가가 세워진 호카곶 기념비가 보인다. 자갈길을 걸어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임을 알리는 기념비 앞에 섰다.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ça...(Camões))라는 포르투갈 시인 까몽이스가 남긴 시의 한 구절이 비석 위에 새겨져 있다. 절벽 아래로 바다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이게 말로만 듣던 대서양인가.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온 우리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서 있다니.

오로지 보이는 건 바다와 하늘. 땅 끝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자유로움, 해방감, 설렘, 뿌듯함. 마치 나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개척자 같다. 지구는 네모나서 바다 끝은 낭떠러지라고 생각했던 시절. 바다 끝까지 가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거라고 믿던 시절. 그 시절에 용감하게 바다로 나갔던 사람들. 수백 년 전의 바스코 다 가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느낌이. 대서양을 바라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새로운 세계를 향한 설렘이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바다로 내려가는 길 비슷한 게 보였다.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스본 홍보대사가 권유한 대로 바닷물에 손이라도 적셔볼까 하는 마음으로 절벽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평탄했던 길은 점점 경사가 심해지고 폭이 좁아져서 서 있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어느샌가 길에는 사람 다닌 흔적이 희미해졌다.

길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심지어 절벽 옆의 계곡에는 작은 폭포가 있어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길이 험해 올라올 일이 걱정되긴 했지만 내친 발걸음을 포기할 수는 없어 계속 내려갔다. 그래도 내려가는 사람이 있긴 했는지 경사가 심한 곳에는 밧줄이 매여져 있다.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갔으나 발밑의 풀들은 물에 젖어 있어 매우 미끄러웠다. 마침내 다 내려왔을 때에는 거센 바닷바람이 부는데도 옷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호카곶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 호카곶의 무지개 호카곶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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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서쪽 땅 끝에 온 기념으로 대서양 바닷물에 손을 적시겠다며 앞으로 나아가다 밀려드는 파도에 바닷물을 흠씬 뒤집어 썼다. 그래도 정말 땅 끝에 도달했다는 해방감에 팔을 쭉 뻗으며 소리를 질렀다. 대서양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은 우리뿐이었다. 자유롭다. 인간의 본성인 자유.

"앞으로는 모두 잘 될 거야. 힘들 때마다 대서양 앞에 섰던 오늘을 떠올리며 헤쳐 나갈거야!"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호카곶의 다양한 모습이다. 잠시 머무르는 동안에도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 호카곶의 다양한 모습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호카곶의 다양한 모습이다. 잠시 머무르는 동안에도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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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웬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절벽 밑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포르투갈 사람이라고 했다. 다시 언덕 위로 오르는 것은 내려가는 것보다 힘들었다. 포르투갈 남자가 손을 내밀어 잡아준다. 덕분에 무사히 잘 올라올 수 있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떠나기 전 안내소에 들러 얼른 땅 끝에 왔다는 증명서를 받아야 하는데 딸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한참을 불러도 듣지 못한다. 그 사이에 버스 한 대가 떠났다. 다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해는 넘어가고 바람은 거세지고 스산하다.

버스 기다리는 동안 증명서를 발급 받았다. 인증서 발급비는 5.6유로인데 봉투 없이 달랑 종이만 준다. 물어보니 봉투는 1유로를 따로 내야 한단다. 1유로를 아끼기 위해 인증서만 배낭에 넣었다(결국 인증서는 구겨지고 모서리도 찢어졌다).

신트라로 가서 리스본으로 돌아가려는데 딸은 카스카이스도 가 보고 싶단다. 리스본-신트라-호카곶-카스카이스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카이카이스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가 해안선을 따라 달리기 때문에 해안선을 따라 달리면 경치가 아름답겠지만 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날씨였다. 게다가 밤에는 밖을 보기 어려울 텐데.

