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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유산 문제 때문에 다투는 자식들을 앞에 두고, 노 회장이 내뱉는 말이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그러면서 병상의 노 회장의 고개는 한쪽으로 꺾이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다. 막장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고, 이때 나의 감정이입은 최고에 달한다. 그렇다, 나도 내 몸을 잘 안다. 노 회장의 고개가 꺾이듯이 나의 고개도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종종 꺾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보다 머리가 크고 무겁다.

내가 운동을 아니, 움직임 자체를 극도로 꺼려 하는 이유는 바로 나의 저주받은 운동신경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보 때 왼손과 왼발이 동시에 나가는 '고문관' 수준은 아니다. 다만, 큰 머리로 인해 무게 중심을 제대로 못 잡다 보니, 운동 쪽으로는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꼭 짚어 말하자면 몇 번의 좌절로 인해 스스로 운동에서 격리 시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체력장에서 오래달리기 2등한 사연

유치원 운동회 나를 닮은 아이는 유치원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잘 보이지도 않는다.
▲ 유치원 운동회 나를 닮은 아이는 유치원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잘 보이지도 않는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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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 몸을 알게 된 건, 국민학교 운동회 때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단거리 달리기였다. 4열종대로 줄세운 후 조각 케이크 자르듯이 네 사람씩 내보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운동회의 백미. 어린 나는 당시 제 몸의 균형미 따위를 생각할 만큼 성숙치 못했다. 그저 상품으로 주는 공책을 한권이라도 더 받아볼 요량으로 늘 마음이, 아니 머리가 몸을 앞섰다.

결과는 머리의 무게를 감당해 내지 못하는 바디의 기울기에 중력이 작용하여, 결국 앞으로 고꾸라지는 꼴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속도를 포기하면 넘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등에 찍힌 숫자는 어쨌거나 '4'등이었다. 학교 측은 나름 배려라고, 꼴찌에게도 공책 한 권 정도는 나누어 주었다. 공책의 겉표지에는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참가상' 도장이 성의없이 찍혀 있었다. 운동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달랑 공책 한 권을 들고 집에 가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왁자지껄 갖은 무용담이 난무하는 하교길에서, 상처의 씨앗은 태동하였다.

운동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인 건 바로 중학교 때다. 1학년 체력장. 100미터를 23초에 주파해 버리는 기염을 토해 내더니, 체력장의 하이라이트 '오래달리기'에서 마침내 좌절의 방점을 찍었다. 산등성이를 깎아 만든 나의 중학교는 운동장이 작기로 유명했기에, 총 다섯 바퀴를 돌아야 1000미터를 뛰게 된다.

'탕!' 한발의 총성과 함께, 독립군만큼이나 비장한 각오와 표정을 지닌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첫발을 내던진다. 한 바퀴까지는 나름 열과 성의를 다하였으나, 두 바퀴부터는 하늘빛이 노랗게 변한다. 세 바퀴를 거의 걷듯이 뛰고, 네 바퀴째, 라면만 먹고 뛰던 임춘애 누나를 생각하며 정신력으로 버티던 그 순간.

갑자기 선생님께서 "2등"이라고 외치며,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라는 사인을 보내시는 게 아닌가? 죽음을 면전에 둔 상황이었기에, "선생님, 저 한 바퀴 남았는데요"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1등 뒤에 앉았다, 아니 쓰러졌다.

짐작은 했겠지만 상황은 이러하다. 내가 네 바퀴를 도는 동안 에너자이저를 항문에 장착한 듯한 우리 반 1등 녀석은 다섯 바퀴를 다 뛰고, 거기에 나를 앞지르기까지 한 것이다. 애들 체력장에 목숨 걸고 예의주시하는 선생님들도 아니고, 1등이 결승점에 도착하고, 바로 그 뒤를 따라 뛰고 있던 나를 2등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절묘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마음은 콩밭에 가 계시던 선생님 덕분에 나는 평생 동안 꿈꿀 수 없는 불가능한 성적으로 오래달리기를 마쳤다. 그 때, 진실을 함구했던 죄책감은 이로 말할 수 없는 소년시절의 악몽 혹은 흉터가 되어 평생을 따라다녔다. 이후로, '운동'이라는 생각 자체는 내가 발을 내딛어 더럽혀서는 안 되는 신성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때껏 그리 살아온 것이다.

스포츠라면 보는 것도 싫다... 이런 내가 운동을?

눈밭 위에서의 축구 걸어다니기도 힘든 눈밭에서 공을 차다니, 필자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상황이다. 죄측 맨 끝에 어슬렁거리며 시늉만 하는 이가 바로 나다.
▲ 눈밭 위에서의 축구 걸어다니기도 힘든 눈밭에서 공을 차다니, 필자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상황이다. 죄측 맨 끝에 어슬렁거리며 시늉만 하는 이가 바로 나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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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운동을 하는 것은 싫어하지만, 스포츠 경기 관람은 괜찮지 않냐고? 요즘은 텔레비전을 거의 안 보지만, 한창 끌어안고 살던 그 시절(드라마가 참 좋던 시절이 있었다), 제일 싫어하는 기간이 바로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같이 하루 종일 운동경기만 틀어주는 때였다. 뭐할라고 저렇게 기를 쓰고 아웅다웅하나? 젠장, 연속극 재방송도 안 해주고.

가장 최근에,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우리의 연아가 은메달을 땄다는 사실을 다음날 직원들의 수근거림을 통해 알게 된 나는, "그럼, 아사다 마오가 금메달 땄냐? 그럼, 그렇지, 나와바리인데..."라고 했다가 간첩 취급을 받았다. 나는 올림픽이 끝나가는 그 시점까지 소치가 일본에 있는 도시 이름인 줄 알았던 것이다. 러시아는 보통 ~스키나 스크로 끝나지 않나?

이런 내가 운동을 한다니, 이게 말이 될 법한 소리인가? 그러니 굳이 운동이라는 단어 대신 몸짓이나, 격한 생활 정도로 표현하는 게 맞을 성싶다. 한편으로, 운동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고 시작한 모든 행위들의 결과가 그다지 좋았던 게 아님을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버려진 운동용품들 주인 잘못 만나서 신발장과 창고에 버려진 운동용품들. 조깅화, 풋살화 등등...너희들을 살 때만해도 그 종목의 선수를 꿈꾸었단다. 현재는 이중 아무것도 하는게 없다.
▲ 버려진 운동용품들 주인 잘못 만나서 신발장과 창고에 버려진 운동용품들. 조깅화, 풋살화 등등...너희들을 살 때만해도 그 종목의 선수를 꿈꾸었단다. 현재는 이중 아무것도 하는게 없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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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 번 이상 안 나갈 헬스장 등록 때, 3개월치냐 6개월치냐를 두고 계산기 두드려가며 할인률 고민하던 경험. 내일 아침부터 조깅을 시작하려면 일단 발이 편해야 하는데, 당연히도 집에는 쓸 만한 운동화가 없고. 인터넷으로 인체공학과 디자인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조깅화를 하나 주문하면, 배송까지 2~3일 걸릴 테니까, 그때까지 마음껏 먹고 마시자 했던 게 1주일을 훌쩍 넘기던 경험. 결국 배송된 조깅화를 신고, 술 마시러 달려 나갔다.

수영을 시작하기에 앞서 수영복을 삼각으로 할지 사각으로 할지, 잘 빠진 수영모에다 물안경은 좋은 거 사야 한다 던데, 하며 조심스레 카드를 긁던 경험. 첫날 수영장 물 절반쯤 마시고, 양치를 안 해도 입에서 상쾌한 락스 냄새가 난다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는, 그 다음날부터 수영장과 인연을 끊었던 경험. 다들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운동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고 싶다. 더불어 운동으로 인한, 운동에 의한 스트레스도 없어져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남들보다 조금 격하게 움직임으로 인해서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개념이다.

그것조차 하지 않던 시절. 움직임 자체가 귀찮고, 버거운 일이던 그 무책임한 날들. 그리고 그 결과물로 고스란히 남겨진 뱃살들. 본격적으로 그것들을 떼어내고, 도려내기 위한 나의 소심한 복수극을 준비한다. 너무 설레발이 길다. 사실, 본 내용이 별거 아니다 보니, 나같은 인간형도 움지럭거린다는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해 도입부가 좀 늘어났다. 독자들께 죄송하기 그지없다.(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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