해변열차를 탈지 말지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바깥 경치가 보이지 않아도 카스카이스행 버스를 타고 리스본으로 갈까 그냥 신트라행 버스를 타고 왔던 것처럼 리스본으로 갈까 누구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고민 끝에 신트라행과 카스카이스행 중 먼저 오는 버스를 타자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먼저 온 버스가 카스카이스행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길 옆으로 바다가 보였다. 카스카이스행 버스를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왔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이라 호기심이 생겨 창밖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덧 버스는 카스카이스에 도착했다. 기차 시간까지 어느정도 여유가 있기에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팠던 우리는 빵집이나 패스트푸드점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역 건너편에 '핑구 도스(Pingo Doce)'가 보인다. 가이드북에 핑구 도스는 포르투갈에서 규모가 큰 대형마트 중 하나라고 소개됐던 것이 기억났다. 길을 건너 안으로 들어갔다. 꽤 큰 매장 안에 물건이 가득하다. 딸의 눈이 반짝인다. 장바구니를 들고 둘러보기를 시작하는데 진열된 과일이 매우 저렴했다. 가격만 보고 오렌지 한 망을 집어 들었더니 3kg였다. 숙소까지 들고 가긴 무거워 다시 내려놓고 코너마다 가격을 살피며 돌았다. 유제품도 한국에 비해 많이 싼 편이었지만 무게 때문에 선뜻 고를 수 없었다.

육류 코너에 삼겹살이 보였다. 포르투갈 사람들도 삼겹살을 먹나? 게다가 가격은 500g 정도에 1.7유로. 한화로 2500원 정도이다. 생삼겹살은 투툼하고 신선해 보였다.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삼겹살과 함께 먹을 쌀과 채소를 보이는 대로 집어넣었다. 배고플 때 장보면 이렇다.

그러나 기차를 타고 1시간은 더 가야 하고 요리를 하는 시간도 꽤 걸릴 것이며 무엇보다도 피곤했기 때문에 장바구니를 비우고 즉석식품을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중하게 장바구니를 정리하는데 딸은 삼겹살을 포기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래 이 한 몸 바쳐 다같이 즐겁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밥 한끼 준비하는 게 대수랴. 만찬을 위한 쌀과 삼겹살, 양상추, 버섯, 계란, 와인, 기차 안에서 간단히 먹을 감자칩을 샀다.

우리는 마치 전쟁터에서 대단한 전리품이라도 들고 오는 양 봉지를 양손에 들고 활짝 핀 얼굴로 기차를 탔다. 우선 감자칩을 뜯었다. 종이짝처럼 얇은 것이 바삭바삭 고소했다. 하루 종일 굶어서일 수도 있지만 이때의 감자칩은 그 어느 곳에서 먹은 것보다도 맛있었다.

삼겹살과 함께 먹으려던 와인도 따서 플라스틱 컵에 따랐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온몸으로 따뜻한 기운이 퍼진다. 피곤함을 풀어주는 와인 한 잔의 감미로움. 이런 것이 여행의 낭만 아닐까.

카스카이스의 대형마트에서 사다가 차린 우리의 저녁 삼겹살파티. 구운양송이 양상치쌈 계란탕 흰밥 와인
▲ 리스본의 삼겹살 카스카이스의 대형마트에서 사다가 차린 우리의 저녁 삼겹살파티. 구운양송이 양상치쌈 계란탕 흰밥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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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주방으로 갔다. 다른 사람들은 10유로를 내면 호스텔에서 제공해 주는 '쉐프의 요리'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우린 한쪽에서 양상추를 씻고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구웠다. 고기 굽는 냄새가 굶주린 위를 더 자극했다.

양상추 위에 하얀 쌀밥과 삼겹살 한 점, 구운 버섯을 얹어 먹는 이 기분. 딸도, 리스본에서 친해진 어린 친구도 정신 없이 먹는다. 쉐프의 요리를 먹던 사람들도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호스텔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눈 한국인 한 명이 맛있어 보인다고 하길래 상추쌈에 고기 한 점 올려서 주었더니 감탄을 한다. 한국의 반대편에서 먹는 삼겹살의 맛은 두고두고 생각날 것이다.


태그:#로카곶, #신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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